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과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야간자율학습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온 고1 아이들에겐 아무래도 고등학교 환경이 낯설 수밖에 없다. 다양한 동네에서 온 친구들과 새롭게 교류의 물꼬를 터야 하고, 나같이 잘생긴 선생님(?)한테 수업을 들으며 외모적 열등감도 느껴야 하니 말이다. 많은 부분이 생소하겠지만 그중 가장 적응이 안 되는 고등학교 문화 중에 하나가 아마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야간자율학습(이후 줄여서 '야자') 일 것이다. 하루 온종일 수업을 듣는 것도 진이 빠지는 일일 터인데 하물며 열 시까지 책상과 한 몸이 되어 학교에 남아있으려니 귀소본능이 꿈틀거리고 몸은 근질거릴 것이다.
물론 야자는 '자율'이란 취지에 맞게 학생이나 학부모 선택에 맡긴다. 하지만 자율의 정도가 지나치면 자칫 방임이란 학대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마냥 그들의 선택을 자율에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본의 철학자 다치바나 다카시 씨가 말한 대로 우리 인간의 자유 의지는 알고 싶은 욕구보다 놀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리라. 입시라는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강을 건너야 하는 열일곱 살 학생들에겐 너희들이 알아서 건너봐,라는 무책임한 방임보단 강을 건널 수 있게 주춧돌을 놓아주거나 지혜롭게 강을 건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그들에겐 고전 소설 속 영웅의 일대기처럼 조력자가 필요하다.
대학 입시는 무겁고 도전적인 인생 과업이다. 입시 전쟁은 비단 최전방 전선에서 사투 중인 고3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비교적 후방인 고1부터 3년간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최후의 승자로서 영광을 누릴 수 있다. 고3담임을 오래 해보고 고3부장을 2년간 해보니 이젠 학교에서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대충 그 학생의 당해연도 입시결과가 희미하게라도 그려진다. 수능이 코앞인 고3이어도 모두가 절실한 건 아니었다. 갖은 거짓과 핑계를 대가며 기어이 야자를 빼서 그들만의 자유를 찾아 떠난 아이들을 수없이 접해왔고 그들의 당연한 실패를 목도했다. 그들은 높은 확률로 입시 결과가 좋지 않았고, 꽤 높은 확률로 고1 때부터 자기 주도적 학업 습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올해는 교직 인생 처음으로 고1담임에 배정되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기회다 싶었다. 고3담임을 쭉 해오면서 학생들의 여물지 않은 자기 주도적 학업 습관에 고민이 많았던 터라 고1이라면 처음부터 새롭게 판을 짤 수 있었다.(그렇다고 내가 완벽한 갓티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맡은 바 업무에 대해 겨우 1인분 정도만 해내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교사다) 1학년 1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첫 등교하여 어색한 공기 속에 쭈뼛쭈뼛 앉아 있던 교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고이 움켜쥐고 교실로 들어가 아직 중학생 티가 여드름처럼 남아 있는 그들을 마주했다. 그리고 염원했다.
'부디 이 아이들이 저라는 어른을 통해 일 년 동안 조금이라도 성장케 하시고 세상에 널리 흩뿌려진 꿈의 조각과 희망 조각을 발견할 수 있는 혜안을 열어 주소서. 아이들에게 미움과 분노의 마음을 심지 않겠습니다. 대신 그 자리엔 기쁨과 용서, 믿음, 배려란 감정을 채우겠습니다. 올해 이 아이들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인연이 참 깊고도 깊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이 사람을, 세상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한 번뿐인 그들의 삶을 사랑하게 하소서.'
학기 초 아이들과 개별적으로 상담하며 야자를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어른으로서, 입시를 치러 본 선배이자 입시를 지도해 본 교사로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고1 때는 공부가 잘 안 되더라도 의자에 진득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무거운 엉덩이가 필요하다. 엉덩이에 살을 찌워라. 살찐 엉덩이가 공부하는 습관을 만든다. 고1 때는 앉아 있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살을 찌워라."
"그동안 야자에 꾸준하게 참여한 선배들의 입시 결과가, 야자 참여도가 낮은 선배들의 입시 결과보다 좋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 비록 그 자료가 선생님 머릿속에 있어서 보여줄 순 없지만 선생님은 확신할 수 있다."
"인간은 결국 나약한 존재라 자유 의지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너의 자유 의지가 몸이 힘들다고, 공부하기 싫다고, 놀고 싶다고 부추길 때 이에 굴종하여 야자를 빼기 시작하면 결국 향락적 자유 의지에 끌려다니는 노예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스터디카페나 정독실 같은 데 굳이 돈 써가면서까지 다니지 말고 학교에서 장소를 마련해 줄 테니 공짜로 공부해라."
"결국 너희들이 수능시험 보는 곳은 지극히 평범한 학교 교실이다. 교실에서 공부하고 교실에서 시험 치르는 패턴을 계속 반복하면 교실은 학업친화적 공간이라는 것을 몸이 기억한다. 교실하고 친해져라. "
부드러운 협박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아이들이 순수한 건지 우리 반의 야자 참여율은 예체능 특기자들을 제외하고 다른 반과 비교해 봤을 때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학급당 야자 참여 인원이 몇 명 더 많다고 해서 월급명세서에 특별 수당이 더 찍힌다거나, 교감선생님께서 나의 위대한 공적을 치하하며 머리칼을 쓰담쓰담해 주시는 것도 아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땐 학교가 거의 강제적으로 매일 11시까지 학생들을 남겨서 공부를 시켰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나의 학업 습관이 일정 부분 형성되었다. 물론 강제적, 억압적이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는 그릇된 방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시절이 지나고 지금의 인생을 놓고 봤을 때는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었던 것이 야자였다. 야자를 통해서 인내와 끈기를 배웠고 도전 정신과 극복 의지를 내면화했다. 타율 속에 자율을 내재화했던 시기였다. 만약 당시 학교가 내 자율을 존중해서 니 맘대로 공부해 봐,라고 했으면 난 지금 어느 지점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공부에는 어느 정도의 통제 기제가 필요하다. 야자는 타율 속에서 진정한 자율을 찾아 나아가는 교육의 장일 수 있다.
야자가 지속되던 어느 날, 아픈 아이들이 하나둘씩 속출했다. 불과 십 분 전까지 생기가 넘쳤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고 찾아와 야자를 빼달란다. 도대체 십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정확히 종례 할 때쯤 자기 몸에 찾아와 달라고 감기하고 은밀한 MOU라도 맺은 건가? 청진기를 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학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어머니는 아픈 아들이 걱정되셨는지 야자를 빼달라고 요청해 오셨다. 아이를 보내주긴 했지만 나도 중견 교사로서 나름 직감이라는 게 있었다. 야자를 빼달라는 아이의 목소리엔 미묘한 불안이 섞여 있었고 눈동자의 시선 처리도 어딘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병헌이나 최민식 같은 연기력이 아니면 어지간해서 날 속일 수는 없다. 교사는 칠판 쪽으로 돌아서서 판서를 할 때도 자고 있는 아이들이 보일만큼 일반인에겐 없는 눈이 하나 더 붙어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의사도 아니고 어머니가 보내달라는데...
그때부턴 조퇴하러 온 아이들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아파서 야자를 빠져야 하는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나의 불신의 눈빛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루는 한 학기 내내 누구보다 성실하게 야자에 참여한 학생이 붉게 상기된 얼굴 위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왔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봐도 아픈 게 확실해 보여서 당일 야자를 빼주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지금까지 아프다고 야자를 빼러 온 아이들 중엔 비록 눈에 확연하게 띄진 않아도 진짜 아팠던 아이들도 있었을 텐데, 특정 아이에 대한 불신을 다수를 향해 일반화시켜 버렸다는 것을. 한 학기 내내 한 번도 안 빠지고 열심히 야자 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야자를 빠지는 아이들에 대한 불신의 돌탑만 쌓아 나가고, 잘한 아이들에 대한 칭찬의 돌탑을 쌓지 않았다는 것을. 난 아이들의 장점은 외면하고 단점만 캐려고 한 속 좁은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내 눈 속에 '남을 신뢰하지 않는 들보'가 박혀있음에도 난 학생들의 티만 보려고 했던 어리석고 둔한 교사였다. 미안하다, 얘들아. 선생님 눈에 박혀 있는 들보부터 깨끗이 제거하고 이제부턴 투명한 눈으로 너희들을 바라볼게.
그런데 안과에 가서 내 눈에 박혀 있는 들보를 빼달라고 하면 의사 선생님이 빼주실까? 정신병자로 오해받아 경찰에 신고당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