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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Sep 21. 2024

6화. 책 읽는 가족 (2)

도서관은 친숙하고 익숙하며 정든 공간


  “나중에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크게 성공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책 읽는 습관만 들여 놓으면 살아가는 데 방향도 잡아주고 지혜도 주고 그렇게 책이 삶의 바탕이 되어줄 거라고 믿거든요. 막내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때부터 주말마다 도서관에 한 번씩 가서 식구 수대로 책을 빌렸어요. 한 사람당 허용되는 세 권씩 빌리면 열다섯 권인데 그걸 가져와서 던져 놓으면 서로 자기 읽고 싶은 걸 읽는데, 자기 관심 가는 걸 여러 번 보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 책 저 책 조금씩 뒤적거려 보기도 하고 아무튼 조금씩이라도 늘 책을 읽고 접하니까 좋은 거 같아요. 다들 책을 좋아하다 보니까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빌리려고 막내는 다섯 살 때 도서카드를 만들었는데, 그 때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야만 대출카드를 만들 수 있다고 안 된다는 걸 몇 번이나 조르다시피 해서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항상 열다섯 권씩 빌려왔어요. 애들이 한참 책을 많이 읽을 때는 며칠 만에 책을 다 읽어서 중간에 한 번 더 빌리러 가고 그랬어요.”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이 가족에게 있어 도서관은 친숙하고 익숙한, 정든 공간이다.


   “도서관에 가면 책도 읽고 여러 가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들도 많아서 애들이 어려서부터 우리 가족은 도서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시장도 바로 옆에 있어서 애들 책 읽을 동안 시장도 보고 내 볼일도 보고, 방학 때마다 만들기 같은 여러 가지 체험학습이나 어린이 강좌를 듣기도 해서 방학 숙제도 해결하고, 애들도 도서관에 가는 걸 좋아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방학 때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도서관을 애용하다보니 웬만한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들치고 도서관에서 자신이 찾던 책이 없어 아쉬움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꼭 필요한 책을 사서 보는 것은 책을 읽는 것 만큼이나 큰 즐거움이다. 헌책방을 뒤져 <빨강머리 앤>의 애장본을 어렵게 손에 넣는다거나 오래된 책방에서 절판된 책을 구했을 때의 뿌듯함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책을 고르고 사는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책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아이들 데리고 서점에 나가 한 두 권씩 책을 사 주곤 했는데 요즘은 시간도 없고 인터넷 서점이 할인도 하고 포인트도 많이 주고 하니까 책은 주로 인터넷으로 사고 있어요. 적립금을 모아서 그 다음에 사고 싶은 책 살 때 보태는 재미도 있고요. 각자 읽고 싶은 책이나 필요한 책을 적어 놓았다가 한꺼번에 모아서 사죠. 책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재미도 있고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까 학교가 멀어서 퇴근이 늦어진 이 집의 가장 000 씨가 교복을 입은 둘째 딸과 함께 들어선다. 학원에 가서 딸을 태워 오는 길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딸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새벽같이 출근하느라 딸 얼굴을 보고 가지 못하는 대신 아침마다 학교에 출근해서 0교시 수업을 들어가기 전인 7시 50분에서 55분 사이에, 그때서야 등교하는 딸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화로 아침 인사를 전하는 열혈 아버지였다. 

아이들 글을 모아 놓은 책을 보며 먼저 하는 말만 봐도 자녀들에게 얼마나 세심한 아버지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은 집안 어질러진다고 아이들 작품을 자꾸 갖다 버리는데, 그러지 말라고. 하나하나 다 아이들 정성이 들어간 거고, 모아두면 나중에 애들이 컸을 때 그게 다 추억이고 역사인데……. 첫째는 저 스스로가 아픔을 겪고 대학을 유아교육과를 간 경우이다 보니 사회복지 쪽으로 관심이 많은 거 같고, 둘째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문학적 소양이랄까 표현이 참신한 경우가 많아요. 막내는 과학이나 새로운 것들에 관심이 많은데 한 가지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것 한 가지만 파고드는 면이 있어요. 같은 책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읽기도 하고, 거기에 관련되는 온갖 것들을 찾아 읽고.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거나 분석하는 게 조금 뛰어난 것도 같아요. 음악적인 재능도 있고요.” 

  그러면서 피아노 위에서 막내가 작곡한 거라며 손으로 그린 악보를 들고 온다. 깨끗하게 옮겨 적어 놓은 악보를 피아노 위에 올려두고 직접 연주도 해 본 듯 하다. 아이들의 조그마한 재능이나 가능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섬세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600통의 연애편지, 캠퍼스 커플에서 부부로


  000과 000은 캠퍼스 커플이었다. 둘 다 영어교육학을 전공했다. 8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000은 결혼 후에 첫 아이를 기르면서 대학원에서 특수교육 쪽으로 전공을 바꿨다. 8년의 연애 기간에 600통이 넘는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다. 특이 할만한 점은 그 편지의 대부분이 남편 000이 써 보냈다는 것이다. 영미 문학에 심취했던 000은 감성적인 문학청년이었다. 요즘은 다시 셰익스피어 책들에 심취해 있다고 했다. 

세월이 갈수록 그 깊이가 다르게 읽혀지는 책들 중의 하나가 셰익스피어가 아닐까 싶다.

   000 씨는 처녀 적에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와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 같은 책을 즐겨 읽었는데, 결혼 후에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동심리나 교육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었으며,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수양이나 인생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책들을 많이 찾게 된다고 했다. 

  요즘은 호오포노포노 시리즈 책들을 읽고 있다. 하와이인들의 삶의 지혜를 책으로 엮은 <호오포노포노의 비밀>, <호오포노포노의 지혜> 같은 책들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첫째가 몸이 불편한 걸 이겨내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영어 전공에서 특수교육으로 전과를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전보다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참으로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서재는 책을 꽂아두거나 쌓아두고 읽는 공간이지만, 사실 사람들은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경우가 드물다. 00씨 가족도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어 들고는 아무 곳이나 자기가 편한 공간을 찾아서 그곳에서 책을 읽는다. 자기 방이나 거실이나 때로는 화장실에서 책을 읽다가 읽던 그대로 두기도 한다. 

 그래서 침대 위나 소파 귀퉁이, 식탁 위나 거실 바닥, 화장실이나 베란다나 벽장 안(내가 아는 어떤 아이는 벽장 속에서 책을 읽곤 했다) 등 집안 여기저기 책들이 널려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 읽은 책, 읽다 둔 책, 새로 읽을 책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게 우리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데 언니네나 오빠네가 한 번씩 오면 어수선해서 정신없다고 정리 좀 하고 살라고 뭐라고 그래요. 그런데 우리 식구들은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빌려와서 여기저기 두고 읽다가 다 읽으면 갖다 주고 다시 빌려오고 또 두고 읽고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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