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회사에 나쁜 사람도 있어요?”

혼자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12

by 삐와이

어른들이 어른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예단하듯, 아이들도 자신의 일상에 비추어 어른들의 삶을 추측한다.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가장 좋은 무대는 바로 엄마, 아빠의 회사다.

“안녕, 나 회사 갔다 올게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출근길 어른을 흉내 낸다. 그리고 질문이 이어진다.

“엄마 회사에는 뭐 있어요? 색연필 있어요? 가위 있어요?”
“오늘 오후 간식은 감자였어요. 엄마 회사에도 간식 나와요?”

엄마 회사에는 의자도, 책상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펜도 있고, 너희들의 사진까지 있다. 게다가 엄마가 회사에가서 돈을 벌어와야 맛있는 저녁거리가 생기는것이라는 사실까지 덧붙여지자, 아이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빙긋 웃는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회사가는 거 좋겠다. 나도 빨리 어른 돼서 회사 가야지.”

한 번도 ‘회사’와 ‘순수’를 같은 선상에 놓아본 적 없는데, 아이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회사라는 공간에도 순수한 빛이 비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던 중 아이가 갑자기 물었다.

“엄마, 엄마 회사에는 나쁜 사람도 있어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있지! 착한 사람도 많고~ 나쁜 사람도 있고~ 말이 많은 사람도 있고~

똘양이 똘군이처럼 많이 먹는 사람도 있고~”
“엄마 회사에는 맛있는 게 많은가 봐! 깔깔깔.”

우린 한바탕 웃고 넘어갔지만, 혼자 곱씹으니 그 질문이 묵직했다. 나쁜 사람이라…


아이에게 ‘나쁜 사람’은 분명 단순할 것이다.
장난감을 빼앗는 친구, 약속을 안 지키는 친구, 혹은 동화 속 마귀할멈과 늑대 같은 존재.
그러나 그 단순하고 직설적인 정의 앞에서 나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나쁨’은 훨씬 복잡하다.
욕심이 많은 사람,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 타인을 힘들게 하는 사람…

때로는 나 자신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가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착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냥 각자의 이유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게 어른들의 회사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어른일까. 아이의 질문은 결국 내게로 되돌아와 거울처럼 비친다.
회사에서의 나는, 집에서의 나는, 과연 아이 눈에 ‘착한 어른’으로 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이가 정말 묻고 싶었던 건 “엄마, 나쁜 사람들 때문에 힘들지 않아?” 혹은 “엄마, 회사에서 잘지내요?”

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엄마의 하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바람이 만들어낸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걸.


“엄마, 오늘도 회사 재밌게 다녀오세요!”
다음 날 아침, 아이의 인사를 받으며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도 무겁고 복잡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아이의 눈으로 본다면, 회사도 어린이집처럼 단순한 놀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말 많은 사람, 많이 먹는 사람. 결국 다 같이 각자의 하루를 채워가는 등장인물일 뿐.
그리고 적어도 회사에는,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마귀할멈도, 독사과를 파는 왕비도 없으니까 말이다.


2025.09.18


가끔은 아이가 던진 질문이 인생 전체를 통틀어 받은 그 어떤 질문보다 심오하게 느껴질때가 있답니다.

여러분의 회사생활은 안녕하신가요?

그렇지 않았다면 적어도 마녀의 독사과를 받지는 않았다.

같은 동화적인 순수함을 한방울 떨어뜨려보시는건 어떨까요?

keyword
이전 11화엄마, 충전해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