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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W Mar 15. 2020

작가 미상 (2018)

전쟁, 사랑, 그리고 예술.


영화는 전반적으로 '전쟁'이라는 주제를 포괄적으로 담아낸다. '절대 눈길 돌리지 마'라며 자신의 상황, 그 날것의 느낌 그대로를 느끼게 해주는 메이 누나, 이 외에도 쿠르트의 가족들은 나치 사상을 빗겨나갈 수 없었던 피해자임이 분명하다. 이 작품의 상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손바닥을 펴서 눈 앞에 두는 행동. 손 틈 사이로 마치 빗금이 쳐진 것처럼 드문드문 보이는 이미지들은 쿠르트에게 새로운 작품의 영감이자,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사랑'은 언제나 그랬듯이,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같은 예술 학교에 다니는 동료이자, 그의 영원한 뮤즈인 엘리는 자꾸만 누나를 떠오르게 하는 애인이자, 아내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흔히 '조건 없는 사랑'을 하고, 그에 대한 믿음 하나만으로 같이 서독으로 가게 된다. 패션일로 잘 나갈 수 있었지만, 현실에선 공장 재봉 일을 하며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바쁜 나날을 보내는 모습은 마음이 아팠다. '진정한 사랑은 영원히 자신을 성장시키는 경험'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들의 사랑은 아픔 속에서 피어났기에 더욱 소중하고, 더 아름답다.


예술가라면 공감하는, 예술로서의 정체성은 풀리지 않는 끝없는 숙제이다. 그저 보는 이들을 위한 예술을 하기엔 무의미하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쿠르트는 이 과정에서 끝없는 고뇌와 괴로움을 직면한다. 결국 사진 모사 작업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추억을 담아낸 사진을 꺼내 그 당시의 생생함과 전쟁으로 인한 슬픔을 녹여낸다. 메이와 자신, 그리고 전쟁 범죄자이자 엘리의 아버지인 칼, 잡혀간 학살 총집행자를 모두 한 화도에 담아낸 그의 대표작. 역사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음을 보여주면서, 그의 정체성 또한 보여주는 역동적인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은 쿠르트가 예술의 본질을 깨달았음을 보여준다. 메이 누나의 장면과 겹쳐 보이던, 경적을 동시에 울리는 버스들 사이에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는 과연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일종의 불협화음 속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듯한 그 표정은 그가 앞으로 그려낼 새로운 작품의 원천임을, 알게 해 주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단지 한 인물의 삶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크게 확장하여 전쟁, 사랑 그리고 예술 모두를 담아낸 <작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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