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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Mar 27. 2024

<변수남> 1화

첫번째 변수


 내 이름은 변수남(邊壽男). 작가를 꿈꾸는 고등학교 소년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세상에 등장하자 작명에 있어서 근심과 고심을 거듭한 끝에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에서 ‘수남(壽男)’이라는 요즘 트렌드에 맞지도 않는 촌닭 같은 이름을 나름 성의껏 지어주셨다. 오래 살도록 설계된 인생에서 난 이름값을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내 인생은 항상 ‘변수(變數)’로 가득했다.



 꿈 많던 청소년 시절, 첫 번째 변수(變數)가 몰래 온 손님처럼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 당시 코넌 도일의 추리 소설이나 김진명 작가의 역사 소설에 거의 파묻혀 살다시피 했다. 역사와 추리라는 장르가 내는 감칠맛 나는 양념에 쫄깃한 서사라는 재료가 버무려져 완성되는 시원한 물회 같은 맛에 꽤 오랫동안 심취했었다.(그래서 그런지 학창 시절 나의 최애 베스트셀러는 정조암살 미스터리를 다룬 이인화 작가의 ‘영원한 제국’이었다.) 어디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툭 튀어나왔는지 소설의 소자도 모르는 녀석이 소설이란 것을 써 보기로 결심했다. 학급 친구들을 등장인물로 설정하고 역사적 사건 속에 추리라는 요소를 절묘하게 섞어서 말도 안 되는, 개연성 제로의 잡탕 같은 소설을 기계처럼 마구잡이로 생산해 내었다. 친구들은 무미건조한 반응과 한심한 눈빛으로 창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 적극적인 기세로 찬물을 끼얹어 주었다. 학교 문예지에도 성악설, 성선설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심오하게 탐구하여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 탐문하는 단편소설을 실은 적이 있었다. 도덕 시간에 배운 단편적인 지식을 마라탕 재료처럼 모아서 나만의 상상의 나래에 펼쳐 놓은 후, 나름 작가의 발 냄새라도 내 볼 양으로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모든 어려운 어휘를 총동원하여 개똥 같은 필력을 과시했다. 개똥 같은 글을 읽어주는 개똥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소똥이, 말똥이 들이었다.



 글 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내 감성은 섬세함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리 무딘 편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손 닿을 거리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있다면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감성이 풍부했던 나의 학창 시절은 유료 음원 시대인 1990년대를 관통했다. 내 귀는 CD나 카세트테이프란 음반을 통해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만 호강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고귀하다고, 혹은 기괴하다고 할 수 있는 나만의 엉뚱 발랄한 취미를 하나 소개해 보겠다.



<감성 많은 변수남의 고귀하지만 기괴한 엉뚱 발랄 취미 매뉴얼>


1. 길을 걸어간다.


2.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내 귓전을 때린다.


3. 노래의 분위기를 파악한다.(기승전결이 있는지, 애절한지, 경쾌한지 등)


4. 노래가 내는 분위기에 맞게 브레인스토밍을 한 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슬픈 발라드가 나온다면 아름다운 왕비와 그녀 곁을 지키는 늠름한 호위무사의 이루어질 수 없는 러브스토리 같은.)


5. 이야기의 뼈대가 완성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소설화시켜본다. 예상 독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나의 만족이 중요하다.


6. 소설이 완성되면 흥분의 도파민이 마구 분출된다. 오직 나 혼자만 분출된다.



 내가 떠올린 수많은 공상 중에선 실제로 엄청난 마력을 발휘하여 영화로 제작되거나 드라마화된 것도 몇몇 있었다.(물론 내가 아닌 내가 모르는 남이 만들었겠지만.) 하지만 그 공상들은 괘씸하게(꽤 심하게) 단체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 그 순간 불현듯 떠올랐다가 시간이 지나면 이내 아침햇살에 사라지는 이슬방울처럼 사르르 잊혔다. 제길, 메모 좀 해 놓았으면 지금쯤 대한민국이 낳은 한류 스타 작가가 되었을 것을. 그래서 노선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나만의 만족을 위함이 아닌 나도 만족하고 타인도 만족할 수 있는 모두의, 모두를 위한 재미있는 소설을 짓고 싶어졌다. 내가 만들어낸 흥분과 감동의 도파민을 남에게도 팍팍 뿌려주고 싶었다. 독자들이 내 글에 공감하여 같이 웃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전우애, 동지애를 느껴 보고 싶었다. 근사한 창조신이 되어 세상을 빚어내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들어 내서 그냥 내 멋대로 주물럭주물럭 주무르고 싶었다.



 모두의 소설을 짓기로 결심한 후 드디어 첫 번째 소설이 탄생했다. 학급 친구들에겐 주관성을 일절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냉정한 서평을 간곡히 부탁했다. 친구들은 날 위해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해 주었다.



“수남아, 왜 내가 악당이냐. 소설 더럽게 재미없네.”



“이야, 수남아. 소설 진짜 잘 썼다. 걸그룹 멤버가 나한테 한눈에 반하다니. 나 이 여자랑 결혼하냐? 안 하냐?”



(10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1분 만에 훅 읽고) “고생했다…….”



 참으로 공정한 심사위원들이었다. 누군가가 내 작품을 좀 더 진지하게, 예술적인 관점으로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아가서 문학의 대부에게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같은 소설의 본질과 정수를 배우고 싶었다. 당시 중고등학생들의 필독서 중에 우리나라의 굴곡진 근현대사를 10권 분량의 서사로 펼친 대하장편소설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읽으려는 시도조차 안 해봤거나 혹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읽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난 10권 분량의 그 책을 통독한 후 소설의 웅장한 필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망치로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대하장편소설의 작가는 격변하는 현대사 속 요동치는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원초적인 투박함과 현대적 세련미가 모두 담겨 있는 필체로 그렸다. 거기다 젓갈 같은 맛깔스러움을 인물들에 적절히 녹여내  단 한 사람의 개성도 죽지 않고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건 속에서 더욱 다채로운 빛을 발했다. 배우고 싶다……. 현대의 고전(古典)이라고도 부르는 이 책을 집필한 작가 선생님을 너무 만나고 싶었다. 책 속표지의 작가 소개란을 보니 선생님은 서울에 있는 한 사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하고 계셨다. 좋아. 가는 거다. 교수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자가 곧 만나러 갑니다.



 IMF사태로 나라가 쫄딱 망해버렸다. 국가는 경제 과목 F학점을 받았고 죄 없는 국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정부가 남긴 F라는 거지 같은 학점을 때워야만 했다. 유수의 대기업들이 무너지고 수많은 중소기업, 하청업체, 소상공인들이 촘촘하게 세워놓은 도미노처럼 재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공무원 세계에서도 명예퇴직이라는 허울 좋은 살생부가 만들어졌다. 우체국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도 결국 명예퇴직을 당하셨다. 우리 가정도 영문을 모른 채 IMF가 남긴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가라앉았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우리 집을 하숙집으로 용도 변경하여 시골서 상경한 공고 형아들에게 나와 여동생의 방을 대여해 주었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었다고 생각하셨는지 안방에서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가끔 식사를 하시러 나오시는 아버지가 미처 닫지 못한 안방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자욱한 담배 연기가 아버지의 무거운 한숨과 뒤섞이어 집안 여기저기를 잡아먹는 듯했다. 국가 수뇌부의 잘못된 선택과 정책이 나비효과가 되어 대한민국 전체를 도탄에 빠뜨렸고, 나비효과의 파급력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까지 어둠의 손길을 뻗었다. 집 안의 경제가 무너지니 내가 꿈꿔 왔던 서울의 사립대학교의 ‘빌어먹을’ 국어국문학과는 당시의 우리 집 가정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 ‘빌어먹을’이란 표현은 국어국문학과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여 작가가 되면 남에게 빌어먹을 만큼 수입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시민적인 편견이었다. 대학 원서를 써야 해서 최종적으로 부모님과 담판을 지어야 할 날이 되었다. 그날은 사춘기적인 반항심과 철부지 같은 도전 정신을 적당히 섞어서 아버지께 인생 처음으로 대든 날이었다. 호랑이의 해에 태어나신, 호랑이 같은 성격을 가진 아버지한테 평생 토끼처럼 순종하다가 죽기 살기로 내 뜻을 강하게 피력한 날이기도 했다. 그만큼 국어국문학과로의 진학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였다.  



 “왜 안 되는 건데요?”



 분을 삭이지 못한 한 마리의 가련한 토끼가 호랑이 앞에서 나 좀 잡아먹어달라고 발악을 했다. 엄마 토끼는 호랑이가 날카로운 이빨로 토끼를 물어뜯을까 봐 걱정되는 눈치였다.



 “야, 이 자식아. 니 눈에는 집안 꼴이 안 보이냐? 서울로 가면 유학비랑 사립학교 등록금이며 학비는 누가 내줄 건데? 그리고, 뭐? 국어국문과? 남한테 평생 빌어먹을래?”



 맥락은 다르겠지만 내가 쓰고 싶었던 ‘빌어먹을’이라는 표현을 아빠가 먼저 인터셉트하셨다. 아빠 호랑이는 아들 토끼가 경제관념이 꽝이고 예민한 사춘기의 어느 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걸 모르시는 눈치였다. 아들 토끼의 가장 예민하고 피해 의식 가득한 그 무언의 내면을 건들고 만 것이다. 울분에 가득 찬 토끼의 빨간 눈은 악에 받쳐 더욱 새빨갛게 타올랐다. 토끼는 호랑이에게 치명타를 입힐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기로 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핵폭탄급의 무시무시한 폭발력으로 아빠 호랑이의 가슴을 새카맣게 그을릴, 패륜이란 독이 잔뜩 묻어 있는 무기였다.  



 “그러게, 직장에서 왜 잘린 거예요?”


 “…….”   



 호랑이는 이제 눈앞의 먹잇감을 잡아먹을 생각이 바람에 흩날리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방 한 켠에 죄인처럼 처박혀 있는 담뱃갑을 역기처럼 무겁게 들어 올리신 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꽝하고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닫힐 줄 알았던 현관문은 소리도 없이 스펀지처럼 포근히 뭉개지면서 호랑이의 출타 사실을 조용히 알렸다.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나간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회한, 현재에 대한 절망,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온갖 안 좋은 상황과 감정들이 아버지의 어깨와 심장을 짓눌렀을 것이다. 애써 아버지를 뒤따라갈 생각은 없었다. 내 말에 짓눌린 아버지처럼 내 꿈 역시 짓눌러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잠자리에 든 새벽녘에나 가련한 인생의 숙취를 안고 조용히 집에 들어오셨다.



 고3 담임선생님과 진학 상담 시간을 가졌다. 뭔가 누명을 쓴 것도 아닌데 최대한 억울한 감정과 모션을 섞어가며 내 안타까운 사정을 하소연했다. 담임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셨다. 내 가정 상황을 침착하게 다 들으신 후 일단은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흡사 앞에 앉아 있는 이놈이 만족할만한 현명한 해결책을 달라고 신께 조용히 기도드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신의 계시를 받았는지 담임선생님은 조심스럽고 신성하게 입을 떼셨다.



 “수남아, 국어교육과는 어떻니?”



 ‘국어’까진 좋았으나 다음 이어지는 단어는 ‘국문’이 아니라 ‘교육’이었다. 선생님은 지금같이 불안정한 시대에 아무래도 작가의 길은 아닌 것 같다, 너의 이상은 충분히 공감하나 네가 살아갈 현실도 무시할 순 없다, 집안 형편이 안 좋으니 그나마 학비가 싼 지방의 국립대학교가 좋아 보인다, 임용고사 합격하고 교사가 된 후에 대학원 다니면서 작가 수업받아라, 그놈의 돈 때문에 네가 원하는 대학에 못 보내주는 부모님의 썩어 문드러지는 마음도 헤아려 봐라 등 이성과 감성이 뒤섞인 근거와 주장으로 날 설득하기 위해 애를 쓰셨다. 담임선생님의 설득과 조언은 어느 정도 내 마을을 흔들어 놓았고, 난 결국 이상과 규합하기 위해서 현실과 야합하기로 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힘을 모으지만 내 꿈은 절대 꺾이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 첫 번째 변수는 절망의 방향으로 날 안내하는 듯했다. 그때까지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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