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 속 수요일 7교시. 오늘은 학교 주변으로 교외 봉사활동을 나가는 날이다. 학교 차원의 교육 활동이라지만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교실을 등지고 야외로 나가려니 아이들은 불평불만을 거칠게 쏟아낼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하면 이 화 많은 녀석들을 가라앉힐 수 있을까. 고뇌 끝에 민란을 잠재우기 위해선 아무 말도 쏟아내지 못하게 입에 뭐라도 물려줘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암, 더운 날엔 시원 달콤한 아이스크림이지.
학급에 들어가 금일 봉사활동에 대해 짤막하게 브리핑을 했다. 학교 후문 쪽으로 나가 △△여고를 돌아 나와 다시 학교 후문으로 들어오는 코스임을 안내하자 몇몇 아이들의 표정은 벌써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 선생님이 너희들의 구겨진 얼굴들을 빳빳하게 펴 주마.
“△△여고 정문에서 단체 사진 한번 찍자.”
“우와!”
“끼얏호!”
“으헤 으헤 으헤헤.”
단순한 녀석들. 여고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여학생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고작 여고 정문에서 사진 찍자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성난 민심은 의외의 한 마디로 금방 가라앉았다. 봉사활동 끝나고 아이스크림을 사 준다는 연계기를 이어서 쓰니 아이들은 두 번째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렸다. 어느새 난 선정을 베푸는 성군이 되어 있었다. 훗, 정치 별 거 아니군.
실은 봉사를 나가지 전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순진하고 성실한 학생들은 열심히 쓰레기를 주을 테지만, 영악한 학생들은 그저 룰루랄라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를 안 할 것 같다는 노파심이 들었다. 불성실한 녀석들의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바로 검열이다.
“양손 가득 쓰레기를 주워서 선생님한테 검사받지 않으면 아이스크림 없습니다. 무임승차하지 마세요.”
아이들에게 단단하고 엄중하게 주의를 준 후 봉사활동 여정을 시작했다. 차도에 차가 이리저리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사고에 유의하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군을 시작했다. 혹시 공짜로 봉사시간과 아이스크림을 벌려는 학생들이 없는지 면밀히 관찰하면서.
내 염려는 그저 기우에 불과했을까.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거리에 널브러진 굵직한 쓰레기들을 각자 성실하게 줍고 있었다. 되려 한 학생은 쓰레기를 너무 조금만 주운 거 같아 죄송하다는 말까지 건네 왔다. 이 녀석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이런 아이들을 못 믿고 엄하게 경고를 줬던 순간이 민망해졌다.
계획대로 △△여고 정문에 도착했다. 각자 주운 쓰레기를 들고 사진을 찍자고 하니 녀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순순히 응해준다. 하필 역광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내 동공에 들어온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았다. 때마침 내리쬐는 역광이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쓰레기 천사로 만들어 준 것이다.
역광이라 너희들이 더욱 빛나 보인단다. 찌는 듯한 날씨에 아랑곳 않고 환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 이상의 뜨거운 부끄러움이 찾아와 내 얼굴을 발갛게 붉혔다. 부끄러움이 나에게 실망한 듯 꾸중을 놓았다.
"아이들은 쓰레기를 주웠다지만 정작 네 맘 속은 여전히 쓰레기로 가득 차 있구나?"
나만의 근거 없는 편견이 내 의식을 쓰레기로 가득 채운다는 것을 일깨워준 하루였다. 미안하다,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를 선입견의 가위로 함부로 재단했구나. 대신 아이스크림은 쏠 테니 퉁치자.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