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 때문에 개고생 하다가 어젠 금요일이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 들떠있었다.
우리 반 애들은 애들대로 다음 주에 서울랜드 견학 예정이라 신나 있었는데 금요일이니 애들한테 5~6교시는 즐겁게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마침 금요일 5~6교시는 창의적 체험학습(이라 쓰고 실질적 자유 교과시간) 시간이기도 하니까 겸사겸사하여 모둠별로 서울랜드 견학 계획을 짜보라고 했다.
애들은 신나서 모둠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애들은 이런 모둠활동을 해보라고 하면 교실 바닥에 털썩털썩 잘 앉는다. 너무 신기하다. (바닥... 더러울 텐데..ㅎ)
어떤 애들은 혹시 핸드폰으로 놀이기구 검색하면서 계획 짜도 되냐고 두 손 모아 간절히 물어보길래 특별히 허락해줬다. (원래 수업시간엔 핸드폰 안됨!ㅋ)
그러자 애들이 후다닥 달려가서 핸드폰을 꺼내고 신나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핸드폰 액정이 번쩍번쩍했다.
순간 조바심이 난 내가 "야아 너네 그거 숨겨서 해요~다른 애들이 보면 또 쟤네는 왜 허락해줬냐 하면서 자기들도 다 핸드폰 쓰겠다고 한단 말이에요~"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애들이 빠릿빠릿하고 신속한 움직임으로 "야 다들 뭉쳐 뭉쳐!! 숨겨 숨겨!!" 하면서 몸을 둥그렇게 말고 성벽을 쌓아서 핸드폰을 했다. 이 모둠은 평소엔 별로 친하지 않은 애들 조합인데 폰 하나에 의기투합한 모습을 보니 귀여웠다.
그리고 나는 다른 모둠을 둘러보러 갔다. 정말 진지한 모습으로 "우리 추로스 사 먹을까 닭꼬치 사 먹을까"를 토론하는 애들, "나는 은하 999(제일 무서운 놀이기구) 타고 싶은데 같이 타 주면 안 돼..?"라며 동선에 자기가 타고 싶은 거 어필하는 애..
주담대 이자나 박살난 주식 잔고를 걱정하는 나와 달리 애들이 고민하는 주제는 참 귀여웠다.
그러다 한 모둠 애들이 손을 들었다. 도움이 필요한가 보다. 나는 얼른 달려가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러자 애들이 '홈페이지엔 오락실이 있다 하던데 왜 팸플릿 지도엔오락실이 없냐'라고 물어봤다. 나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홈페이지 소개에 오락실이 있었으면 실제로도 있는 거 아닐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애들이랑 이 대화를 하면서 내가 몸을 애들 시야에 맞추려고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스쾃 자세로 하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애가 갑자기 "선생님 있잖아요!!! 궁금한 게 있어요!! 선생님 왜이렇게 눈이 충혈돼있으세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아~피곤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남자애가 말했다.
와 멀리서 볼 땐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보니 완전 빨간 사람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걔 입장에선 나를 가까이밀착해서 보니 눈이 아주 충혈돼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아직 표현이 서툴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