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기 Jun 14. 2024

쓰레기 교사와 쓰레기 줍는 아이들.

봉사활동에서 생긴 일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 속 수요일 7교시. 오늘은 학교 주변으로 교외 봉사활동을 나가는 날이다. 학교 차원의 교육 활동이라지만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교실을 등지고 야외로 나가려니 아이들은 불평불만을 거칠게 쏟아낼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하면 이 화 많은 녀석들을 가라앉힐 수 있을까. 고뇌 끝에 민란을 잠재우기 위해선 아무 말도 쏟아내지 못하게 입에 뭐라도 물려줘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암, 더운 날엔 시원 달콤한 아이스크림이지.     


 학급에 들어가 금일 봉사활동에 대해 짤막하게 브리핑을 했다. 학교 후문 쪽으로 나가 △△여고를 돌아 나와 다시 학교 후문으로 들어오는 코스임을 안내하자 몇몇 아이들의 표정은 벌써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 선생님이 너희들의 구겨진 얼굴들을 빳빳하게 펴 주마.     


“△△여고 정문에서 단체 사진 한번 찍자.”     


“우와!”

“끼얏호!”

“으헤 으헤 으헤헤.”     


 단순한 녀석들. 여고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여학생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고작 여고 정문에서 사진 찍자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성난 민심은 의외의 한 마디로 금방 가라앉았다. 봉사활동 끝나고 아이스크림을 사 준다는 연계기를 이어서 쓰니 아이들은 두 번째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렸다. 어느새 난 선정을 베푸는 성군이 되어 있었다. 훗, 정치 별 거 아니군.

     

 실은 봉사를 나가지 전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순진하고 성실한 학생들은 열심히 쓰레기를 주을 테지만, 영악한 학생들은 그저 룰루랄라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를 안 할 것 같다는 노파심이 들었다. 불성실한 녀석들의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바로 검열이다.     


“양손 가득 쓰레기를 주워서 선생님한테 검사받지 않으면 아이스크림 없습니다. 무임승차하지 마세요.”

     

 아이들에게 단단하고 엄중하게 주의를 준 후 봉사활동 여정을 시작했다. 차도에 차가 이리저리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사고에 유의하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군을 시작했다. 혹시 공짜로 봉사시간과 아이스크림을 벌려는 학생들이 없는지 면밀히 관찰하면서. 


 염려는 그저 기우에 불과했을까.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거리에 널브러진 굵직한 쓰레기들을 각자 성실하게 줍고 있었다. 되려 한 학생은 쓰레기를 너무 조금만 주운 거 같아 죄송하다는 말까지 건네 왔다. 이 녀석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이런 아이들을 못 믿고 엄하게 경고를 줬던 순간이 민망해졌다.


 계획대로 △△여고 정문에 도착했다. 각자 주운 쓰레기를 들고 사진을 찍자고 하니 녀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순순히 응해준다. 하필 역광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내 동공에 들어온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았다. 때마침 내리쬐는 역광이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쓰레기 천사로 만들어  것이다.


역광이라 너희들이 더욱 빛나 보인단다.

 찌는 듯한 날씨에 아랑곳 않고 환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 이상의 뜨거운 부끄러움이 찾아와 내 얼굴을 발갛게 붉혔다. 부끄러움이 나에게 실망한 듯 꾸중을 놓았다.


"아이들은 쓰레기를 주웠다지만 정작 네 맘 속은 여전히 쓰레기로 가득 차 있구나?"


  나만의 근거 없는 편견이 내 의식을 쓰레기로 가득 채운다는 것을 일깨워준 하루였다. 미안하다,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를 선입견의 가위로 함부로 재단했구나. 대신 아이스크림은 쏠 테니 퉁치자. 콜?

     

이전 02화 우승을 못했는데 우승 상금이 두 배가 된 체육대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