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방귀는 일찍 트기

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세 번째 이야기

by 이현기

경고문 - 다소 불결할 수 있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눈을 가리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직장 동료 한 분은 결혼하고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남편과 방귀를 트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 부부는 집안에서 방귀 배출 욕구를 어떻게 해소할까요? 나이가 들수록 괄약근이 약해져 방심하고 있는 사이 방귀가 새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직접 대놓고 물어보기엔 썩 가까운 사이도 아니라서 결국엔 친절한 챗지피티 씨한테 도움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모르는 게 있을 땐 썩 쓸 만하더라구요.


질문 : 아내와 방귀를 안 텄는데 집에서 방귀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해?

답변 : 허허, 그것 참 난감한 상황이로군요. 제 말대로 대처해 보시는 건 어때요? 우선 방귀를 기침으로 위장하거나, 의자나 소파 소리로 방귀를 흡수하기,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른 척하기가 있습니다. 덧붙여 손 씻고 오는 척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이동하거나 잠깐 환기 명분을 내세워 베란다로 나가서 급한 불을 끄면 되겠습니다.


뭐, 똑똑하긴 하네요. 저는 비교적 무난하게 방귀를 튼 케이스입니다. 투박한 외모와 달리 성격은 새색시같이 수줍어서 신혼 초기에 아내 앞에서 방귀를 뀌는 일은 하나의 사건으로써 이혼 사유가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못된 방귀가 괄약근을 비집고 나올라치면 아내에게 들키기 전에 선제적으로 화장실 안으로 뛰어가곤 했습니다. 전세로 들어간 신혼집은 아파트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주방 하나, 방 하나 딸린 원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집 내부엔 방귀를 뿌릴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참을 수 있는 선까지는 참아보되, 한계에 다다랐다 싶으면 화장실로 기어들어가 세면대의 물소리로 방귀 소리를 덮었습니다. 부부붕.


인조인간이 아닌 이상, 모든 인간은 방귀를 뀝니다. 무릇 살기 위해선 음식을 먹어야 하고 먹은 음식은 소화를 시켜야 하며, 위를 타고 내려온 음식물을 대장 안의 미생물이 분해, 발효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가스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방귀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리 현상입니다. 방귀의 빈도와 냄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든 배에 가스가 차기 마련입니다. 가스를 오래도록 품고 있으면 속이 더부룩하니 불쾌해질 뿐이니 항문을 통해 바깥으로 배출해야 합니다. 부부붕.


아내 역시 인조인간은 아니었기에 저와 살면서 방귀 배출에 대한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둔감한 남편이 눈치나 보며 몰래 방귀를 뀌고 있을 때, 먼저 난국을 타개한 건 아내였습니다. 저는 TV를 보고 아내는 제 곁에서 와이셔츠를 다리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다리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훈훈한 스팀 사이로 아내는 방귀를 둘러싼 첫 공론화의 장을 열었습니다.


“오빠, 나 방귀 뀌어도 돼?”


제 셔츠를 정성스레 다리면서 천진난만하게 물어오는 아내에게 절대 뀌지 말라며 면박을 줄 순 없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스레 콧구멍을 막는 시늉을 했습니다. 아내는 부끄러움보다 당장의 복부 팽만감 해소가 급했는지 자기 방귀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며 엉덩이 한쪽을 슬며시 들었습니다. 한쪽만 들린 엉덩이는 뭔가 폭풍 전야 같은 숙연함이 감돌았습니다. 아내가 방귀를 뀐 순간, 저는 과장되게 헛구역질하며 무안을 줄 생각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뽕.’


처음엔 엉덩이가 말하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뽕’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의 음성 입력 기능을 켜서 아내의 엉덩이 부근에 가져다 대었더라면 화면에 ‘뽕’이라는 글자가 써질 것만 같은 명백하고 선명한 ‘뽕’이었습니다. 초성(ㅃ)과 중성(ㅗ)과 종성(ㅇ)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탄생한 엄밀한 음절이자 실체적인 ‘뽕’. 어찌 됐든 아내가 먼저 용기를 내준 덕분에 우리는 그 이후로 자연스레 방귀를 트게 되었습니다. 손익 계산서를 따져보면 아내가 약간 손해를 본 장사였지 싶습니다. 아내의 방귀는 ‘뽕’소리와 함께 향기가 거의 나지 않았지만, 제 방귀는 디젤 엔진 자동차의 머플러에서 나올 법한 소리와 함께 제법 매연이 독했거든요. 아내에게서 팬티에 X 싼 거 아니냐는 인격 모독성 타박을 들을 때마다 민망하긴 했지만, 어렵게 맺은 신성한 계약이니 다시 무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연애 시절엔 어느 정도껏의 가식이 필요할진 몰라도, 결혼한 부부 사이엔 가식보단 묵직한 진심이 필요합니다. 부부 사이에 어렵게 방귀를 트는 일처럼 각자가 내밀히 감추고 있는 모종의 결함을 상대에게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비록 부끄럽고 하찮은 일일지라도 그것을 숨기지 않고 상대에게 공유하면서 편안함과 신뢰의 관계성을 확장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식을 없애니 방귀를 트게 되고, 진심을 나누니 서로의 삶이 밀착되어 가는 삶. 비로소 둘이 아닌 하나의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물론 언젠가는 아내가 분별없이 방귀를 뀌어 대는 제 주책맞은 엉덩이를 향해 사랑의 로우킥을 날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받은 사랑만큼 나중에 배로 갚아주면 되니까요.

기왕 방귀를 튼 김에 제 마음 안에 고여 있는 사랑의 웅덩이에도 자그마한 물길을 터서 아내에게 천천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아내가 튼 물길과 제가 튼 물길이 만나 잔잔한 개울로 어우러지고 그것이 강으로 흘러들어 넉넉한 바다에 안겼으면 합니다. 말과 혀로만 고백하는 사랑이 아닌, 서로의 쑥스러운 결점마저도 아우를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갓난아기의 방귀가 향기로운 것처럼 우리의 방귀도 자칫 눅진할 수 있는 삶을 환기하는 향긋함으로 맴돌았으면 합니다.


요즘엔 아내의 방귀 '뽕' 소리가 하트 '뿅' 소리로 들립니다.

방귀를 통해 웃음과 사랑을, 그리고 마음을 터 가는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