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학교에선 전체 공지를 통해 아이들이 단체 카톡방 등을 만들지 못하게 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요즘은 학교 폭력이 단체 카톡방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단체 카톡방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학교 폭력의 위험이 있다. 소외감을 느끼는 친구가 생길 수 있다. 등등) 앞으로 웬만하면 단체 카톡방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카카오톡을 쓰고 있다면 친구들하고 대화할 때 단어 하나도 조심해서 사용하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작년에 우리 반에서 어떤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계속 카톡을 보내서 여자애 엄마 쪽에서 나한테 연락을 주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한테 그 남자애가 카톡 하는 것을 단속해달라고 하셨다. 처음에 나는 '뭐 이런 것까지 나한테 부탁하시지?'라고 생각했으나 카톡방 스샷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지속적으로 대답을 들을 때까지 '뭐해' '뭐해' '뭐해' '뭐해'를 수십 개씩 보내고 있던 것이었다. 이런 것은 내가 지도할 필요성이 있어 보여서 작년에도 잘 타이르며 교육을 했었다.
올해에는 아직까진 그런 일은 없었으나 그래도 미리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기에 3월부터 애들한테 1. 카카오톡 등을 사용할 땐 말을 조심할 것 2. 단체 카톡방은 웬만하면 만들지 말 것이라고 가르쳤다. 사실 이렇게까지 가르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은근히 아이들끼리 카톡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가 많아서 꼭 지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이 열두 살 치고 조금 순수하긴 한 게 SNS 교육을 한 이후로 애들이 나한테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도 되는지 허락을 맡고 간다. (절대 시킨 거 아님)
"선생님 있잖아요~ 제가 단체 카톡방을 만들고 싶은데 만들어도 될까요?"
나한테 하나같이 쭈삣쭈삣와서 물어본다. 나는 속으로는 '진짜 이걸 허락받고 만들다니...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물어본다. "아.. 혹시 뭐 때문에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애들이 엄청 진지하게 자기가 왜 꼭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거의 회사 PT 발표 수준이다.
- 아.. 제가 로블록스라는 게임 관련해서 애들이랑 대화를 할 것이 있는데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좀 더 즐겁게 게임을 하기 위해서 만들려고 해요. 아 그리고 로블록스 게임이 끝나면 바로 대화는 멈출 거고요, 혹시 누가 욕을 하거나 폭력적인 대화를 하면 바로 단체 카톡방을 폭파시킬 거예요.
- 제가 다음 주에 생일이라 생일파티 얘기를 해야 하는데 단체 카톡방이 있으면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애들이 하교하고 나면 각자 학원 스케줄이 다 달라서 단체 카톡방이 있어야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정말 생일파티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다른 거에 대해서는 얘기 안 할 거예요. 그리고 생일파티가 끝나면 바로 단체 카톡방은 모두 나올 거예요.
- 서울랜드 가기 전에 우리 팀원들하고 무슨 놀이기구 탈지랑 용돈 얼마 가져올지 얘기해야 하는데 단체 카톡방에서 얘기하고 싶어서요. 저희 팀원은 누구, 누구, 누구인데 다들 부모님한테도 단체 카톡방 허락 맡았어요. 이제 선생님한테만 허락받으면 정식으로 단체 카톡방 만들어서 얘기하려고요. 서울랜드 소풍이 끝나면 바로 단체 카톡방은 없앨 거예요. 서울랜드 가기 전까지만 단체 카톡방에서 대화 나누어도 될까요? 말은 꼭 예쁘게 하고, 배려하면서 할 거예요.
아주 장황하고 길고 정성스럽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귀여워 죽겠다. 애들이 너무 순진하고 착한 것 같다. 사실 뒤에서 몰래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도 나는 모르는데.. 이렇게 나한테 와서 설명해주고 허락 맡아주니 너무 고마울 뿐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짐짓 소중한 기회를 준다는 듯이 진지한 얼굴로 "그래요.. 그럼 단체 카톡방을 만들도록 해요.. 서로 존중하는 대화하는 것 잊지 말고요..."라고 얘기한다. 그럼 애들은 신나서 "네!!!!"라고 대답한 뒤 친구들한테 총총총 뛰어가서 소리친다. "나 허락 맡았어!!!"
ㅋㅋㅋㅋㅋ
게다가 얼마 전엔 우리 반 여자 부회장이 와서 나한테 귀띔까지 해주었다. "선생님, OO이가 생일파티가 끝났는데도 단체 카톡방을 유지시키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어요. 이거 다들 나오게 제가 조치할까요?" 나는 순간 조금 얼떨떨하긴 했는데 "어.. 어!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우리 반 부회장 여자아이가 칠판에 큼지막한 글씨로 무언갈 적었다. (다시 생각해도 참 야무진 아이다)
단체 카톡방 하고 있는 애들 다 나와! 오늘까지 단체 카톡방 나가기 버튼 누를 것!
와 정말 우리 반 애들 뭐지? 정말 뭐랄까, 너무 고맙다. 이렇게 SNS 교육한 것을 충실히 이행해주고, 진심으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너무 감동이다. 사실 어른들도 이런 교육 들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경우가 태반인데 아이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생활 속에서 실천해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앞으로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애들이 내가 하는 말을 이렇게 경청하고 생활 속에서 그대로 실천해버리니 말이다. 정말이지 교사란 직업은 삶 속에서 나부터가 모범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직업이다. 절대 '척!'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하는 단체 카톡방은 뭐뭐가 있지..? 교육청 프로젝트 모임, 출간 모임, 재테크 모임, 반려견 모임 정도가 있구나.. 나도 단체 카톡방 조심해서 사용할게! 얘들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