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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터지는 봄

2024.05.13. 월

     

몇 시에 수련회 떠나나요?

죽방렴 멸치처럼 운동장을 가득 메운 아이들에게서 눈을 못 떼는 

스쳐 지나간 세월에 바랜 하얀 머리카락

내려놓을 수 없는 짐에 못 이긴 15도만큼 앞으로 나간 고개

큰 소리 한 번 쳐보지 못했을 것 같은 가지런하게 모은 두 손

나무 뒤에 바짝 몸을 숨긴 할머니

저 많은 아이 틈에서 찾는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

그것만은 아닙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옮겨졌을 할머니 자신입니다

모르셨죠?

제 눈에는 그리 보입니다     




순둥이 4반.

체육대회에서 3등을 한 것은 불가사의다.

나의 예상이 이렇게 빗나간 적은 없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유는 이렇다.

게임 종목이 모두 단체경기였다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이 우선하는 구기종목이었으면 예상이 맞았을 텐데.

소리 없이 강한 4반의 저력을 보았다며 추켜세워 주었다. 


일차방정식의 활용 단원을 열심히 끌고 가는데, 운동장에 있는 시간이 많은 검둥이 대한이 놈이 자꾸 장난질이다.

지우개를 잘게 부수어 친구들에게 던지고 있다.

주의를 세 번씩이나 주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업을 멈추고 험악한 인상으로 쳐다본다.

교실은 순간 얼음이 되었다.

“수업 끝나고 대한이는 날 따라와. 너는 죽었다.”

없어져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아이들.

상당히 곪은 상처였던 모양이다.     

죄인을 취조하는 탁자 위에 마주한다.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는데도 장난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다른 아이들이 계속 자신에게 던져 상대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단다.

그러니까 피해자라는 말이냐고 했더니, 그렇지만은 않단다.

내가 수업이 끝난 후 학생부로 데려간다고 했을 때, 다른 아이들의 반응을 보았느냐.

모두 후련해하는 그 모습.

수많은 욕을 먹고 있었는지 알고나 있느냐.

담임 선생님께,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는 않겠다.

다음 시간부터는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이르고 보낸다.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다면 중1이 아니지.

성난 척 험악한 인상을 쓰지만, 마음은 평온하다.

그럴 정도는 되었다.

저 녀석 겁먹은 것 같지 않은데, 좀 센 약을 처방했어야 했는가?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따라온다.

옹알거리는 소리도 

돌아보니 인사를 크게 했던 그 아이

귀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고개를 그 아이에게로

“세상이 변했어요. 환해졌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했더니

얼굴이 보름달이 되어

“남자 친구가 생겼어요. 드디어 제 고백을 받아주었어요.”

해놓고는 계단을 세 개씩 뛰어오르는 저 아이

가슴이 터질 것 같겠지

동네방네 알리고 싶겠지만, 이제 막 한 걸음 내디딘 것을 

할아버지에게라도 확인받고 싶었을 것이다

아가 하늘에는 뭉게구름만 있는 것이 아니란다.

먹구름도 있고, 그 속에 천둥도 번개도 몇 개는 있단다

하지만 터질 것 같은 그 맘 하나로 

천둥도 번개도 이겨가는 것이니

맘껏 키우거라, 부풀어 오르거라 

봄이 다 익어 터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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