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아래 능소화 향기
도시가스배관을 타고
집집마다 퍼져갑니다
능소화 향기가
식지 않을 만큼
가스배관이 충분히
따뜻했을 때에
향기는
햇살같이 따스한 배관을
핏줄처럼 타고
퍼져갔습니다
도시가스배관을 타고
퍼져나가던 능소화 향기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방어하지 않으면 당하고 마는 세상에
찌르지 않으면 찔리는 세상에
눈을 깜박이면 코를 베이는 세상에
가스배관의 핏기는 사라지고
능소화 향기는 시체처럼
식어버렸습니다
어디를 가지
하는 설렘이
어디든 가지
하는 희망이 됐을 때에
가득했던 능소화 향기는
어디를 가지
하는 설렘이
어디로 가지
하는 절망이 됐을 때에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능소화 향기
잠시 쉬어갈 담벼락
이제 어디 있습니까
우리네 향기
잠시 머무를 담벼락
어디로 사라졌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