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쉬게 하는 쉼터_징검다리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갓 스무 살을 넘기면서.
출세해 보겠다고 덜컥 지방에서 서울로 출. 퇴근을 하기 시작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우린 많은 말과 TV를 통해 많은 세뇌들을 당하고 산다. 그러기에 진정 나로 살아가는 법을 일찍이부터 세상에 저당 잡히고 살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성공하고 싶고 서울에 대한 동경만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엄한 아버지로부터의 도피가 내재되어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서울로 오가는 긴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면서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대견하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누구나 다 그랬을까? 아니면 나만 그랬을까?
그렇게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해보니 나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좀처럼 나의 속상한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단 한 번도 나의 부모님께 내가 힘들다고 말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두 번의 아픔을 겪고 난 후에야 엄마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딸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무척 바쁘게 사셨다.
그런데 지금 나 역시 무척이나 바쁜 일상을 살고 있음에 한 편의 데자뷔를 연상하게 한다. 형태만 다를 뿐!
학창 시절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어른이 되어보니 무척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을 벗 삼아
내 마음을 달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맨발로 땅을 밟는 것도 좋아한다. 예전엔 흙만 밟으면 좋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집 주변에 있는 포장된 도로도 종종 걷는다.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의 분별력이 사라지면 가능한 일이다.
자연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언제나 베풀어 주고 있다.
하지만, 인간관 계속에선 서로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모두를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마음공부든. 수행이든. 나다움을 찾아가는 수고를 덜어주지 않겠는가!
신이 우리에게 준 8만 6,400초의 시간을 우리는 무엇으로 수놓고 있을까?
오래전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을 전부 써 버리고 말았다.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금이라는 소중함을 놓쳐버리고 살기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감사를 통해 나의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
두려움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경험하는 한 가지 통증과 같을 뿐이다.
누구나 삶의 다양함을 경험한다. 그 경험 속에 마음의 징검다리들을 건넬 때 감사가 그 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