[엄마의 쉼표15 : 미용실에서 얻은 뜻밖의 통찰]
또 다시 찾아온 지옥 같은 여름.
매일 아침 식사, 등원, 출근 준비로 정신없는 나는 머리 말리는 시간조차 너무 아까웠다.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 나오던 어중간한 머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미용실로 향했다.
"머리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디자이너의 질문에 나는 그동안 쌓인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모질이 얇아서 볼륨이 안 산다는 것, 관리하기 편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데 또 너무 밋밋해 보이는 건 싫다는 것까지. 말하면서도 '내가 뭘 원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네' 싶었다.
디자이너는 단발 스타일북을 펼쳐 보여주며 설명했다.
"고객님 얼굴형에는 이런 느낌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건 고데기로 볼륨을 살렸을 때 얘기라서..."
아, 이게 그 유명한 '손님 이건 고데기에요'구나.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친절하게 설명받으니 괜히 기분이 착잡해졌다. 머뭇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음... 그러니까 결국 제가 원하는 건 애송이처럼 보이지 않는 거예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5분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모든 말이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것 같았다. 거울 너머로 디자이너와 눈이 마주쳤는데, 우리는 동시에 빵 터져버렸다.
"아, 무슨 말인지 완전히 알겠어요! 그럼 그 부분 확실히 신경 써서 잘라드릴게요."
이상하게도 그 순간 모든 게 편해졌다.
디자이너가 가위질을 시작하는 동안, 나는 우리를 웃게 만든 '애송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봤다.
문득 어제 아침 생각이 났다. 혼자 티셔츠를 입어보겠다던 아들이 머리가 끼어서 팔을 버둥거리며 "으아악!" 소리를 지르던 모습. 도와주려고 하면 "싫어! 혼자 할 거야!" 하면서 더 화를 내고, 결국 울먹이며 "엄마..."라고 부르던 그 모습 말이다. 그때는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도 서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었던 거였다. 뭔가 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 앞에서 한껏 어른인 척했던 나 역시 '엄마는 처음인 애송이'였다.
처음 본 디자이너와 "애송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는 한마디로 순식간에 무장해제된 걸 보니, 우리 모두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30분 후, 내 머리는 제법 산뜻한 단발로 완성됐다.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거울을 보니 확실히 전보다 '애송이'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나를 애송이로 보이지 않게 하려고 어느 때보다 더 애써주신 디자이너 선생님을 보니, 때로는 ‘그럴듯한 어른’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죄송하지만 이 부분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에게 "엄마도 처음이라 잘 몰라. 같이 배워보자"라고 말하는 것. 생각해보니 그렇게 무서운 일도 아니었다.
자른 건 머리카락인데, 어쩐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또 한번의 지옥같은 여름도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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