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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Sep 21. 2024

5화. 책 읽는 가족 (1)

독서왕 00네 다섯 식구


   한 권의 책은 곧 한 사람이라고 한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을 쓴 한 사람과 깊이 소통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리라.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모르고 있던 세상과 수많은 낯선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때로 책은 우리를 깨우고 교감하게 하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책은 한 사람을 만든다. 

   햇볕이 잘 드는 한낮에 블라인드를 다 올려놓고 책장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엄마 무릎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던 생각이 나면서 고향 집 마당에 누워있는 것처럼 아늑한 기분이 들곤 한다.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딸아이가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책 한권이 때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참 다행스럽게도 책 읽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책에서 길을 찾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책에서 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책을 읽지 않는다니 그럴 수가! 밥 먹는 것만큼이나 책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도 있는데! 그래서 ‘책 읽는 가족’ 00이네를 만나러 갔다.   

   

아픈 큰 딸을 위해 전공을 바꾼 엄마


  한국도서관협회는 2002년부터 전국 각 공공도서관에서 <가족독서운동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독서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가족 모두 해당도서관에 회원 등록을하고 모두 도서관을 활발하게 이용하며 모범이 되는 가족을 발굴하여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하여 인증서와 현판을 수여하고 있다. 2008년 하반기 안동도립도서관 용상분관에서 선정된 가족은 000(48), 000(48), 000(20), 000(15), 000(12) 가족이다.

   아버지 000과 어머니 000은 부부교사이다. 자연히 취재 약속은 저녁 시간으로 정해졌다. 저녁 6시가 넘어서 집으로 찾아갔을 때 퇴근을 한 000씨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막내는 그 옆에서 엄마한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현관에서 바로 보이는 거실에는 TV를 없애고 한 면을 책장으로 꾸며 놓았고 그 앞에는 온 가족이 함께 앉을 수 있는 크고 기다란 책상이 놓여있었다. 누구나 그 거실에 들어서면 별 부담감 없이 앉을 것 같은 그 책상에 우리도 앉았다. 별다른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서재 분위기가 났다. 책상 옆 공간에도, 거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베란다에도 책들이 보였다. 차를 가지고 온 000선생님은 도서관에서 책 빌려 본 것 밖에 없는데 취재를 와서 부담스럽다고, 가족회의를 했는데, 예민한 딸들은 처음엔 하지 말자고 했다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은 장난감을 별로 사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책이 장난감 대신이었죠. 처음에는 제가 읽어주다가 아이들이 글자를 깨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다른 장난감이 별로 필요가 없더라고요. 책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그러다가 내키면 책을 읽기도 하고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 지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그러면서 컸어요. 큰 애가 약간 장애가 있다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신경을 많이 썼는데 자연 관련된 책들도 많이 찾아보고 그랬죠. 

  그러다가 글랜도만 박사를 알게 되었어요. 미국에 있는 글랜도만 박사의 연구소는 사실 뇌장애아연구소로 유명한 곳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글랜도만 박사의 연구를 영재교육 쪽으로만 부각을 시키더라고요. 그 글랜도만 박사의 책을 보면 뇌장애아들이 책을 읽고부터 좋아지는 사례가 많았다고 나오더라고요. 큰 애의 경우는 책 읽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어렸을 때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책 읽기를 즐기셔서 저도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남편도 늘 책을 가까이 하는 편이었지만 그때부터는 큰 애를 위해 특별히 더 신경을 썼지요.”   

  

매년 1년치 일기독후감숙제를 제본하는 정성


   그때 책상 위에 크기가 제각각인 제본된 책들이 올라왔다. 표지에 00, 00, 00 세 아이의 이름이 쓰여 있다. 사진과 그림으로 만든 그림책도 있고, 도깨비학교에 신청해서 만들어준 아이들의 이름을 주인공으로 한 책도 있다. 글짓기 모음집도 있고, 사진집도 있고, 가족신문도 있다. 책을 읽고 식구들이 함께 만든 독서신문도 있고, 과학에 관심이 많은 막내가 과학 도서를 읽고 만든 과학신문도 돋보인다. 둘째는 글쓰기에 소질이 남다른 듯 원고 모음집이 많았는데, 입상작만 따로 모아 묶은 것도 있다. 아이들의 관심사와 성격이 그대로 들어난다.     

  첫째인 00이의 이름으로 된 것이 많은 것은 첫 애이기도 하고, 아픈 아이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을 더 많이 쓴 탓도 있다. 그리고 둘째, 셋째를 낳고 세 아이를 기르면서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바쁜 생활에 쫓겨 아무래도 밑에 아이들의 것이 조금 적어 미안하다고.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TV를 보고 있거나, 바빠서 마음만 앞서고 아이들이 책을 들고 있기만 하면 안심하고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무얼 느꼈는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무심한 부모들을 부끄럽게 하는 대목이다. 요즘도 한 학년이 끝날 때마다 1년 동안 쓴 글들을 모아 정리를 해서 제본을 해 준다. 

   방학 때마다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숙제를 겸해 하기도 하고 그동안 써 놓은 독후감이나 원고들을 묶어 정리도 한다. 자신이 쓴 글을 묶어주니까 아이들도 좋아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 꾸준히 책 읽기를 권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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