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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자 Dec 05. 2021

[그림책 여행지 18] 눈사람

따뜻한 겨울을 선사하는 방법

글그림 레이먼드 브릭스 (Raymond Briggs)

(주)한국프뢰벨

1990


안녕하세요, 여러분! 벌써 추운 겨울이 성큼 다가와 올해가 한 달 남았네요. 

겨울날에 우리가 느끼는 감각은 차가움과 시림이지요. 그래서 항상 일기예보를 보며 내일은 오늘보다 얼마나 더 추울지를 확인하고, 그러다가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설렘 반 걱정 반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차가운 겨울을 따뜻하게 채워줄 포근함이 가득 담긴 책을 함께 여행하려 합니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눈사람>을 읽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겨울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지만, 색연필로 표현된 그림은 함박눈처럼 차가움보다는 포근함으로 다가옵니다.


오늘은 이 책의 채색기법과 더불어 이야기의 시간을 조절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여행지를 탐험해 보지요. 



<눈사람>은 주인공 제임스와 제임스가 만든 눈사람과의 추억을 담은 책입니다. 작가는 색연필을 부드럽게 칠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 가지 색을 내기 위하여 그 색의 색연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물감의 색을 섞듯이 여러 가지 색상의 색연필을 덧칠해 색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종이 위 색연필의 텍스처를 남겨 부드러움을 더욱 강조하지요. 그래서 차가운 눈으로 만들어진 눈사람이 마치 솜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폭신하고 따뜻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또한 페이지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함박눈이 내리는 테두리 속 글과 그림의 배치입니다.


 

페이지의 위쪽 그림 아래쪽은 글로 분리되어 놓여있으며 그림은 동일한 크기의 6칸이 한 페이지에 올려지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칸으로 나누어 그림을 그리면 한 장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크기를 조절함으로써 내용 진행의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림의 크기에 따라 눈이 머무는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위 페이지에서 가로 3칸을 합쳐 가로로 긴 한 칸을 만들면 한 칸일 때보다 그림에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그 내용의 진행 또한 더 길게 느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사람이 제임스에게 걸어오는 시간이 인사하는 시간보다 길다고 느껴지지요. 작가는 칸 단위로 그림을 확장, 축소하면서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사건의 속도를 조절합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이 책의 클라이맥스에서 극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가로로 확장되던 칸이 소년이 눈사람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세로로 그리고 전체 화면으로까지 커집니다. 이는 전개에 역동감을 주며 눈이 오는 밤하늘이 스틸컷처럼 멈추어지는 속도 조절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는 작가의 기법 또한 그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작가는 눈 오는 날의 밤의 어둠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 색연필을 쓴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청색, 밤색, 짙은 녹색을 혼합해 표현함으로써 그림의 깊이감과 색연필의 포근함을 극대화하였습니다. 눈 오는 밤의 따뜻함이 그림을 통해서도 느껴지지요.



눈사람과 집으로 돌아오면 글과 그림도 분리된 공간으로 돌아옵니다. 다음 날 제임스는 서둘러 눈사람에게 달려가 보았지만 눈사람은 사라져 있습니다. 그림을 통해서는 녹아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런데..."로  마무리된 글은 눈사람이 사라진 이유에 대한 결론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를 면지와 모든 페이지의 테두리로 사용된 눈 오는 그림으로 연결해, 눈 오는 날 만난 눈사람이 다시 눈을 따라 다른 곳으로 갔을지도 모른다는 열린 결말의 여지도 남겨둡니다. 


내용 전개와 그림의 크기를 보면 <눈사람>에서도 우리의 첫 여행지였던 <괴물들이 사는 나라(https://brunch.co.kr/@c0f66fe9b11b4a6/4)>에서 처럼 상상력의 크기를 칸에 담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눈사람과 함께 있는 장면이 모두 점진적으로 커지지 않고, 마지막에 엄마 아빠가 식사하는 거실을 지나가는 장면이 크게 하나로 들어 가 칸의 크기는 상상력의 크기보다는 속도 조절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내용이 빠르게 진행될 때는 한 칸, 느리게 진행될 때는 여러 칸을 병합해 사용하는 것처럼, 엄마 아빠를 지나가는 그림의 크기의 의도는 눈사람이 아직 그곳에 있을지 제임스처럼 독자들도 궁금하게 하기 위해 이야기의 속도를 느리게 한 것이지요. 



역동적인 내용 전개 속에서 차가운 겨울을 포근함으로 표현하며 헤어짐에 방점을 찍지 않은 따뜻함을 남긴 <눈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올겨울이 마냥 춥게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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