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에서 흐름까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by 시현

집에 오자마자

몸이 허해서

그냥 미친 듯이 막 먹었다.

뭐라도 안 먹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근데 어느 순간

몸무게가 10kg이 훅 쪘다.

정신 차려보니까 몸이 무겁고,

생각도 느려지고,

감각이란 감각은 다 끊겨 있었다.

그렇게 내 감각들이 조각조각 나니까

내 주변에 있던 그림자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딱 틈을 노려 내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대더니

지들 마음대로 맞추기 시작했다.

그게 제일 웃긴 건 뭔지 알아?

지들 감각으로 나를 맞추는 게 아니고,

내 감각을 훔쳐다가

지들 놀잇감처럼

감각 갖고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는 거.

근데 난 그걸

몸이 너무 무뎌져서 몰랐어.

몰랐던 게 더 열받는다.

내 몸인데, 내가 없었다.

이러다 진짜 끝나겠다 싶어서

사우나부터 시작했어.

근데 그 안에서

처음으로 갇혀있던 숨이 뚫리는 느낌이 났다.

그때 딱 감이 왔다.

아, 내가 이 지경이 된 이유.

그동안 가장 무서운 걸 잊고 살았다는 거.

‘순환’.

몸 안의 흐름,

그게 다 막혀 있었던 거다.

그리고 순환이라는 단어를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몸의 순환이 막히다 보니 집에 정체된 에너지가 가득한 건데 나는 그 정체된 에너지에 대해서만 생각했으니까

생각이 없는 체

허해서 막 쑤셔 넣고,

무거워진 몸은 더 안 움직이고

결국엔 감각까지 죽어버렸고.

이제는 안 빼앗길 거다.

하나씩 다시 찾아갈 거야.

내 감각, 내 몸, 내 흐름

누구도 더 이상 갖고 놀게 안 둘 거다.

근데 나 그림자들이 이제 안 미워.

그림자들도 빛을 비추게 하는 존재잖아.

그 존재들 덕분에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 거 같아.

나는 그 어두운 그림자들 덕에

내 빛이 어디에 있었는지 다시 찾게 됐다.

그림자도 빛도

이제는 날 비추게 하는 존재들인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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