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초록한 식구들과 함께 산다. 집에 생명력이 있어야 에너지가 생기는 거라며 주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하나둘씩 데려다 놓은 초록이들.
앙증맞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하직하는 것을 목격하고 웬만하면 잘 자라는 녀석들로 꽃집 주인의 추천까지 받아 데리고 와서 그런지 굳세게 잘 자란다. 자꾸 보면 정든다고 자연스레 초록이들이 있는 곳부터 눈길이 가는 주인으로 길들여 놓은 대단한 녀석들이다.
가는 카페마다 본다. 꽃집마다 있다. TV만 틀어도 등장한다. 나만 없다. 나만 없을 수 없다며 처음으로 사달라고 부탁드려 모셔온 녀석이 등장했다. 풍성한 머릿결을 휘날리며 나타난 이 녀석은 직사광선이 없는 밝은 곳을 좋아한다 해서 침실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틸란드시아 일명 틸란이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아침 눈은 뜨면 틸란이가 보인다. 바람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미세먼지가 집안에 들어오든지 말든지 그 따위와 상관없이 창문을 연다. 풍성한 머릿결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섬세하게 손을 넣어 흔들어준다. 머릿결 한 올 한 올 사이로 바람이 부드럽게 스쳐갈 수 있도록 한 껏 볼륨을 넣어 준 후 방을 나온다. 모닝 인사를 하는 초록이들을 순발력 있게 휙휙 둘러보고 출근 준비를 한다. 틸란이, 초록이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딱 한 번씩만 살펴봐준다.
틸란이는 주 1회만 물을 좋아한다.토요일 아침이면 대야에 한 가득 물을 담아 2시간 푹 샤워를 시켜준다.힘 없이 얇아지고 보들보들했던 녀석은 생기를 되찾고 푸릇푸릇한 싱그러움 한가득 안고 물에서 나온다. 빨래 건조대에 매달려 똑 똑 여운을 즐긴다. 젖은 머릿결로 좋아하는 바람도 신선하게 마실 수 있게 창문을 열고 엉킨 머릿결을 조심스럽게 풀어준다. 다시 자기 자리에 걸어준다. 다시 한번 더 풍성하게 볼륨을 넣어주고 사랑 한가득 눈빛을 안겨주고 방을 나온다. 빈 페트병에 물을 채워 적당히 나눠가며 초록이들에게 물을 준다. 3~4일에 한 번씩 물은 마셔야 하는 녀석도 있었던 것 같은데 차별하면 안 되니 아주 공정하게 일주일에 딱 1번만 물을 주기로 했다. 틸란이, 초록이들 모두에게 더없이 공정한 주인이다.
초록이 가득한 거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또 다른 초록이 가득한 서재에서 매일 차를 마신다. 주말이면 서재 죽순이가 되어 뒹굴뒹굴한다. 참 많은 시간을 의식도 없이 초록이들과 함께 한다. 아침 눈 뜰 때와 잠잘 때만 틸란이를 잠시 본다. 암막커튼을 쳐버리면 틸란이만 밖에서 밤을 보낸다. 모든 초록이는 밤에도 실내에서 주인과 같은 공기를 느끼는데, 틸란이만 창가와 베란다 사이에서 야외취침을 한다. 칼같이 공평하여 공정을 부르짓는 주인이라 틸란이만 차별하는 것 같아서 내심 미안하다.
생명력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초록이들은 이상하리만치 잘 자라고 있다. 늘 주인만 모르게새싹들이 돋아나고 항상 잎들이 무성하다. 주인보다 키가 더 큰 거 아닌가 싶은 정도로 잘 자라는 틸란이는 더없이 건강하다.결론은 알아서 잘 자라는 모두 행복한 우리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