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억 여행을 한다. / 에세이
한국의 행정구역 중 8도(道)의 도청소재지가 어디인지 대부분 알고 있지만, 미국 50주(State)의 주도(州都)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도 관심이 없거나, 너무 많아서 모를 수도 있다. 미국의 50개 주도(州都)들이 큰 도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명한 도시들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에 여러 번 여행하면서 주로 마이애미, 올랜도, 잭슨빌 등을 방문한 적은 있어도 주도(州都)인 탤러해시(Tallahassee)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랜도에서 북서쪽으로 약 500Km 떨어져 있어 자동차로 약 5시간이 소요되었다. 고속도로를 나와 도시로 진입하면서 저녁 무렵이라 그런지 화려하지 않은, 조용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곳을 온 이유는 플로리다주립대학교(FSU)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일찍 본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FSU 지원자들을 위한 캠퍼스 투어에 참여했다. 캠퍼스를 돌면서 인상적인 곳은 도크 캠벨 스타디움(Doak Campbell Stadium)이었다. 8만 명 이상 수용하는 이곳에 대형 그림이 붙어 있었다. ‘Florida State Seminoles Football Team’을 상징하는 인디언의 모습이 도시 곳곳에 휘날리고 있는 이유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눈에 띄는 뛰어난 기록들, 수많은 극적인 승리들, 팀 이미지인 세미놀족의 창, 전통 무늬를 사용한 헬멧과 유니폼이 멋있다. 이 팀의 헬멧과 유니폼은 미국 대학 풋볼 최고의 유니폼 투표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경기 전에 세미놀 분장을 한 남자가 말을 타고 와서 불타는 화살을 그라운드에 꽂는 의식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의 역사는 영국인과 유럽인들이 미 대륙을 침략해 토착민인 인디언과 300년 동안 벌인 갈등과 전쟁의 역사다. 미국은 탐욕스러운 백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인디언들의 땅을 침략하고, 인종 청소를 한 치욕의 역사를 안고 있다. 미국 서부 영화에서 단골로 나오는 것이 인디언과의 전투였다. 동부지역에서 미국 전역으로 영토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인디언들과의 혈투는 미국 형성과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토착세력을 몰아내고 앞으로 나가는 서부의 사나이들은 미국의 우상이었지만, 인디언들에게는 악마들이었다.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은 1830년 미국에서 제정된 ‘인디언 이주 법’에 의해 미국 내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 겪었던 일련의 강제 이주를 말한다. 세미놀족, 체로키족, 머스코지족, 치카소족 촉토족이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미국 남동부의 고향 지역을 떠나 ‘인디언 보호지역’(Indian reservation)으로 지정된 미시시피강 서부로로 이주해야 했다.
탤러해시는 아파치어로 '오래된 마을' 또는 '버려진 들판'이라는 뜻이다. 세미놀 족(Seminole)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문명화된 인디언 다섯 부족 중의 하나로 플로리다의 인디언이었다. 토착세력인 세미놀족과 전쟁에서 미국 기병대 약 1,500명이 전사했다. 세미놀족은 미국 정부와의 투쟁을 포기하지 않아서 그들을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자칭했다.
플로리다 세미놀족은 평화협정을 맺고, 미국 정부와 부족의 토지에 대한 그들의 주권을 승인해 주는 조건으로 수탈되는 영토에 대한 보상금에 동의를 했다. 이후 그들은 면세 담배 판매, 관광과 카지노 등으로 경제활동을 유지하였다. 그들은 인디언 보호지역이 아닌 도시에서 세미놀 족이 아닌 미국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릴 적 즐겨봤던 서부영화에서 누가 진정한 승자이고 패자인지, 누가 그 영토의 주인인지 몰랐다. 배우들의 총싸움하는 멋진 모습을 보면서 열광했을 뿐이다. 항상 이기는 자는 미국인들이었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 먹잇감이 되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마감되면서, 강자와 약자가 공생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들은 도크 캠벨 스타디움에서 ‘Florida State Seminoles Football Team’으로 미국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