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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나이아가라의 물보라

나는 추억 여행을 한다 / 에세이

by 김창수

성장한 아이들과 여행은 어릴 적과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어렸을 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했지만, 다 커서는 가고 싶은 곳만 이야기하면 알아서 여행 계획을 잡아준다. 두 다리만 있으면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이 편안함은 그동안 부어 놓은 적금이라 생각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공부하는 애들 방학과 회사의 휴가 기간을 조정하여 캐나다의 동부 여행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몇 개의 여행 일정표를 만들어 메일로 보냈다. 뷔페식당에서 뭘 먹을까 호사스러운 선택을 만끽하면서 결정 못 하고 고민하다가 머릿속만 뒤집혔다.

‘여름은 물이다’라는 대명제를 정한 뒤, 메일 답장에는 천섬(Thousand island)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적어 보냈다. 메일 교신은 작은딸과 이루어졌고, 큰딸은 둘째를 ‘몬트리올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여행 계획은 완벽했으며, 비행기표와 숙소만 확정이 되면 당장이라도 날아갈 수 있다.


아이들이 같은 대학을 들어가고, 처음 가보는 몬트리올이었다. 공항에서 아이들이 보이자, 이별한 가족이 상봉하는 장면처럼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들을 끌어안았다. 그때 갑자기 둘째가 유학 와서 처음 만나 포옹했을 때 ‘캐나다에서 이러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하던 말이 떠올랐다. 문화적인 쇼크가 아니라 조크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섭섭함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짐을 풀고, 멋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얼마 만에 가족 식사인가. 이제는 성인들이 되어서 와인도 곁들인 뜻깊은 자리였다. 그동안 공부했던 과정을 들으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인생 선배로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이 다니는 학교가 인지심리학의 세계 최고 대학이라 전공을 변경해 보라고 권유를 했지만, 그들만의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웨이터가 문 닫을 시간이라는 눈짓을 주었다.

다음날, 아이들과 몬트리올의 대학 캠퍼스와 구시가지를 둘러보았다. 오후에는 겨울이 혹독하게 추워서 시내의 빌딩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지하 쇼핑가를 구경했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눈치 빠른 둘째는 안경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으나, 큰딸은 사고 싶은 물건이 없다고 했다. 남루해 보이는 신발을 보면서 ‘운동화를 사줄까?’ 하는데, 갑자기 울컥해졌다. 큰딸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당황했는지 '괜찮아요.' 하면서 눈시울을 불 켰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부모와 떨어져 공부하면서 남모르게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드디어 나이아가라로 출발이다. 천섬과 토론토를 포함하는 1박 2일 일정이다. 큰딸은 졸업 논문 준비로 둘째가 동행해 주기로 했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시간을 내준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꼈지만, 언제 또다시 이렇게 같이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 이 순간을 아낌없이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섬을 관광하고, 토론토를 거쳐 나이아가라에 밤늦게 도착했다. 종일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둘째와 많은 대화를 통해서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캐나다로 유학 와서 적응하는 과정, 한 번씩은 겪어야 하는 사춘기, 정체성 문제도 잘 이겨낸 것 같았다. 어릴 적 아이들에게 현지화(Localization)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사는 나라가 자기 나라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새벽에 스카이론타워(나이아가라 폭포 전망대)를 올라갔다. 떠오르는 해를 보는 순간, 빨간 태양에서 나오는 광선들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줄기를 비추면서 형용할 수 없는 하늘이 열리는 장관을 이루었다. 조금 지나면서 물보라가 일어나고, 주변이 밝은 빛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다, 곧 폭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태어나면 알아서 성장한다고 했다. 다산다사(多産多死) 시절에는 그 말을 믿었다. 그냥 건강하고, 튼튼하게만 자라주길 바랐다. 커가는 아이들과 오랫동안 해외 근무 및 유학 생활로 떨어져 있으면서 점 점으로 끊어져 보이지 않는 점선들이 많았다. 점들이 모여서 선이 되고, 선들이 모여서 형체가 되는 것인데, 아이들과의 완전하지 못한 형체를 보면서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보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식을 낳고, 그 아이들의 자식들이 나이아가라의 흩어지는 물보라가 아닌 뚜렷한 폭포수가 되고, 소리 없는 물보라가 아닌 우렁찬 그런 폭포수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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