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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2023.11.30. 목

by 고주

< 제일 추운 날 아침>


꽁꽁 언 늦은 달

손 비비고 있는 새벽 별

쨍그랑 깨지는 수리산 그늘

귀를 베어갈 것 같은 바람

볼에 실금을 긋는 찬 공기

따뜻한 공기를 마시려 담배를

피워 문 공사장 아저씨

손가락이 탈 때까지 빨다가

남은 열기까지 발바닥에 담으려

세차게 밟는다

나는

찬 공기 입으로 들어갈까 봐

어금니를 꽉 문다




점수를 알려달라고 아우성이다.

두 반에서 개별적으로 문제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옆 반에 지장을 줄 만큼 아수라장이 되었다.

부모님께 보여주기 곤란한 아이들이 절반이 넘는다.

서술형 답안이 있는 문제지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학생부에 기록할 근거 자료가 없어진다.

다 기록하고 나누어 주겠다고.

혹 부모님께 빨리 보여드려야 할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오면 먼저 주겠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절반.

점수도 반영되지 않은 시험에 이렇게 민감하다니.

시험은 연습도 어렵다.

창밖에 서성이는 잠깐 아침나절의 햇빛.

퍼석하게 쌓이는 나뭇잎.

아무리 바빠도 가볍게 시 몇 편 읽을 시간이 없어서야.

5층의 도서관.

청소년 시집이 아주 많다.

홀쭉한 페이지가 맘에 든다.

두 권을 반납하고 다시 두 권을 빌린다.

책을 보는 여학생들은 종종 본다.

남학생들은 축구화 닦느라 책장을 북북 찢는 일 말고는 책 옆에는 있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놈들아 이마에 흐르는 땀 말고, 영혼이 허기져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들어라.

맨날 여자 뒤치다꺼리나 하고 말 녀석들아.

통계 수업은 방향을 확 바꾸었다.

교과서 문제를 빠짐없이 푼다.

답을 철저하게 묻고 답하게 한다.

분단 사이를 오가며 발이 멈추는 자리에 손이 어느 쪽을 가리킬지는 나도 모른다.

이 정도는 알겠거니 하는 생각을 묻었다.

무조건 모른다, 알더라도 가물가물할 것이라 믿기로 했다.

쉬운 문제라도 대답하지 못하고 귀까지 붉어지는 아이도 있다.

괜찮다, 꼭 정답을 이야기하지 못해도 된다.

자기의 생각대로 말해라.

학급의 아이들이 다 보고 있는데, 그것이 말처럼 간단하냐고.

기본 개념을 다시 찬찬히 설명하고 시간을 더 준다.

잘하는 건방진 녀석들은 답답하겠지.

아예 눈과 귀를 닫고 있었던 아이들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겠지.

연수 때 앞자리를 피한 것은 그놈의 질문 때문이었는데, 자식들 임자 만났다.

팽팽한 외줄을 타는 기분으로 하는 수업.

내 목이 문제지, 맛은 쫄깃하다.

온풍기가 쉬지 않고 도는 교실은 이불 빨래도 금방 마를 것같이 건조하다.

책을 덮고 나오려는데 두 녀석이 다가온다.

“선생님 이상형이 뭐예요?”

또 무슨 속셈일까를 가늠하며 답을 간추린다.

“바라는 완벽한 모습” 했더니,

“저 녀석이 선생님이 이상형이래요”

이건 또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지.

말이나 좀 잘 들어라.

수행평가 채점, 점수를 올릴 수 없으니 문장으로 평가해주어야 한다.

각기 다른 표현을 해야 하는 부담.

주제선택반, 과목별 세부능력 기록까지 손가락이 구부러지겠다.

눈도 침침하고 고개며 어깨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

기간이 길어 안정되게 근무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완전 임자 만났다.

이렇게 선생님들이 고생하고 계셨구나.

잘 챙겨드리지 못했었구나.

그 죄로 벌 받고 있다.

힘들어도 재미는 있다.

평생 따라다닐 생활기록부를 쓰는 일 아닌가?

긴장해야 하고 몇 번이고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나 빨리 마무리해야 살 것 같다.

묵직한 짐을 등에 지고 다니는 것 같이 맘이 무겁다.

손가락아! 손가락아!

조금만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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