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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누워 자는 소처럼

성산일출봉, 우도

by 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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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6. 수 >

바람도 없는 날이 밝기까지 하다.

무조건 조기 기상이다.

일주일 만에 가장 좋은 날.

기온은 낮은지 좀 쌀쌀하다.


이른 7시 출발.

1135번에서 애조로(애월에서 조천가는 길)로 가라는 네비.

막힌 출근길의 시내는 빗겨 가는 도로다.

이 녀석이 정신 차렸다 싶었는데, 결국 1132번 (김녕해안도로)로 내려보낸다.

몇백 미터 가면 신호, ㅎ자 돌림 차들은 쉬엄쉬엄.

특등 운전사는 복장이 터진다.


성산 일출봉 등반 시작(8:40)

주차요금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무료다.

너른 주차장만큼이나 넓은 가슴을 가진 제주도.

거기다 정상을 가지 않으면 또 무료다.

반질반질 넓게 깔린 계단이 시원시원하다.

입장권을 사는 무인 발권기를 터치해 보니 1인 5,000원.

차 한 대에 부과하는 주차료를 탑승한 모든 사람에게 받겠다는 말씀.

아이고 한 방 제대로 먹었다.

국제도시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지, 항상 한 수씩 낮은 망태다.


“일출봉은 제주도의 다른 오름들과는 달리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다. 화산활동 시 분출된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서 화산재가 습기를 많이 머금어 끈적하게 되었고, 이것이 층을 이루면서 쌓인 것이다.
바다 근처의 퇴적층은 파도와 해류에 의해 침식되면서 지금처럼 경사가 가파른 모습이 되었다. 생성 당시엔 제주 본토와 떨어진 섬이었는데, 주변에 모래와 자갈 등이 쌓이면서 썰물 때는 본토와 이어지는 길이 생겼고, 1940년엔 이곳에 도로가 생기면서 현재는 육지와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다.”


두어 번 오를 때마다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는 아내.

일출을 보기 위해 어둠을 쫓으며 올랐으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나 있었겠나.

지미오름, 우도가 훤히 보이는 바다는 진 파랑이다.

더덕향이 그윽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길.

광치기 해변이 물에 잠길 듯 더운 날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이렇게 좋은 곳이었느냐고 연신 감탄하는 소녀 같은 내 아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며 40분 만에 완주.

좁은 계단을 오르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겹치면서 아수라장이었는데, 이제는 나누어놓았으니 힘에 맞게 속도만 조절하면 된다.

그래 5,000원 아깝게 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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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 선착장

황토색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차량을 인도하고 있다.

종일 주차료가 8,000원.

노인 복지를 위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 요즘 나는 무척 인자해졌다.

중국인인지, 동남아인이지 말소리를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

자전거를 타고 기다리는 여인의 엉덩이를 보고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아내.

한 사람 이외에는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무슨 기준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제주 자치경찰인 제자는 교래사거리나 상수도 사업본부로 네비를 찍고 거기에서 목적지를 찍으면 중산간으로 갈 수 있겠다고 한다.

까다로운 숙제만 내는 선생님의 부탁을 군소리 없이 잘도 풀어준다.

집을 나설 때는 그렇게 온순했던 녀석이 얼굴을 싹 바꾸었다, 바람이라는 놈.

가볍게 옷을 입고 온 아내는 선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이 왔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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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소가 누워있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일찍부터 소섬 또는 쉐섬으로 불렸다.

완만한 경사와 옥토, 풍부한 어장, 우도 팔경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관광지로써 한 해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의 대표적인 부속 섬이다.
성산항과 종달항에서 배를 탈 수 있는데, 어디서 출발하든 15분 정도 소요된다. 섬의 길이는 3.8km, 둘레는 17km. 쉬지 않고 걸으면 3~4시간 걸린다.”


천진항에 내린다.

세 발 전기차가 넘어질 듯 질주한다.

바람 때문에 자전거도 포기다.

하루를 작정하고 왔으니 순환버스를 타자.

“34번 버스 기사님은

우도는 각기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12개의 마을이 있었다.

무슨 성씨만 대면 어느 동네인 줄 다 안다.

자리가 없다고 화내시지 말고 여섯 곳의 정류장으로 나오시면 20분에 안에 차를 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첫 번째 둘러보실 곳은 서빈백사해수욕장(홍조단괴해변)이다.

세계에서 다섯 곳만 있는 희귀한 홍조류가 굳어 모래가 된 곳이다.”

기사님의 능숙하고 재미있는 입담에 홀려 모두 차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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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빈백사해수욕장

몇 번 우도에 들어왔지만, 해수욕장에는 처음 들어와 본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흔히 보는 가는 모래가 아니다.

아내의 주식인 죠리퐁 같다고 해야 하나, 튀밥같이 흰 시멘트에 작은 알갱이들이 붙어있는 것 같다.

가져가면 절대 안 된다고 기사님이 겁을 주었지만, 이미 은퇴했으니 창피해도 좀 뻔뻔해져 보자.

아내가 내미는 모래들을 호주머니에 슬쩍 넣는다.

검은 돌, 빨간 지붕, 옥색 바다, 지미오름, 성산 일출봉이 잘 어우러진, 사람만 명품이면 되는 명품 뷰 포인트다.

바람까지 불어주니 날리는 머리카락이 웬만하면 배우로 만들어준다.


처음으로 톳 짜장과 땅콩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는 우도 왕자가 운영하는 미식당.

BTS, 유재석부터 알만한 사람들의 사인이 모두 붙어있다.

TV에서는 동상이몽이 계속 방영된다.

딸과 갈등 때문에 혼이 나는 배우를 했다는 얼굴이 반반한 바로 그 양반이 사장님이란다.

전복이 들어있는 톳 짜장은 담백하고 기름기가 전혀 없어 깔끔하다.

해물짬뽕은 얼큰하고 국물이 시원해서 해장으로는 딱이다.

선불하고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아직 설지만, 이곳의 법이라는데 따라야지.

좌판에서 사 온 땅콩 아이스크림도 구수하다.

하여간 맛만 있으면 다 용서가 된다.


다시 탄 버스가 34번, 처음 기사님이다.

원래 우도의 주 선착장은 하우목동항이고 그 주변이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명동이란다.

한때는 몇백 명이 넘었던 초등학교가 곧 문을 닫는다고 안타까워하신다.

동문들이 백방으로 노력은 하지만, 이 나이에는 무리란다.

천진항은 30분, 하우목동항은 정각이니 배를 놓치면 바로 차를 타면 빨리 나갈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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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수동해수욕장.

해초들이 몰려와 작은 모래톱을 다 덮었다.

방방 뜨는 아기 말을 데리고 등에 사람을 태우는 영업을 하는 어미 말.

이 좋은 날 고생이 많다, 아 잔인한 인간들아.

물속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

흰 쌀밥만 보다 잡곡밥을 주니 무섭다고 먹지 않는다는 손녀 채원이가 겹친다.

주변은 모두 짬뽕집이다.

우리는 예습 했지만, 강재로 꼭 짬뽕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전망이 좋은 카페에서 한라봉 에이드에 땅콩 라떼.

꼭 들러야 하는 필수코스.

학교 다닐 때는 커피를 마시느니 막걸리를 먹겠다고 우겼던 내가, 이제는 잘 적응하고 있다.

목숨이 걸리면 못 할 일이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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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속의 섬 속의 섬 비양도.

한림항 앞에 있는 비양도는 해가 지는 섬.

그 정 반대쪽에 해가 뜨는 섬이라 해서 같은 이름 비양도를 갖게 되었단다.

결국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는 내 겉옷을 입는다.

런닝도 없이 티 하나만 입고 있어도 춥지 않다, 나는 남자다.

절대로 주는 옷을 받지 않을 아내지만, 진짜 죽겠는가 보다.

바닷물이 들 때는 길이 막혔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콘크리트로 잘 정비해 놓았다.

해녀들이 물질하러 들어가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는 내 여자.

꼭 해녀 체험은 해보고 싶다면서도, 헤엄치며 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손들어야 할 것 같단다.

등대까지 둘러보고 해녀의 집으로 들어간다.

집 앞 돌탑에서 치성을 드리느라 돌에 눌러놓은 천원을 집는 아이를 혼내는 아주머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평소에 용돈을 잘 주셔야지.

덩치로 보아 혼자 드시는 곳에 다 쓰셨구만.

민물은 꼴도 보지 않은 짠, 그래도 깨끗하게 짠 멍게.

무슨 약을 먹였는지 너무나 부드러운 전복.

태어나서 제일 맛있다는 바로 그 전복.

딱딱하지만 구수한 소라까지.

소주가 꿀떡꿀떡 안 넘어가면 죄다.

아직도 카드를 받지 않는다니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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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래가 있다고 해서 검멀레 해변.

젊은 기사님은 우도에서 활동하는 해녀가 약 80 여분 되는데, 최소 연봉이 오천은 된단다.

대부분 심장 계통의 수술을 받고 병을 달고 사시지만, 최고령 할머니는 93세인데도 허리도 굽지 않으시다고.

보험 빵빵하게 넣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바다에서 할머니가 나오지 않기만을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장땡이라는 입담.

웃어주기는 한다만 해서는 안 될 말.


우두봉까지 오름을 헉헉거리며 오른다.

무조건 하루 일 오름은 해야지.

깎아지른 절벽, 배꼽 아래가 서늘해진다.

멋진 등대가 두 개 서 있는 정상에서 돌아와야 한다.

햇볕은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다.


한 시간 땀을 흘리고 내려와서 우도의 왕자가 직접 만들어주는 토끼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이유와 함께 찍은 사진도 걸려있다.

동영상도 찍으라는 아저씨를 보니 천상 연예인이다.

목이 쉬라고 일을 하고 있고만, 속이 덜 든 딸년이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고 불만이었다.

아버지가 뭘 원하는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당황하는 그 모습.

깨를 깨물 듯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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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여물통과 같다는 도랭이 해변.

젊은 기사 양반이 아무리 봐도 아니라는 말에 한 표.

바로 앞에 보이는 일출봉의 모습은 일품이다.

김희선, 탁재훈이 방송에서 운영했던 민박집이 기념품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집이 되었단다.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는데, 잘 못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기어이 3 아이스크림에 도전하는 아내.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 주인장의 큰 손 덕분에 고소한 땅콩 가루가 아이스크림을 덮어버렸다나.

진한 우유의 농도와 땅콩의 향이 최고라는 말을 건성으로 듣는 주인장은 사람이 많은 것도 귀찮아하는 것 같다.

오늘 저녁에 올 손녀를 생각하며 귤 선글라스를 하나 산다.

부두와 300m의 거리에 차를 세우는 것도 하나의 영업행위는 아닐까?

배 시간이 남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걸어가면서 가게를 찾고 있으니 말이다.

관광객 호주머니는 빼먹는 사람이 임자.

궁리를 많이 한 사람 것이여.


인원이 초과로 배를 탈 수 없다.

그놈의 아이스크림만 아니었어도, 목에서 울컥 토해지려는 짜증을 삼킨다.

여행은 인내의 시간, 그래서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나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배는 금세 또 온다.

선실 바닥이 뜨끈뜨끈하다.

하루 내 떨었더니 잠이 온다.

하이바를 쓴 채로 일행을 찾던 중국 아주머니는 잘 나오셨을까?

그 많던 수녀님들은 다 무사하셨겠지.

어디를 가나 혼자 놀다 혼나는 사람은 꼭 있으니까.

말이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서 어쩌나?

도움도 되지 않는 걱정을 배 안에서 하고 있다.


교래사거리를 치고 네비가 시키는 대로 차는 달린다.

한라산과 가까워지는 중산간 도로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 가도 가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시속 200km로 달려야 한다는 아내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흘린다.

시내를 다 피해서 집에 들어오니 갈 때보다 무려 30분이 단축되었다.

뭘 알아야 장사를 하지.

이제는 무조건 중산간을 택하리라.


다시 우도를 가지 않아도 된다.

다 봐버렸다, 다 알아버렸다.

하나라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경험.

시험 때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공부했던 나, 슬렁슬렁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했던 나에게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세상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하나를 하더라도 똑 떨어지게 해라.

아! 충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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