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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May 02. 2023

도망치지 않기

할 일이 사라져 버린 날


 수필 쓰기 수업이 열리는 날을 기다렸는데 사정이 생겨 취소되었다. 이럴 땐 참 맥이 풀린다.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그러지는 순간. 당장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나는 무얼 해야 할까. 약속 없는 주말이면 이런 느낌이 종종 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급행열차를 타고 달리다 엉뚱한 곳에 잘못 내려 싸해진 기분. 할 일이 사라지면 마음에 발이라도 있는지 동동 댄다고 해야 할까.     

 

 그럼 이제 누구를 만날까 살펴 물었다. 걔는 뭐 때문에 바쁘고, 그 친구는 요즘 많이 힘들지 하고 떠올리다 보니 잠시라도 살아갈 맛이 없어졌다. 아직 그날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외로웠다. 예전이라면 손을 휘휘 저으며 없애버릴 감정. 이번엔 자리에 멈춰서 떠오르는 것들을 느껴보려 했다. 서운해지고 울적해지는 이 순간을.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이 느낌을. 막막한 그날에 대한 먹먹함을. 피하지 말고 맞서자고. 불편함도 받아들이면 괜찮다고.      


 작은 힘을 내어 지금 힘들 그 친구에게  어찌 지내냐 안부를 물었다. 다정한 언니에게 커피쿠폰을 선물했다. 받은 게 있어서 언니에게도 한 턱 쏴야지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도망치지 말자고. 이 감정에서. 만날 순 없어도 좋아하는 이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카톡을 보냈다. 이모티 콘이 딸린 하트가 되돌아오니 마음이 발그레졌다. 수업은 없지만 그날 혼자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갈 상상도 하니 몸에 온기가 도는 것만 같았다.      


 예전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을 싹싹 지워버렸다면 나는 자꾸만 비어있는 느낌을 되풀이할 것이다. 이번에는 불편함을 껴안고 익숙해지길 바랐다. 오늘은 그것에 대한 작은 성공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이 허할 때 의도적으로 기억하려 한다. 다정한 이와 연결되길 기대하는 것, 나와 보낼 살뜰한 시간을 꿈꾸는 것. 감정을 자꾸 마주하다 보면 잠시 식었던 그의 마음에 다정스레 하트를 보내줄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를 위로한 순간을 기억하며.





© nixcreative,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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