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습작, 꿈에서 심장이 울었다
[ 무공도(無空道)/일일일시/봄이 오는 길목/봄맞이/습작 ]
[ 무공도(無空道) ]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공
서릿발 같은 암초 무리
고달픈 인간 세상이 싫은 까닭에
호젓함을 좇아 삶네 하는
유유자적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나
어제 무렵의 거친 품새도 지쳐
가만 미동마저 없음이라
제풀에 꺾이어진 번뇌조차
무념 따라 무상으로 사오이다
사바의 평온한 자비를 그리며
오늘도 좌선하고 참선함으로
이 가련한 짐승의 육신을
비움 속에 흔연히 공양하렵니다
심중에 자리한 임이여
연약한 중생을 측은히 여기사
무공도(無空道)에 입적할 수 있는
해탈의 자애로움을
넌지시 베풀어 주시옵소서
[ 일일일시 ]
하루가 세세연년 일생이 되고
행적의 근원을 묵묵히 일구어가는
그대는 참으로 누구십니까?
땀내 나는 당신의 하루를
굶주림에 허덕이는 學徒로 하여금
배움의 성찬이 되게 하십니다
도량이 화하여 열반하시면
머-언 뒷날의 이 가련한 시인은
당신의 넋이 되어 살아가렵니다
임께서 가꾸어온 바른길은
후세의 어느 모를 시간 사이에서
마음 깊은 곳에 노래 불리리라
당신의 공 되고 무 된 심성은
숭고한 서사시로 새겨져
한날한시의 진리를 이룹니다
[ 봄이 오는 길목 ]
겨우내 힘을 내던 찬 기온이
서슴없이 봇짐을 꾸리고
수양버들 눈뜨는 봄바람 추임새
연한 녹색으로 슬며시 온다
조용히 서두르는 계절의 찬가 속에
겨운 가슴 시리도록 애처로운
사연일랑 묻어버려도 좋을는지
훈훈한 내음 퍼트리는 설은 봄이여
간밤에 나린 비가 추위 가시도록
염불로 축원하여 주고
기도로 찬송가도 부르고
훠이훠이 멀리 가라 하였나
개나리 진달래 춤을 추는
산야의 아리따운 맵시가
좀처럼 어색하지 않은 까닭일랑
여쭤본들 그 누가 답하랴
그저 봄이 성큼 왔나 하여라
[ 봄맞이 ]
따스한 바람결에 봄이 왔다고
산야(山野)의 새싹이 인사 나누니
사람들도 덩달아 봄맞이하네요
가끔은 꽃샘추위로 가늠하더니만
급기야 엄동이 다시 오려는지
세상이 하얗게 눈송이 나리네요
기승부리는 설한에 지친 맹아(萌芽)들
보다 못한 햇볕이 다가가
다사롭게 타이르니 물러가네요
아기씨 미소 머금은 새순은
살랑살랑 이는 춘풍에 춤을 추며
자태를 뽐내듯이 돋아나네요
[ 습작 ]
두어 행 끄적이다가
마음에 들지 않을 양이면
서슴없이 두 줄 죽- 그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 후에 지워버릴
새로운 심상으로 그려낸다
사랑은 장미꽃 향기
눈물이 보석 되어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슬픔과 기쁨
어느 하나 탈고 안 될
시어로 살아나고
아련한 형상 속에
소홀히 못 할 꿈의 동경을
조곤조곤 노래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