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는 곳에 항상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빛과 그림자는 영원한 동반자이다. 지글거리는 태양을 보면서 붙어 다니는 그림자는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귀찮게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쫓아다니는 그림자는 무섭고,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자연 현상에 의한 그림자는 실체는 없지만, 순간적으로 감정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그림자를 찾아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눈이 쌓여 있는 높은 산들이 보이고, 조금 지나면서 황무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차는 일자로 획을 그은 도로를 달린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도로는 다시 북쪽으로 꺾인다. 가끔씩 보이던 집들이 시야에서 멀어지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잘 닦여진 포장도로는 음악의 리듬에 따라 꼬불꼬불 거리며 신나게 내려간다. 멀리 보이는 평원은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들어댄다.
많은 차량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Death Valley National Park'이라는 안내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죽음의 계곡‘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밝아 보인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1800년대 서부 개척사, 골드러시(Gold rush)로 이곳을 지나가던 포티나이너스(Forty-niners)의 어두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태양은 그림자를 잠시 숨겨놓고, 뜨거운 빛을 발산하면서 지글거리고 있다.
데스벨리 여행을 시작하면서 지명의 이름이나 그 유래와는 상관없이, 줄곧 ‘죽음의 그림자’가 쫓아오는 것을 느꼈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해수면보다 82m 낮은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도 그저 자연스러울 뿐이다. 멀리 소금이 흐르는 강처럼 보이는 곳은 소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그곳으로 오라는 손짓하며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자브리스키 포인트'에서 바라본 주름진 깊은 계곡들은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언덕 위에 렌즈를 열어 놓고, 셔터를 고정시킨 서부 개척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카메라가 외로이 서있다. 해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사진작가는 커다란 필름 판을 갈아 끼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자에 따라 계곡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저 멀리 어두운 그림자가 계곡 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리고 조용히 온몸을 덮으려 한다.
'아티스트 팔레트'는 바위의 금속성분이 풍화되어서 협곡들이 예쁜 색깔을 발산하고 있다. 계곡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서자 묘한 기분이 든다. 양 옆으로 누런 흙들이 높게 시야를 가려 답답함이 계속 이어진다. 거대한 무덤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영영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집트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도 깊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지만, 이보다 무섭지 않았다. 갑자기 급경사의 내리막이 나타나면서 차는 밑으로 곤두박질치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가기를 몇 번 반복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온몸에는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머리카락은 하늘을 향해 있다.
산을 향해 꾸불거리는 길을 달린다. 멀리 보이던 산이 가까이 다가온다. 바로 그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게 된 것은 '단테스 뷰 포인트'로 올라가서였다. 1,670m의 정상에 오르자 산 아래로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죽음의 그림자였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지옥문에 새겨진 글귀가 생각난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잠시 희망을 내려놓고 다시 산 아래를 봤다. 그림자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더욱 강렬하게 추면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곳에서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본다. 희망을 버릴 만큼 그렇게 살아왔나. 하얗게 흐르고 있는 지옥의 강을 보면서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는 귀신들의 몸짓이 오버랩된다. 그들이 다가와서 온몸 전체를 감싸는 느낌이 든다. 순간, 두려움이 몰려오면서 파란 하늘을 쳐다본다. 잠시 잃어버렸던 정신이 되돌아온다. 현실의 세계는 아직 빛이 존재하고, 그림자와 함께 공존하고 있다. '단테스 뷰 포인트'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남은 희망이 아직도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