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네 번째 이야기
정신을 차려 보니 계류유산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힘들게 찾아왔던 첫아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내의 배 안에서 마지막 호흡이 꺼졌습니다. 진료실의 초음파 영상 모니터엔 평소와 같이 동그랗고 납작한 아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초음파 진료기의 전원은 분명 켜져 있었으나, 아기의 심장 전원은 꺼진 상태였습니다. 우렁찼던 심장 박동 소리도 이젠 어두운 고요에 묻혀 있었습니다.
심장이 폭발할 듯 마음이 무너져 내렸지만, 걷잡을 수 없는 충격으로 휘청이는 아내를 살피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아내는 입에서 삐져나오려는 오열 덩어리를 겨우 틀어막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수없이 겪은 의사 선생님은 태연한 어조로 객관적인 처치 사항을 안내할 뿐이었습니다. 산모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죽은 아기를 바로 꺼내야 한다고. 더 슬퍼할 시간도 사치인양 아기를 빼내는 소파술을 즉각 진행되었습니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저는 망연한 표정으로 복도 한켠에 놓인 대기용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맞잡은 두 손은 속절없는 무력감으로 떨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 맞은편엔 신생아실이 있었습니다. 갓 아기를 출생한 산모와 그녀의 남편이 신생아실 통유리창 너머로 자신들의 아기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간호사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향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기와 눈 맞춤을 하기 위해 손짓과 몸짓을 어지러이 섞어가며 있는 힘껏 재롱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병원 관계자의 소매자락을 잡고 이 끔찍스러운 공간의 배치를 따지고 싶을 만큼 제 마음은 부질없는 비참함으로 차올랐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같은 복도에서 누군가는 충만의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상실의 눈물을 훔쳤습니다. 마음속으로 통곡을 쏟으며 그저 아내의 수술이 잘 끝나기만을 기도하는 일 외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제 손끝엔 갓난아기의 온기가 아닌, 희망을 짓밟고 피어난 절망감과 무력감이 시리게 서려 있었습니다.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으며 아내를 위로할 문장을 헤아렸습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 애초에 아기가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사산보다는 유산이 나을 수도 있어.
아마 아기가 더 자란 상태였다면 충격도 배로 컸을 거야.
지금의 참담함을 덮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다행히 아내의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아내는 마취가 덜 풀린 상태로 회복실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약기운 때문인지 의식은 몽롱했고, 맥락을 알 수 없는 말들을 주절거렸습니다. 아내가 웅얼거리는 말의 마디마디가 마치 멀어지는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부여잡고 처절한 악다구니를 내지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 아내의 손을 꼬옥 감싸 쥐었습니다. 아기의 미미한 온기가 빠져나간 아내의 손은 한없이 차가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이 사람 곁을 평생 지키겠노라고, 더욱 애틋하게 사랑하겠노라고,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절대 이 손 놓지 않겠다고.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아내는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쏟으며 자책했습니다.
겁도 없이 매일 왕복 세 시간을 운전하고 다녔다고, 그래서 아기가 힘들었을 거라고.
적당히 눈치껏 일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아기가 견딜 수 없었을 거라고.
이래저래 오지랖을 부리다가 몸에 무리가 왔을 거라고, 그래서 아기가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자신이 조금만 더 세심하게 몸을 아꼈더라면
아기를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바보같이 떠나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신은 인간이 권태에 빠지는 일을 경계했기에 인생의 플롯을 희비가 교차하는 구조로 짜놓은 듯합니다. 인생엔 가파른 굴곡이 있고 야트막한 언덕이 있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평야가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삶이란 무대에는 빛과 어둠이 양립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일정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을 관통하는 마음가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의식하기로 했습니다. 그 아기를 잊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우린 서로 손을 맞잡고 묵묵히 헤쳐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차가운 손도 맞잡는 순간, 온기로 망울지니까요.
태명이 '온유'였던 아기.
이별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짧은 나날 동안 우리 곁에 머물다간 그 아기는
이름 그대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꿈속에서 잠들었을 것입니다.
아기가 잠시 머물다 간 그 아담한 방은
아내가 수놓은 벅찬 감동과 행복 충만한 설렘의 무늬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그 작은 방에서 말할 수 없는 안도감과
말간 평온함을 느꼈을 겁니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반목하며 다투는 모습을,
그 불결한 장면들을 겪지 않고 떠난 아기.
오롯이 포근함이라는 이불에 덮여 있다가 떠난 아기.
저는 그것을 아름다운 이별로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여보,
우린 처절한 죄책감으로 사무쳐봤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더욱 성숙했고
지금의 아이들이 말도 안 되게 소중하다는 걸 깨우쳤습니다.
지금 우리 품속에서 노닥거리는 아이들은
먼저 떠나간 그 아이가
상심 속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보낸
일종의 위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서로 사랑하며
지금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쏟으며
그렇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찬바람이 또 불어올 테고
다시 당신의 손이 차갑게 식는다면
제 사랑의 혈류가 식지 않는 한
절대 놓치 않을 이 손의 온기가
당신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식어버린 당신의 손등을 감싸 쥐어도 되겠습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우리의 심장을 옥죄어올지 모르겠지만
우리만의 선율 속에서 완만히 돌아가는
그 오르골의 은은한 회전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