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가고 전문직이 온다
유행은 돌고 돌까?
요즘 휴직하고 집에 있다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헬스장에서 가볍게 운동하고, 도서관으로 출근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공부도 하고 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마땅히 출근할 곳이 없는 나같은 휴직자들에게 이런 '동네 도서관'은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점차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조금씩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요즘 도서관'의 특징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전문직 수험생'의 폭발적인 증가다.
사실 라떼(?)만 하더라도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있는 수험생의 대부분은 '공무원 시험 수험생'들이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의 책상에는 전한길 강사님의 필기노트가 펼쳐져 있었고, 아이패드에서는 이동기 강사님과 이선재 강사님의 혼을 태우는 열강이 플레이 되고 있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마치 전국의 20대 청년 모두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몇 년 전과 완전히 다르게 대부분의 학생들의 책상엔 세무사, 노무사, 감평사 등 전문직 수험서가 펼쳐져 있다. 반면 공무원 시험 관련 수험서는 간혹 가다 한두 권 보일 뿐이다.
내가 한창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그렇게나 많았던 공무원 수험생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몇 년 간의 대량 채용으로 전부 시험에 합격해 현직 공무원이 되어 떠나간 것일까? 아니면 전문직 열풍에 힘입어 공무원 시험 수험생에서 전문직 시험 수험생으로 전직한 것일까?
지난 몇 년간 공무원 대량 채용이 이어지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공무원에 대한 처우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던 '공시 열풍'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문과생들의 대기업 채용문이 막히고, 전문직 라이센스의 파워가 알려짐에 따라 많은 취준생들의 시선은 전문직 시험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공무원 시험의 응시자수는 7,8년전 대비 반토막 수준이 되었고, 전문직 시험의 응시자수는 동일 기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정확한 자료가 궁금해 구글링해보니 국가직 9급 공무원 응시자수는 2017년 222,368명에서 2024년 103,597명으로 무려 50%가 넘게 급감한 반면, 세무사 시험 응시자수는 2017년 10,445명에서 2024년 23,427명으로 두 배 넘게 급증했다.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 취업 트렌드가 180도 급변한 것이다. 이렇게 될 줄 과연 누가 알았을까. 공무원 시험의 열기가 정점일 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
사기업의 문과 채용 기피 현상이 이어지고, 저연차 공무원들에 대한 처우가 획기적으로 좋아지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전문직 선호 현상은 앞으로도 몇 년 간 계속될 것이다.
또한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어 감에 따라 개인이 가진 '전문성'의 힘이 더 중요해져가는 걸 봤을 때, 어쩌면 지금과 같은 전문직 쏠림 현상이 앞으로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전문직에 비하면 합격 난이도가 훨씬 낮은 공무원 시험조차도 지난 몇 년 간의 쏠림 현상으로 인해 수많은 '공시 낭인'을 만들어냈는데, 그보다 훨씬 더 합격이 어려운 전문직 시험의 응시생들 중 소수의 합격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불합격자들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점이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공시 낭인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사라지게 될까? 아니면 전문직 시험을 준비할 때 익힌 지식으로 관련 직무에 취업해 나름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까?
전문직 시험처럼 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할 정도의 극한 난이도의 시험을 준비해본 적이 없는 입장으로서, 그들의 향후 삶의 방향이 참으로 궁금해질 뿐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영화 <성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