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을 오픈한 뒤 처음 맞이한 여름 성수기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긴 겨울과 봄 동안 꿈꿔왔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특히, 여름을 맞아 손님들에게 더 즐거운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야심 차게 준비했던 화단과 야외 잔디마당 그리고 야외 간이 수영장이 완성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수영장은 키즈룸 이용 손님들이 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는데, '아이들이 많이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그렇게 만든 수영장을 가장 먼저 이용한 손님은 바로 내 조카였다. 조카는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웃음소리를 터뜨렸고, 수영장을 만들어준 나를 힐끗 보며 "이모!, 이모가 진짜 최고야!”라고 외쳤다. 그 말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수영하고, 잔디마당에서 공을 차며 신나게 밖에서 놀고 저녁이 되어서는 키즈룸 안에서도 재밌게 노는 조카의 모습은 그 자체로 내가 이 펜션을 운영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여름에 피어난 조카의 웃음소리는 하루 종일 펜션을 밝게 물들였다.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많은 가족들이 펜션을 찾아주었다. 객실마다 독립된 입구와 개인 공간을 갖춘 구조 덕분에 손님들은 안심하고 머물 수 있었다. 나 역시 청결과 방역에 더욱 신경을 썼고, 매일 꼼꼼히 소독하며 손님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고, 펜션 곳곳은 아이들의 웃음과 가족들의 행복한 목소리로 가득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들과의 대화가 많았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나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펜션 너무 좋아요! 코로나 때문에 어디 제대로 가지도 못했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신나게 놀 수 있는 걸 보니 저희도 큰 위안을 받았어요.” 그 한마디에 그동안 애쓴 모든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또 다른 날, 한 가족이 수영장 옆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마친 뒤 마당에서 바비큐를 준비하며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여기 와보길 정말 잘했어요. 이렇게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어서 저희 부모님도 너무 좋아하시네요.” 그들의 웃음과 따뜻한 말은 펜션 운영의 보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첫 성수기 동안, 펜션은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가족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비록 작은 소규모 펜션이었지만 그곳에서 피어난 추억들은 절대 작지 않았다. 손님들이 떠난 후, 텅 빈 객실을 청소하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나는 조용히 웃었다. "내년에는 더 많은 가족들이 이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그 여름, 펜션은 나에게도 소중한 추억을 안겨주었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쁨과 보람도 컸던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 가을날, 남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개발자인 지인이 다른 동업자와 함께 독일에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창립했는데, 그곳에서 남편에게 마케팅 매니저로 일할 기회를 제안한 것이다. 지인은 남편이 이 역할에 적격일 것이라며 함께 일해보자고 권유했다. 이 제안은 남편에게 큰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스타트업 회사는 초기 단계라 여러 부분을 세팅할 필요가 있었고, 한국과의 시차 문제로 인해 처음 6개월 동안은 독일 현지에서 일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는 우리에게 큰 결정이었다. 남편은 이 기회를 받아들이고 싶어 했다. 그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했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뿐 아니라 이 제안은 그의 경력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로의 이주는 단순히 직업적인 선택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전반에 큰 변화를 의미했다. 코로나로 인해 국가 간 이동 절차가 복잡해졌고, 한국에서의 일상과 안정감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깊이 고민했다. 남편의 경력 발전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을 존중하면서도, 우리의 가정생활에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했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많은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지만, 초기 적응 기간 동안의 어려움도 예상되었다. 또한, 무엇보다 장기적인 펜션 운영 계획도 고려해야 했다.
결국 우리는 같이 결정했다. 남편은 새로운 도전을 하기를 원했고 나는 남편의 새로운 시작을 서포트해주기로 결심했다. 그 후 나는 한국에서 펜션이 내가 없어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솔직히, 나도 이제 펜션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펜션을 만든 것이니까.. 그 시작은 바로 믿을 수 있는 직원 채용이었다. 펜션 운영의 핵심은 청결, 그리고 청결이었다. 나는 절대 손님들이 불쾌한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 결심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양평의 한 펜션에 놀러 갔던 날이었다. 부엌 싱크대에서 요리를 하려는데, 싱크대며 식기들이 끈적끈적해 손을 대기 싫었다. 결국 요리를 포기하고 돌아왔던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실망은 나를 다짐하게 했다. "나는 절대 그런 펜션은 만들지 않을 거야. 손님들이 호텔보다 더 깨끗하다고 느낄 정도로 완벽한 펜션을 만들 거야!"
물론, 깨끗함을 유지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리고 비용도 더 들었다. 하지만 숙소의 청결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채용 공고를 여러 채널에 올리고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지원자를 모집하며 신중하게 사람을 뽑았다. 면접과 테스트를 통해 책임감 있고 성실한 인재를 선발하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펜션 청소 경험이 있는 분들이 와서 "이거 말고 매직블록으로 청소하면 정말 편하고 깨끗해요."라며 자신만만하게 조언했었다. 하지만 물기가 마른 후를 보니, 물때가 그대로 남아 다시 청소를 해야 했다. 내 청결 기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결국, 경험이 없는 대신 정리정돈과 청소를 즐기는 사람들을 새로 뽑아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직접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기존의 습관이 없는 이들은 내가 가르쳐준 대로 완벽하게 청소를 해냈다. 드디어,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팀이 완성되었다. 현장 관리는 부모님께서 도와주시기로 했고, 그에 따른 보수를 드리기로 했다. 온라인 고객 상담과 예약 관리는 내가 독일에서도 원격으로 처리할 수 있어 모든 준비는 차근차근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마음 놓고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마침내 꿈꾸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무실이나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아침마다 힘겹게 일어날 필요 없는 삶, 그리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만큼 일하는 삶! 하루에 한두 시간만 일해도 이전 직장에서 벌던 월급보다 더 많은 수익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지금, 과거의 모든 고생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처음 땅을 사며 느꼈던 망설임, 대출을 받을 때의 불안감과 초조함, 공사 과정에서의 끝없는 문제들, 인테리어를 완성하며 흘렸던 땀과 눈물. 펜션이 완성되기까지 무려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확신한다. "내가 걸어온 길은 틀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단순히 비즈니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인내와 헌신,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은 무엇보다 강력한 도구였다. 모든 실패와 좌절은 결국 더 큰 가능성을 보게 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마침내, 나는 내가 꿈꾸던 자유와 성공의 상징에 도달했다.
자신만의 일을 시작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모든 힘들었던 순간들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헛된 투자와 노력이 아니었고, 내가 제대로 된 길을 선택했음을 마음 깊이 깨달았다. 만약 펜션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와 남편은 여전히 일에 얽매여 살았을 것이다. 노후 대비와 생활 자금을 위해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일을 계속했을 테지만, 펜션 건물이 완성된 후에는 당장 일을 그만두어도 거주할 집이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는 우리의 삶에 안정감과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했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 현재를 중요시했던 스타일이라 노후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독일의 노후 대비 연금 시스템은 좋지만 남편은 주로 외국에서 일을 해서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없는 상태였고 그걸 늦게나마 깨달은 남편은 펜션을 시작하기 정말 잘했다고 동감했다. 펜션이 앞으로 얼마나 성공적 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시도하여 무언가를 완성하고 성공적으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끈질기게 노력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스스로에게 보여줄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얻어진 자부심과 성취감은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었으며,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을 보며 깊은 자신감을 느꼈다.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것은 돈보다 더 값진 가치였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다.
한편, 내가 펜션 사업을 시작할 때 주변의 의견을 듣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몇몇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겠어?',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아?', '대출은 언제 갚을 거야?', '손님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와 같은 걱정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런 말들이 내 결정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내가 시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런 걱정들이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그들의 말을 최대한 흘려듣기로 결정했고 결과적으로, 나는 이러한 걱정을 감내하며 강한 의지로 밀어붙인 대가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펜션 사업은 내가 배운 학사학위나 석사학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였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호주에 공부하러 가지 말고 그 돈으로 더 일찍 시작할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내가 겪은 모든 경험들이 나에게 자유로워지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고, 내공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규직으로 일을 했기에 대출도 받을 수 있었고, 쓸데없는 곳에 돈을 소비하지 않아 최소 자금도 마련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20대에 펜션 사업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그때는 아마 망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에는 사업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들과 우선순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경험을 쌓고 내공을 다진 후에 사업 아이디어를 갖게 되면서, 나는 더 철저히 준비할 수 있었다. 이는 실패 확률을 줄이고, 사업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경험이 쌓이면서 얻은 지식과 통찰력 덕분에 사업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나는 더욱 자신감 있게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노마드 열풍이 불어오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란 말 그대로 정해진 사무실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원격으로 일하며 자유롭게 생활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유동적인 생활을 택하며, 지속적으로 여행하거나 다양한 장소에서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의 확산과 함께 디지털 노마드 문화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 출근 없이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는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 각지에서 일하며 원격으로 소통하고 협업하면서, 자유로운 여행과 새로운 문화 경험을 동시에 즐기는 삶을 꿈꾸고 있다. 이는 개인의 삶의 질과 일의 유연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기술 발전과 인터넷 접근성 향상은 이러한 트렌드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협업 툴, 그리고 빠른 인터넷 속도는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며,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삶을 더욱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직장 형태를 넘어서서 개인의 삶의 질과 일의 유연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형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프리랜서’, ‘원격 근무자’, 그리고 ‘기업가’. 각 그룹은 자신의 특성과 목표에 맞춰 일과 삶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고유한 방식으로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활용하고 있다. 프리랜서는 주로 프로젝트 기반으로 일하며, 자신의 시간과 작업 장소를 유연하게 관리한다. 이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고객과 작업을 진행하고,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직업군으로는 그래픽 디자이너, 번역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카피라이터, 영상 편집자,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 등이 있다. 원격 근무자는 회사의 일원으로서 지리적 제약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장점을 살리고 있다. 이들은 회사의 정책에 따라 원격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프로젝트 매니저, 데이터 분석가, 온라인 강사, 고객 지원 전문가, 콘텐츠 마케터 등이 원격 근무자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가는 자신의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실현하며,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상점 운영자, 앱 개발 스타트업 창업자,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 창립자, 온라인 코스 창립자, 블로그 또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 컨설팅 회사 창립자, 디지털 출판사 운영자 등 다양한 형태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펜션 사업은 ‘기업가’ 유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디지털 예약 플랫폼을 통해 고객 예약을 관리하고, 실시간으로 예약 현황을 확인하며, 고객 문의와 피드백은 네이버 톡톡, 카카오톡, 이메일 등을 통해 처리한다. 또한, 소셜 미디어, 블로그, 이메일 마케팅 등을 활용하여 펜션을 홍보하고 고객을 유치한다. 펜션의 일상적인 운영과 유지보수를 위해 현지 직원을 고용하고, 원격으로 이들을 관리하면서 자유롭고 유연한 업무 환경을 즐긴다.
이렇듯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일할 수 있으며 최근엔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디지털 노마드 직업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디지털 아트를 제작하여 NFT(Non-Fungible Token) 마켓플레이스에 판매하는 NFT 아티스트,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가상 회의, 웨비나 그리고 온라인 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가상 이벤트 플래너, 암호화폐 시장에서 거래를 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크립토 트레이더, 인공지능 모델을 훈련하고 데이터 라벨링 작업을 수행하는 AI 트레이너, 화상 통화 및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고객에게 피트니스 코칭과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온라인 피트니스 트레이너, 원격으로 건강 관리와 상담을 제공하는 디지털 헬스 코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가상 부동산을 매매하고 임대하는 일을 하는 가상 부동산 에이전트, 드론을 활용하여 항공 촬영을 진행하고, 이를 사진이나 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판매하는 드론 촬영 전문가, 교육 기술(EdTech) 솔루션을 개발하고, 학교나 교육 기관에 도입을 지원하는 에듀테크 컨설턴트, 여러 국가에서 여러 개의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는 글로벌 호스트 그리고 여러 호스트의 숙소를 대신 관리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어비앤비 프로퍼티 매니저 등이 있다.
만약 이런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목표로 한다면 어떻게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프리랜서, 원격 근무자, 기업가 등 디지털 노마드의 다양한 유형 중 어떤 것이 자신에게 맞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그래픽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 디지털 마케팅 등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다양한 옵션을 탐색하고, 어떤 일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지 실험해 보는 것도 좋다. 일단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관련 분야 일을 준비하고 여러 가지 플랫폼을 통해 직접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Behance나 Dribbble 같은 플랫폼에 업로드하여 자신의 작업을 홍보할 수 있다. 클라이언트를 찾기 위해 Upwork, Freelancer, Fiverr 같은 프리랜서 플랫폼에 가입하여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면 GitHub에 자신의 코드를 올리고, 프로젝트에 기여하며, LinkedIn을 통해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Google Ads나 Facebook Ads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클라이언트를 유치해 보자. 혼자서 시작하기 어렵다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거나 공동 작업을 고려해 보자. 예를 들어, 그래픽 디자이너는 디자인 컨퍼런스나 워크숍에 참여하여 다른 디자이너들과 교류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해커톤이나 코딩 부트캠프에 참여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는 온라인 마케팅 포럼이나 웹세미나에 참석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미 성공한 디지털 노마드의 경로를 연구하는 것도 유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블로거가 있다면, 그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관찰하면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멘토링을 받는 것은 언제든 훌륭한 방법이다. 초기에는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을 쌓고, 다른 전문가들과 협력해 보는 것도 시도해 보자. 예를 들어, 작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등으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협업 경험을 쌓으면 자신의 경로를 더 확실히 할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에서는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며 자신의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불확실성이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꾸준한 노력과 학습으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자만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한 번 굳건히 마음을 먹고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생각해 보고 실행하고 준비한다면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