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story / 에세이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라는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는 유아기 시절에는 가식이라는 단어를 모를 뿐 아니라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들이 커가면서 사춘기를 지나고, 정체성이 확립되면서 사회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다가오는 것이 바로 가식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그 가식은 어느덧 잘 맞는 옷처럼 우리 몸에 익숙해져서 알게 모르게 가식의 사회에 살게 된다.
가식은 우리 뇌에서 반복 작용으로 그 말이나 행동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무감각해진다. 그런 뇌는 끊임없이 거짓 신호를 보내면서, 참(T)과 거짓(F)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어느 순간 자신을 꾸미게 되고, 덧붙여서 미화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 가면(페르소나) 속에 숨게 된다. 가식에 의해서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고, 또 가장 많이 속는 대상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페르소나(persona)는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인데,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인다.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개인은 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고,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성립할 수 있게 된다.'라고 했다.
페르소나는 자아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성격, 외면적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자기 모습, 사회적 자아로서 사회적 역할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가장 외적인 인격이다. 융은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아와 다르며,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 하거나 자신을 은폐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와 갈등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페르소나는 주위 사람들의 요구를 포용해 가며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게 해 준다.
페르소나를 자신의 본성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본모습을 잃게 되고,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들이 생겨, 열등감이나 갖가지 애로사항이 생긴다. 이러한 것을 '페르소나의 팽창'(야누스)이라고 부르는데, 페르소나의 팽창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페르소나로 사는 삶을 구별하여, 페르소나 속에 감춰진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자아실현'이라고 한다.
가식의 사회에 살면서 자아실현 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생활하면서 야누스적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푸른 하늘에 떠가는 풍선을 보며 살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그 푸른 하늘이 항상 내 옆에 있어 좋다.
『그는 가난하고 가식이 없는 한 인간이며, 한 군데도 어두운 구석을 남겨놓지 않은 태양을 사랑한다.』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