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를 앞당기는 방법

한 여자의 반려 남편으로 살아가는 법. 열일곱 번째 이야기

by 이현기

“푸하하하. 오빠, 코털 좀 잘라야겠는데? 많이 삐져나왔어.”


아내에게만큼은 말끔한 뮤즈로 남고 싶었던 코털 아재의 낯빛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아내와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지만, 코털이 삐져나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민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러 미용실에 가듯이 코털도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 줘야 머쓱한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먼저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직장 여자 동료들에게 발각되었더라면 현장에서 제주흙당근으로 변신했을지도 모릅니다. 코털 가위를 집어 들고 전신 거울 앞에 섰습니다. 코 안쪽에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코털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뭐야? 코털 색깔이 왜 이러지?”


코털 가윗날에 묻어 나온 한 가닥의 코털은 5:5의 비율로 검은색과 흰색이 섞여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코털 새치였습니다. 아직 머리카락에는 한 오라기의 새치도 나본 적이 없었는데 제 눈에 띄지 않은 곳에서 코는 은밀한 새치 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이제 노화가 시작되었을까요? 젊은 시절에 노안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살았던 것도 한스러운데 이렇게 진짜 노화가 가까이 다가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저의 노화를 증명하는 게 코털 새치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아내에게 달려가 코털 새치를 발견했다고 이실직고했습니다. 아내는 대수롭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깟 코털 새치가 대수냐, 는 얼굴로 자기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휘저었습니다. 아내가 뒤집어 깐 머리카락 부근에는 몇 가닥의 흰머리가 나 있었습니다. 아내 입장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털 새치쯤이야 콧방귀 감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제가 발견한 건 비단 아내의 흰머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콧구멍 아래에 미묘하게 코털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습니다. 과연 아내의 코털도 새치일까, 하는 사소한 호기심이 일었지만, 이내 맘을 접었습니다. 코털마저 새치라면 아내는 얼마나 낙심할까요? 그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자기가 먼저 발견하여 조용히 코털을 제거하길 바라야겠습니다. 그리고 뽑힌 코털이 모쪼록 새치는 아니길.


자기 코털은 잘 보이지 않아도 남의 코털은 비교적 잘 보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결점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남의 결점은 잘 잡아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러합니다. 어디 세상에 결점이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저는 유독 결점이 많은 부류에 속합니다. 결점이 많은 저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모르고 저만의 임의적이고 즉흥적인 기준으로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상대의 나쁜 모습만을 찾아내어 상대적 우월감을 얻으려 하는 저는 참 못난 인간입니다. 코털에 새치만 나면 뭐 합니까. 신체적 노화는 왔지만, 정신적 노화는 진행되지 않아 걱정입니다. 부디 퇴화와 소멸을 부르는 신체적 노화를 늦추고 아우름과 너그러움을 동반하는 정신적 노화가 찾아와야 할 텐데 말이죠.


사랑과 결혼 생활에서 이러한 투사적 내로남불의 관점은 상당히 위험한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과 결혼은 상대방의 결점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점마저 끌어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점이 계속 눈에 띄는 사랑과 결혼 생활이 지속되는 삶은 차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애초에 결혼이라는 의식이 성립조차 되지 않았겠지만요. 그렇다고 결점을 모르는 채 눈감아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서로의 결점을 받아들이는 수용적 태도에서 오히려 결점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점이 결점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 결점을 하나의 삶으로, 색채로 인정할 때 그 결점은 사람을 대하는 세계관을 폭넓게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분리수거에 영 소질이 없는 아내를 위해 가정용 분리수거 바구니를 종류별로 사놓았건만 아내는 여전히 플라스틱 분리수거 바구니에 비닐과 깡통, 종이 등을 마구 섞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아내의 결점으로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모습도 아내라는 사람을 꾸미는 한 부분일 뿐이니까요. 그래도 재활용품 배출을 담당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플라스틱 분리수거 바구니에 음식물 쓰레기를 안 버린 게 어딥니까? 아내는 그렇게 저를 배려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삶의 렌즈는 마음먹기에 따라 초점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아내의 결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종량제 봉투에 싸매어 버립니다.

아내를 원망하지 않고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에서 아무 말 없이 비닐과 캔을 솎아 냅니다.

왠지 정신 연령 노화 속도가 앞당겨진 기분입니다.


그런데 코털 새치는 굳이 염색 안 해도 되겠죠? 코털 염색은 조금 우스워질 것 같아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