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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올랜도의 하늘

나는 추억 여행을 한다. / 에세이

by 김창수 Jan 27. 2025

   문득 올랜도의 맑은 하늘과 낮게 깔려 있는 구름이 보고 싶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있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바깥출입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상황에서 밖으로의 탈출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기나긴 코로나 터널을 끝내 참지 못하고 올랜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조금만 더'라는 말을 수 없이  외치다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 이런 시국에 어딜 가냐는 친구들의  애정 어린 비웃음을 나는 무시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그렇게 많았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잘못 온 것 아닌가 할 정도로  텅 비어 있는 공항 안은 음산했다. 코로나 음성확인서를 받기 위해서 검사소를 향하는 마음속에는 '음성'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간호사가 솜이 묻어 있는 긴 막대기를 코 속 깊은 곳으로 넣었다. 순간, 머리가 띵해지지만, 참아야 했다. 만약 '양성'이 나오면 비행기 탑승이 불가능해 친구들의 비웃음이 현실로 될 것 같았다. 텅 비어 있는 공항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자가 떴다. 2시간 만에 속으로만 외쳐 댔던 '음성'이라는 단어를 허공에 날려 보내며, 몸은 이미 하늘에 떠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코로나 상황의 현실을 느꼈다. 탑승객이 거의 없어서 전세를 낸 비행기로 착각했다. 수없이 많은 비행기를 타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기내를 왔다 갔다 하는 승무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승객과 승무원수가 비슷했다. 자리에 여유가 있어서 편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다행히 저녁 비행기라 대부분 승객들은 가운데 4개의 좌석을 침대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가끔 음료수를 제공하는 승무원들도 많지 않은 승객으로 여유로움을 보여줬다. 

  비행 일정은 여러 번  변경되었다. 미국에서 환승하는 비행기가 승객 부족으로 비행 일정이 취소되었고, 흔하지 않은 비행기 기술 문제로 출발 일정이 지연되면서, 결국 경유지인 L.A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호텔에서 멋있는 저녁으로 호사를 부리며 다음 비행기 좌석의 편의까지 제공받는 특혜를 누렸다. 출국 전  제시했던 코로나 음성 확인서와 예방접종 확인서는 이미 짐 꾸러기 어디엔가 처박혀있었다.

  아침에 L.A에서 탄 비행기는 5시간이 지나자, 올랜도 상공에 접근하고 있었다. 기내 창 밖으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고, 넓은 평원에 수많은 크고 작은 호수들이 점점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집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집들은 땅에 묻혀 있는 듯했으나, 비행기의 고도가 떨어지면서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났다. 공항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랜딩 하는 비행기 착륙의 약한 충격이 출국부터 조마했던 마음을 사라지게 했다. 


  나는  지금 올랜도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보려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몇 년 전 처음 왔을 때,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광경에 몇 시간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 하늘은 아름다운 자태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하얀 구름이 낮게 깔려 손을 올리면 다을 것 같다. 소리 없이 조금씩 흘러가는 구름은 포근했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처음 느꼈던 감정에 변화 없이 쭉 이어졌던 것처럼 오랫동안 하늘을 본다.

  그 하늘 속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잊혀 가는 사람들, 어렴풋이 생각나는 여인들 그리고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낯익은 친구들이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저 멀리서 가족도 구름 속에 흘러 오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하늘이 저 멀리서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가슴이 설렌다. 


  미래의 파란 하늘에 내 마음을 싣는다.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 속에서 미래의 세상을 본다. 가보지 못한 곳, 살짝 보고만 싶은 곳,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 그곳에 구름이 멈추었으면 한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수줍음을 감추고 얼굴만 내밀면서,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면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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