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13
육아의 로망이 되는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는 현관문 앞에서 부모의 출퇴근을 배웅하거나 맞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작은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세요”, “엄마다!!”하고 와다다 뛰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부모의 하루를 환하게 밝혀주는 선물 같다.
우리 집에서는 주로 아빠가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현관 앞에서 인사를 받는 주인공도 주로 아빠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똘양이가 이런 인사를 건넸다.
“아빠, 잘 가요~ 똥 밟으면 안되요!”
순간 급하게 가방을 챙겨 현관을 나서려던 신랑도, 나도 너무 웃겨서 폭소를 터뜨렸다.
그 말의 기원은 저녁 식사 시간에 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잘 먹는 편이라, 우리 부부는 식탁에서 서로의 하루를 진지하게 나누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신랑이 툭 던졌다. “아… 오늘 똥 밟았어.”
아이들이 금세 물었다.
“아빠, 똥 밟은 게 뭐야?”
“어~ 아빠가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뜻이야.”
그 때는 하던 대화를 마저 이어가기 위해서 아이의 호기심을 충분히 헤아려주지 못했는데, 그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던지 아이들은 그 때 이후로 ‘똥 밟았다’는 표현을 종종 쓰곤 했다.
이를테면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라는 동화책을 읽을 땐,
“엄마, 두더지는 똥을 밟은 게 아니라 똥을 맞았네?” 하고 재치 있게 말하기도 하고,
화가 난 하마 이야기를 읽을 땐,
“하마야, 너 똥 밟았니?” 라고 묻는 귀여운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표현이 아침 인사로까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육아의 로망 같은 장면에 ‘똥’이라는 단어가 끼어드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막상 들어보면 하루를 유쾌하게 시작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주문이 된다.
딸 아이의 바람처럼 우리 신랑은 똥 밟지 않는 하루를 보낸걸까. 서로 바빠서 퇴근 후 함께 식사를 하지 않으면 안부를 전하기가 어렵지만, 그의 하루가 무탈했기를 나도 간절히 바라며 늦은 밤 집으로 향해본다.
2025.09.25
오늘처럼 어김없이 야근을 하는 날엔
아침에 나를 배웅해준 아이들의 마지막순간을 떠올려봅니다.
아쉬움이 조금은 깃든 채 안아주는 그 온기가 이렇게 오래간다는 사실에 놀라곤하죠.
"똥밟지말라"는 주문을 받아든 우리 신랑의 하루도 무사했겠죠?
오늘은 서로 얼굴도 제대로 못보는 맞벌이 부부이지만, 아이들 덕분에 함께 웃은 시간이 있어 다행입니다.
오늘도 다들 고생많으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