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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Sep 06. 2024

학생 수련회를 따라갔는데 교사가 수련받고 왔어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

 무더위가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제 집 안방인 양 떡 하니 차지하고 앉아서 도저히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은 8월 말,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공기 좋고 골 깊은 산속으로(아이들을 감금하기 좋은 장소로) 2박 3일 일정의 수련회를 다녀왔다. 수련회라는 행사 특성상 수련회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는 전자기기 소지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청소년수련원으로 가는 대형 버스 안에서의 시간이 그들에게는 스마트폰과 작별의 정회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수련원에 도착하자마자 학생들의 모든 전자기기는 고스란히 보관함으로 직행했다.(학생 한 명이 모형폰을 냈다가 결국 발각되긴 했지만...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다) 2박 3일 동안의 스마트폰 디톡스가 시작된 것이다.


 괜찮아, 얘들아. 스마트폰이 없으면 머리가 한결 가볍고 상쾌해질 거야. 스마트폰 디톡스가 너희들 머리 안의 온갖 잡념의 독소를 없애줄 테니까. 선생님은 그동안 밀린 유튜브 좀 볼게.(농담)

지금이라도 실컷 스마트폰 하렴

 1시간 30분가량을 달려 어느덧 청소년수련원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버스에서 하차 후 각자의 짐을 챙겨 대강당에 집결했다. 이때부터는 아이들의 인솔 및 통제권이 교사에서 청소년지도사님들로 이양된다. 마치 훈련소입소식 때 교관들한테 끌려가는 훈련병의 뉘앙스가 대강당 곳곳에 퍼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군대로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던데 사랑하는 아이들을 수련 프로그램으로 떠나보내는 선생님의 심정은... 너무 행복... 음... 나만의 은밀한 비밀로 남겨두겠다.


 괜찮아, 얘들아.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시원하게 날려 버리고 스트레스가 날아간 자리엔 맑은 정신을 채워 넣으렴. 마음 수양을 하다 보면 세상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힘을 모을 때 더욱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을 거야. 힘내, 얘들아. 선생님은 그동안 밀린 잠 좀 잘게.(농담)


 수련 프로그램은 청소년지도사 분들께서 직접 이끄셨기에 자칫 동행 교사들이 사사건건 개입하면 그분들에게는 누가 될 수도 있었다. 난 적당히 눈치껏 아이들 주변을 기웃거리며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나마 아이들을 지켜보니 이제 본격적으로 수련회 일정이 시작되었음을 체감했다. 클라이밍(인공 암벽 등반)이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는데 야외 모처에 장엄하게 세워진 인공 암벽은 딱 봐도 상당히 가파르고 높아 보였다. 마치 군인 시절 유격 훈련장에서 마주한 11미터 레펠 낙하 훈련장 같았다. 물론 안전장치를 단단히 채우고 오르는 거였지만, 나는 아이들이 겁부터 먹고 등반하려는 시도조차 안 할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내 걱정은 단순히 기우에 불과했을까. 몸이 불편한 아이들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아이들이 용감하게 안전장치를 손수 채우고 기대반 걱정반의 감정을 적당히 배합한 후 자기 차례가 돌아오길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들의 내면에 내재된 도전 정신을 너무 평가절하한 것 같아 미안하구나. 선생님도 인공 암벽 등반을 해보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성공해 버리면 실패한 아이들의 자존감이 낮아질까 봐 너희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인공 암벽은 너희들에게 양보할게. 그냥 휙, 하고 올라갔다가 슝, 하고 내려오렴. 어때, 쉽지? 대신 사진은 많이 찍어 줄게. 여행 가면 남는 게 사진이라잖아.

도전 성공!!

 주변 지인 중에 취미로 클라이밍을 하시는 형님이 계신다. 몇 년에 걸쳐 주기적으로 일주일에 1,2회 정도 클라이밍 센터를 다니고 계시니 나름 전문성도 생겨 이제는 주말에 가끔 실제 암벽 등반도 출정하시는 분이셨다. 오랜만에 그 분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나눌 대화거리도 마침 떨어져서 클라이밍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척 캐물어 봤었다. 그 형님은 물 만난 고기처럼 침을 튀겨 가며 자신의 전문성을 과시했다.


"형님, 클라이밍은 악력이 중요한 거죠?"

"아니지, 아니지. 클라이밍은 팔에 2-30% 정도, 다리에 7-80% 정도의 힘을 적절히 배분해야 해. 팔힘만 가지고는 절대 등정을 못해. 대부분 사람들이 팔힘만 가지고 오르려고 하는데 물론 어느 정도까지 오를 수야 있겠지만 중간에 팔힘이 빠지는 포인트가 반드시 찾아오고 그땐 더 올라가지 못한 채 추락하고 마는 것이지. 다리가 단단히 지지를 해주어야 해. 남자는 하체! 자네도 나 따라서 클라이밍 배우려고?"

"형님, 여기가 식당 안이에요? 밖이에요?"

"안이지."

"그게 제 대답입니다. 안입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날 이후 형님은 꽤 오랫동안 나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으셨다. 아무튼 클라이밍에 대한 경험치와 배경지식이 없는 아이들에게 인공 암벽 등반은 난도가 높은 수행과제와도 같았을 것이다. 클라이밍을 배워 본 반장 녀석은 거미 인간처럼 슉슉슉, 하고 쉽게 올라갔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힘의 배분을 제대로 하지 못해 팔힘에만 의지하다 보니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결국 힘이 달려 무기력하게 떨어졌다. 비록 등정에 실패했지만 내가 보기엔 암벽 등반에 실패하여 힘없이 내려오는 아이들이 마냥 대견했다. 그들의 무모할 수 있는 도전 정신이 아름다웠고 오히려 실패를 겪어봐야지만 다음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번 암벽 등반 경험을 통해 인생의 정상에 오르기 위한 수많은 발판 중 하나를 디딘 것일 수도 있다.


 얘들아, 선생님은 클라이밍에서 인생을 읽었단다. 세상에 결코 쉬운 일이란 건 없어. 지레 겁부터 먹지 말고 끝없이 도전하고 혹은 실패하더라도 그건 추락하는 게 아니라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는 거야. 사실 너희들이 클라이밍 연습장을 배회하던 내게 '샘도 한 번 올라가 보세요'하며 달콤하게 꼬드겼을 때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접고 말았단다. 몇 미터 올라가지도 못하고 떨어지면 너희들이 비웃을까 봐 두려웠거든. 너희들은 선생님보다 훨씬 용기 있는 사람들이야.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뭔가를 도전하고자 할 때 주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 두지 마. 너희들이 가려는 그 길이 옳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넘어지더라도 그 길을 헤쳐 나가는 거야. 그 길을 걷다가 넘어질 수도 있고 피 흘릴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상처는 영광이라는 불을 피우기 위한 마른 장작개비일지 몰라. 선생님처럼 비겁하게 도망 다니지 말고 너희들이 품고 있는 꿈의 깊이를 모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전혀 개의치 마렴.


 수련회 마지막 날, 치어리딩, 방송 댄스, 난타, 수화, 핸드벨 중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골라 반나절 동안 연습한 후 저녁 장기자랑 무대에 올리는 1인 1기 프로그램이란 게 있었다. 솔직히 배우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에 장기 자랑 무대의 퀄리티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장기 자랑 무대가 시작되었고 난 누구보다 환호의 박수를 뜨겁게 쳐대며 아이들의 무대 공연에 영혼이 빠져 버렸다. 짧은 시간에 터득한 기술들이라 기술적으로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의 뜨거운 열정과 청춘다운 자신감이 삭막했던 무대의 빈 곳을 채우며 공연을 완성해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간중간 어설픈 포인트도 보이고, 손발이 안 맞는 경우도 눈에 띄었지만 실수를 웃음으로 무마하는 천사들의 미소가 마치 포그머신에서 분출되는 안개처럼 무대 위에 완연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래 웃는 거야. 너희들의 겸연쩍고 수줍은 미소가 더욱 무대를 빛내는 거야. 아마 실수가 나왔을 때 너희들이 인상을 찌푸렸다면 이런 무대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어. 실패하면 어때? 실수하면 어때? 세상에 실수와 실패가 없는 성공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거야. 너희들은 점점 완성되고 있는 거야.   

서툴렀지만 최고의 무대였어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수련회 일정은 인상적으로 갈무리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반 학생 중 두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애초부터 수련회 참가를 하지 못했다. 한 학생은 몸이 조금 안 좋아 참가 인원을 조사할 때부터 불참 의사를 밝혔고, 한 학생은 참가 의사를 밝히고 참가비까지 납부한 상태였으나 수련회 떠나기 전날 밤에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불참을 통보했다. 사실 이 학생이 마음에 걸렸었다. 연락을 통해 불참하게 된 사유를 듣긴 들었으나 면대면으로 만나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었다. 마침 수련회 다음 주가 학생 상담 주간이라 그 학생과 일대일 상담을 하며 정확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00야, 그때 전화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번 수련회 못 다녀온 거 아쉽진 않아?"

"당연히 아쉽죠.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릴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요."

"그래, 많이 아쉬웠겠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안타까워하시지 않아? 본인 때문에 아들이 수련회 못 가서."

"어머니는 수련회 갔다 와도 된다고 계속 말씀하셨죠. 뭐, 어머니 입장에선 안타까워하셨겠죠?"

"어머니께서도 갔다 오라고 하셨는데 넌 왜 안 가겠다는 선택을 한 거니?"

"일단 아버지께서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집에 어머니와 저, 둘이 남게 된 상황이었고요. 저도 당연히 친구들과 어울리며 추억을 쌓고 싶었죠. 물론 저 하나 집에 없다고 어머니께서 불편을 겪는 아니시겠지만 어머니께서는 남편도 없이, 아들도 없이 혼자 남겨졌단 느낌을 받으실 수 있잖아요. 가뜩이나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께서 느끼실 외로움이란 감정이 수련회로 향하는 제 발목을 잡았어요."


 학생의 말은 크고 묵직한 당목(종을 치는 기둥모양의 큼직한 나무 막대)이 되어 내 마음의 낡아 빠진 종을 뎅, 하고 울렸다. 청아하고 고결한 울림이 마음속에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살면서 내 기분, 내 감정만 중요시했지, 상대방이 느꼈을 혹은 느낄 감정 따위 안중에나 있었던가. 외려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남 탓이란 아집의 프레임으로 삶을 위장하며 세상의 중심축에 나란 존재만 홀로 세워둔 것은 아니었나. 물리적인 나이로 어른이 되었어도 오히려 정신 수준은 갈수록 퇴화하고 있진 않은가.


 팔십 노인도 세 살 먹은 아이에게 배울 것이 있다는 속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뇌는 수련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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