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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Sep 07. 2024

2화. 학창 시절과 통합교육

초 중 고 학창 시절>


아이가 태어나면서 뇌 장애를 수반하여 여러 번의 신체적 고비를 넘기고 자라게 되자 유아기의 고민과 차원이 다른 많은 문제점들이 생기게 되었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일반 학급을 졸업하고서 복지카드를 미루고 미루다가 중학생이 되어서 장애등급을 받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느낀 점은 일반 선생님과 아이들이 통합교육에 대해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도가 낮다는 것이다. 

아이가 자랄수록 많은 고민을 하다가, 학년이 올라가고 새 담임과 새 급우들에게 되풀이되는 시행착오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을 이해시키고 교육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일일교사도 하였고, 영어 수업도 하였다. 중학교 때는 면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아이를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우리 학교의 학생들에게 장애 이해 교육을 하면 인성 교육뿐만 아니라 결국 내 아이를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준다는 것도 알았다.


통합반 수업을 하게 되면 주로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 첫 시간에 항상 진심으로 호소하고 설득하였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행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서로 도와주고 더불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라고 얘기하며 항상 남을 배려하는 마음, 봉사하는 기쁨, 장애인이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겨울방학, 여름방학에 차량을 제공해 주며 계절학교에 적극적이던 미선이 어머니의 말씀은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아이가 통합반에 배정되었을 때 장애 학생 때문에 수업이 제대로 될까 걱정했어요. 하지만 집에서 동생도 챙기지 않던 아이가 친구를 돕는 것을 자랑하면서 사랑을 배워가더군요. 그것은 경험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요. 내년에도 통합반에 진급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어머니를 만난다는 것은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것과 같다. 

통합교육은 장애학생의 교육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에게 장애인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심성을 기르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고 확신한다. 현장학습, 장애 이해교육, 장애 체험 활동, 수업 도우미 활동, 감상문 적기 등 다양하게 진행할 수 있다. 

특히 통합교육의 꽃 ‘봉사활동’ , ‘통합캠프’ 등은 효과도 좋고 장애 학생들, 통합반 학생들과 일반 교사, 학부모가 네 박자가 맞아서 잘 어우러져 돌아가면 인성 교육, 특히 인내심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지도하는데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두 해 동안 같은 학생들을 담임하면서 B 중학교의 우리 반이 유일하게 2년 동안 100% 무결석 반이 되었고, 학생들과 마음도 잘 맞았고 가끔씩 있는 도난 사고, 학교 폭력 이런 것도 없어서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이후 담임하면서 일 년 전체 무결석 반은 한 번도 못했지만, 학년 말에 교장선생님께서 격려해 주시고 상품까지 주시며 나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셨다.     


<대학 시절과 졸업 이후>

아이는 완전 통합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때는 전문계고 특수학급을 거쳐 대학교의 유아교육과를 졸업했다. 

지적장애인데 ‘유아교육과의 많은 실습과 다양한 만들기 프로그램 수업과 발표 등 아이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다그칠 일이 아닌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번은 아이가 11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대학교에서 안 내리고 종점까지 갔다가 수업은 빠지고 다시 집으로 오는 날도 있었다. 엄마가 야단칠까 봐 금방은 못 오고 시간을 보내다가 오고 그때는 주로 발표하거나 시험 치는 날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재촉질하며 안 시켰을 텐데... 더 아이에게 사랑과 인정을 해주며 자존감도 더 키워주었을텐데... 엄마 욕심에 ‘대학교육을 받으면 그래도 대학 문화를 접해보면 놀다가 오더라도 안 다닌 사람과는 다르고 무언가를 배우고 올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정년을 바로 눈 앞에 두고 보니 아이가 살면서 그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우리도 배워서 계속 익히지 않으면 잊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창시절에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을 지니게 하고, 남과 잘 어울리는 사회성을 키워주는 것, 그래서 아이가 인생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실제로 3년 동안 버스 타고 왕복 등하교, 구내 서점에 가서 교재 사고, 식당에 가서 점심 사 먹고, 함께 MT 가고, 시간 맞추어 강의실 찾아다녔으니 그것도 훈련이라고 생각되었다. 아이가 혼자 등하교를 하며 3년 동안 수업과 실습을 하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대학의 유아교육과를 졸업했지만, 취업의 장벽은 높았다. 졸업 후 보육교사 자격증을 받았지만 아이가 근무할 만한 어린이집은 찾지도 못하고, 사실 젊은 엄마들 수요에 맞추어 아이가 할 자신도 없어서 일찌감치 취업은 포기하였다.    

  

대학교를 졸업 후 경북 복지관에 시간제로 2년 정도 취업하였고, 발달장애인 복지협회에 매일 등교했다. 다니는 친구들 중에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다닌 단짝 친구도 있고 엄마들도 격월로 모일 만큼 서로 친했다. 수준이 비슷한 친구들과 복지협회에 다니면서 아이는 인지적, 사회적으로 많이 성장하였고 행복해했다. 도자기, 사진, 파크골프, 에어로빅, 요리, 퀼트, 한지공예, 컴퓨터 등을 다양하게 배웠고 각종 체험학습도 많이 다녔고 제주도, 일본까지 해외여행도 갔다. 

협회에 다니면서 많은 발전이 있어서 제주도에서 열린 자기권리주장대회에서 상금과 함께 장려상도 받았으며, 전국장애인 합창대회에서 장려상도 수상했고, 경북 장애인 체육대회 탁구 부문에서 단식 3위도 하는 등 나름대로 좋은 성과도 거두며 가족에게 큰 기쁨도 주었다. 복지협회에 계속 다녔을 텐데, 다른 지역으로 내가 발령 나는 바람에 출퇴근이 힘들어 이사 오면서 협회를 그만두었다. 

직업재활과 복지기관을 알아보던 중 우체국 일자리 사업에 지원해서 시간제로 근무하다가 주민센터로 옮겨서 근무하게 되었다. 근무 환경도 좋고 출퇴근 시간도 버스로 알맞고 직원분들도 잘 대해 주셔서 만족도가 높다. 일반 직원들과 생활하니 보는 눈도 높아지고 쓰는 용어도 달라지고 사회성이 눈에 띄게 발달하였다.   

  

앞으로 바라는 사항이 있다면, 먼 훗날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옆에 없을 때 그룹홈이 체계적으로 세워져서 친구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며 시간제로 출근하고, 오후에는 취미생활을 하며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꾸려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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