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토끼 모양의 거실 벽시계는 나만 시계인 줄 아는 형태라 타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작은 탁상용 시계도 없는 모든 공간은 주말이면 해가 있으니 낮이 되고 어두워지니 밤이 된다. 시간의 흐름이 끊긴 공간이다. 일주일 동안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만든 토끼 벽시계는 독립하던 날 애써 챙겨 왔다. 시계가 아니라 애착으로 챙겨 나온 것이건만 이 시계의 용도를 이제야 인식하게 되었다.
중드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어느 날, 유창한 중국어로 대화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나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 무엇이 현실인지 잠시 멍하니 누워있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으며 출근 준비를 한다. 중국어로 인사조차 못하면서 꿈에서라도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하던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무의식적인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언어라면 나의 잠재능력 안에 있지 않을까 심히 과한 희망을 가져본다.
'산하령'에 홀릭 중인 요즘, 저녁이 무척 바쁘다. 7시 45분까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소파에 자리해야 한다. 더없이 개운하고 편안한 상태여야 한다. 긴 광고조차 설렘으로 기다리며 드라마가 시작되면 자막 한 글자 놓치지 않으면서 영상도 눈에 담아야 하기에 초집중이다. 예고편 없이 뚝 끝나버리고 광고가 나온다. 본능적으로 시계를 보니 믿을 수 없는 8시 50분이다. '안돼, 안돼,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흐른 거야.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려.' 혼자 개탄을 금치 못하며 티브이를 끈다. 아름다운 여운과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행복한 마음으로 저녁 시간을 시작한다. 평일의 설렘을 선물해 주는 나만의 보상 타임이다.
방송 편성표에 맞춰 티브이를 본다. 아무리 좋아하고 기다려지는 프로그램도 요일과 시간을 확인하고 맞춰서 채널을 고정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본방을 놓친 날은 재방송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도전한다. 재방까지 놓친 날은 아쉬움 한가득 안고 언젠가는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칠 날이 있으려니 기다리며 비워둔다. 언제든 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건만 편성표에 맞춰 드라마, 영화, 예능을 보는 주인 취향 덕분에 토끼 벽시계는 거실에서 제 할 일을 톡톡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