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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이젠 사랑을 줄 때가 되었다

by Eaglecs

사랑을 나눠 주세요

그간 많이 받았을 겁니다

당신은 몰랐겠지요

대부분 모른답니다

자기가 사랑받는 걸

이제라도 알게되었다면

이제는

당신의 사랑을 나눠 주세요

더 늦기 전에

지금입니다


(작자 미상)




넷째 누나의 납골당에 다녀왔다. 인천 검단에 있는 천주교인 공원묘지이다. 율리아나. 누나의 세례명이다. 자주 가지는 못하고 몇 년에 한번 가곤 한다. 음성에 있는 아버지 묘소에도 자주 가지 못한다. 장남인 형이 꾸준히 관리하고 있고 또 그냥 멀다는 핑계다. 아산만 평택호에 뿌려 드린 어머니에게도 역시 자주 가지 못한다. 직장 생활에 치여서 그렇다는 핑계였는데 퇴직한 지금은 더 이상 그런 핑계는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넷째 누나는 인천 검단에 모셔두고 있어서 집에서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두 번은 갔었는데, 최근엔 그러지 못했다.


부활의 동산.jpg



마이클 뉴턴의 책(영혼들의 여행, 영혼들의 운명, 등) 그리고 전생 체험 혹은 임사 체험, 윤회 등에 대한 책을 간혹 봐서 인지, 납골당에 갔을 때는 마치 누나가 거기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매번 갈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납골당에 가까이 가면 그 납골당 구조물 위에서 누나가 나를 보고 웃는 상상을 하곤 했다. 매번 그랬다. 그리고 납골당으로 접어들면 약간 서늘한 기운이 내 등골을 따라서 내려가는 것이 느껴지곤 했다. 수 백의 유골함이 모셔진 곳이기 때문에 그중 일부 영혼의 기운이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 몸에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딱히 두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고 그냥 영혼이 내 육신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머리속으로 생각하곤 할 뿐이다. 그 혼이 내 육을 통과해 간들 어쩌란 말인가? 나도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데 육신을 떠난 영혼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못할 이유는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일반적 시각으로는 기괴한 논리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육체를 벗어나 삶을 마감하게 된다면 내 영혼은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와 다를 것은 없을 것 같다. 단지 육체만 없을 뿐. 그게 지금의 나와 물질적 차이 이외에 무엇이 다를지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어차피 내 영혼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므로 어디엔가 어떤 모습이나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그건 그때 가서 인식해 보도록 할 것이다.




내가 넷째 누나 납골당에 그나마 자주 가는 이유는 넷째 누나가 나와 나의 딸아이에게 유독 많은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도 나를 정말 살뜰하게 챙겨주었었다. 제대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여 금전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도 저녁에 집에 퇴근하여 들어올 때는 당시 쉽게 먹기 어려웠던 초콜릿이나 사탕 등을 사다가 주곤 했다. 지금은 남아 돌아가는 간식거리에 불과하지만 40년 전에는 그 존재감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었다.


내게 늘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었고,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치 아들처럼 사랑을 주었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사고로 다쳐서 병원에 1개월간 입원해 있을 때는 병원에서 거의 한 달 내내 숙식을 하면서 나를 살펴 주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내가 한 달 동안 입원해 있을 때 한 번도 다녀가지 않았었다. 내가 보지 않을 때 몰래 다녀가셨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머니도 나를 누나에게 맡겨 좋고 거의 오지 않으셨었다. 그만큼 모자람 없이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폈주었다.


넷째 누나의 나에 대한 사랑은 내입장에서는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보았을 때 나보다 더 좋아해 주었고, 나에 대한 사랑 이상을 내 딸아이에게 주었다. 딸아이는 자기 친부모에게서도 받기 어려운 강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었다. 2004년 4월 21일에 누나가 세상을 떠났고, 딸 아이는 2003년도까지 누나가 보살펴 줬으니 대략 만으로 3년간 누나(딸아이의 고모)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이다. 아쉬운 것은 너무 어린 시기여서 딸아이는 자기가 받은 사랑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딸아이를 보는 누나의 눈에서는 늘 사랑이 가득한 것이 보였었다.


본인도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경도 시켜주고 백화점에서 진행하는 유아 교육 프로그램도 참여시켜 주었고 매형이 섭섭해할 정도로 옷을 많이 사 주었었다. 3살때까지 딸아이가 입은 옷의 90%는 넷째 누나가 사 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외벌이였던 넷째 매형의 수입으로 충당한 것이다. 그렇게 나에 대한 사랑을 내 딸아이에게까지 이어서 전해 주었고, 단 한 번도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몸이 아파서 충분히 놀아 주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누나는 나에게 30년 이상 사랑을 주었고 내 딸에게는 3년간 전폭적인 사랑을 주었다. 너무 많은 사랑을 주어서일까? 누나는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60년 5월 20일에 나서 2004년 4월 21에 생을 마감하였으니 꼭 44년을 살고 우리 행성 지구를 떠난 것이다. 이미 20여년이나 지났건만 누나에 대한 생각을 곱씹을 때면 아련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누나에 대하여 생각을 하면 많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했던 시절이 떠올라서 가슴이 따스해지고 동시에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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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누나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누나의 부모와도 같은 내리사랑이 그리운 것 같다. 내가 지금 삶을 살면서 그와 같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면 아마도 누나의 납골당을 찾아가서 누나를 생각해도 보고 싶은 생각이나 고마운 생각은 나겠지만 강한 서글픔에서 나오는 눈물까지 흐르지는 않을 것 같다. 누나의 결핍이 내게는 사랑의 결핍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사랑을 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버리기 어려운 것 같다. 결혼을 했으니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긴 하겠지만 그것과 가족에게서 받는 (어머니나, 어머니 같은 누나에게서) 내리사랑의 강도와 성질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반면 나는 누나에게 별로 해 준 것이 없다. 누나의 납골당에 가도 그냥 그 앞에 서서 몇 마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주변을 거닐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누나의 생전에 뭔가 도움을 좀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아플때도 자주 찾지 못했고, 간혹 심부름 정도를 해 주는 것이 다였다. 특히 금전적으로 누나가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나도 돈이 없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렵게 어렵게 도움을 한 번 요청했을 때 제대로 도와 주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하다. 누나는 많이 섭섭했겠지만 그때에도 별로 내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난 그날 그 이야기를 하던 누나의 얼굴과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죽을 때까지 미안함을 안고 갈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누나의 사랑만 받아 '처먹고' 나의 사랑은 주지 못했다. 그리고 누나가 삶을 종료한 후에 누나의 납골당에 가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고작 내가 하는 행동의 전부였다. 나중에 누나를 만날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꼭 만날 것을 난 믿는다. 누나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전생의 연이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일방적인 사랑을 아낌없이 줄 수 있었겠는가? 전생에 내 어머니였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내가 채권자였던가.


누나의 납골당을 다녀오는 것은 누나를 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곳을 다녀와야 내 죄책감이 좀 줄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난 나를 위해서 누나를 만나러 다녀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나가 그런 나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느낌을 늘 받는다. 나의 넷째 누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영혼이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아름답고 좋은 곳에서 영혼의 휴식을 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게 모든 것이 아름답고 선한 사람이 사후에 갈 곳이 그런 휴식처가 아니라면 또 어디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나중에 누나를 만나는 그날까지 삶을 더 충실히 살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내 사랑을 나의 가족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여기저기에 나눠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내 사랑을 그들이 받고 그들이 날 기억해 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냥 그들이 누구건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라면서 내 사랑의 마음을 전달해 주고 싶을 뿐이다.


오늘은 넷째 누나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요즘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면서 옛날에 충분히 만끽하던 넷째 누나의 특별한 내리 사랑이 그리워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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