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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May 03. 2023

순간에 깃들어서

줌바 추는 날

 줌바 댄스를 작년 가을부터 추기 시작한 게 아직도 하고 있다. 조금만 언짢아도 피하는 사람이라 삼 개월을 넘기는 나를 보는 걸 신기해하며. 

 줌바는 나 같은 아줌마들이 추는 줌이라 명칭이 ‘줌바’인 줄 알 정도로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했는데. 코로나로 홈트가 유행할 때 친정에 들렀다가 알게 되었다. 영상을 보며 춤추는 엄마를 보니 누구나 출 수 있는 춤이란 걸. 그렇게 내게 스미듯 다가왔다. 쉬운 동작에 찰 진 비트. 스텝과 음악이 잘 맞아떨어지는 맛을 홈트로 경험 한 뒤 함께 춤추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영화 ‘쉘 위 댄스’에서 일상이 되돌이표 같은 주인공 이 댄스를 배우며 깨어나던 것을 바라보며 ‘아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이어졌다.  



    

 서서 몸을 바닥으로 구부리면 손바닥이 바닥까지 닿지 않는다. 다리를 양쪽으로 찢어봤자 각도가 90도 나올까 말 까다. 아무리 수련을 해도 뻣뻣함은 그대로였지만 건강해지겠다고 허리라인을 기대하며 일 년을 그냥 요가도 아닌 파워요가를 했다. 코로나로 혼자 걷는 생활을 오래 하다 수영을 시작했다. 수모를 꽉 눌러쓴 내 모습은 진짜 못생겼었는데  꾹 참고 다녔다. 애들 방학에는 자유 수영을 했다가 신청을 놓쳐 버렸다. 자리가 남아 있는 운동이 없나 살피다가 줌바를 발견했다. 걱정도 되지만 한 번 해 볼까 도전을 한 것이다. 



수업 첫날, 귀가 터져라 울리는 음악 소리에 에어로빅 같은 준비운동을 할 때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내가 바란 건 댄스였는데. 열 맞춰 움직이는 동작은 내가 기대한 게 아니었다. 사람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것처럼 줌바에도 클라이 막스라는 게 있었다. 곧이어 라틴 음악 같은 것이 들려오더니 살랑살랑 몸을 흔드는 선생님을 보니 좋아서 마스크 사이로 입이 귀에 걸렸다. 얼마나 입 째지게 방실거리며 춤을 췄던지.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춤을 추며 '바로 이거야'라는 입말이 맴돌았다. 


 재미가 좋아서 애들 방학 때는 밤 시간으로 수강을 옮겨가며 춤에 매달렸다. 신입이 되어서 거울이 잘 보이는 제일 앞줄에 자리를 튼다는 건 보통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인기 없는 내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는 제일 가장자리에 둥지를 트고 춤추는 일이 편해졌다. 짝을 지어 댄스 추는 민망함을 이겨내고 지금의 반에 깃들었다. 그동안 그만둘까 말까 얼마나 많은 내적 갈등이 일어났던지. 낯가리는 내가 레깅스를 입고 막춤 타임에 요상한 춤을 추며 흔들어대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둠칫둠칫 비트가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낸 여럿 수강생들이 그렇다. 소울이 충만하게 몸의 시동을 건다고나 할까. 딴생각하면 박자를 놓치기에 숨 한 번 꼴딱 삼키고 선생님의 현란한 발동작에 눈을 떼지 않는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이에서 딴생각을 했다간 스텝이 꼬여버린다는 걸 알기에. 최대한 잡생각이 떠오르지 않게. 만약 그렇다면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가며 생각을 떨치곤 다시 자리를 찾아간다. 엇박자를 타지 않게 음악과 동작이 하나 될 수 있도록 온 정신을 모으는 것이다. 기분 나빴던 일이라곤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어제의 걱정 따위는 바람을 가르는 손동작으로 날려 버리고.     





 



 언짢은 일을 껌처럼 자꾸 씹어대는 버릇이 있다. 감정은 헤아리는 게 중요하다 싶지만 불쾌한 일은 한구석에 미뤄둬도 나쁘지 않다고 요즘 들어 생각한다. 그 일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내뿜고 다닌 들 삶이 매끄러워 진적은 결코 없었다. 상처가 생겼지만 일상까지 물들게 하고 싶진 않았다. 주어진 날을 온전히 살아내다 보면 옅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딴생각할 시간도 아깝다.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을 되새기는 것보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훨씬 중요하니깐. 이렇게 말해놓고 자꾸 곱씹는 나지만. 일상에 깃들려 애쓰다 보면 언젠가는 춤추는 시간 처럼 살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을 털어내기 좋은 시간 줌바 추는 날. 오늘도 온몸 구석구석을 흔들어 대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먼지처럼 떨쳐낸다. 딱 춤추는 날 마냥 매일을 살고 싶다. 

온전히 깃들어서. 

절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 drewcolin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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