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그만둔 게 자랑인 시대
몇 년 사이 바뀐 공무원 유튜브 트렌드
요즘 유튜브에 '공무원 유튜브'라고 검색하면, '공무원 퇴사했습니다'라는 자극적인 썸네일을 단 영상들이 주르륵 쏟아진다.
영상의 제작자는 모두 다르지만 영상의 구성과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상의 시작과 동시에 음울한 음악과 제작자의 독백이 자막과 함께 주욱 깔린다. 대부분 최선을 다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1,2년의 수험기간 끝에 합격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고, 발령 초기엔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독한 악성 민원과 살인적인 업무량, 시대착오적인 조직 문화에 질릴대로 질려 더 늦기 전에 퇴사를 결심했다는 내용이다.
현직 공무원으로서 이런 공무원 퇴사 영상을 보고 있으면 힘을 내서 공무원 생활을 버텨보려 하다가도 힘이 쭈욱- 빠져 나가는 걸 느낀다.
몇 년 전 이야기지만, 내가 한창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7,8년 전에도 공시생이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튜브 채널은 있었다. 다만 영상 내용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뿐이다.
대부분 '서울시, 국가직, 지방직 3관왕!' 혹은 '7,9급 병행 동시 합격!'과 같은 썸네일과 함께 누가봐도 똘똘해보이는 합격생이 나와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을 공부했고,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했으며, 지금은 발령나서 너무 행복하다!라는 내용이 영상의 주를 이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공무원 인기가 급속도로 하락함에 따라 공무원 관련 유튜브 트렌드도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반짝반짝한 모습으로 유튜브 영상에 나와 자신의 합격비법을 이야기하던 똘똘한 합격생들은 지금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공직 생활에 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안정적이고 워라밸이 갖춰진 환경 속에서 역시 공무원하길 잘 했다라는 생각으로 흐뭇하게 공무원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젊은 날을 쓸데없는 것에 낭비하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하루하루 후회를 곱씹으며 힘들게 공무원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요즘 새내기 공무원들이 공직 생활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물론 부조리한 조직 문화와 악성 민원에 있겠지만, 이렇게 공무원을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180도 바뀐 것도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무원에 합격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젠 능력이 없어 다른 곳으로 이직하지 못하는 무능력자 취급을 당하고 있으니,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날이 갈수록 공무원에 합격한 것보다 '공무원을 그만둔 것'이 '더 자랑스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현직 공무원으로서 살아가는 게 점점 더 힘들어 지기만 하는 것 같다.
사회적 명예와 금전적 보상. 직업을 구성하는 두 가지 가치를 모두 빼앗긴 지금, 우리 공무원들에게 남아 있는 건 과연 무엇이 있을까?
비록 쉽진 않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그래도 공무원 그만두지 않길 잘했지!"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잔뜩 올라오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영화 <성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