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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Sep 14. 2024

4화. 모둠일기와 감사일기 그리고 세줄일기

초임 때 첫 제자가 나와 8살 차이가 나니 같이 늙어가는 셈이다. 연락을 주고받고 함께 교직에 있는 제자가 5명인데, 세월이 흐를수록 조심스럽다. 선생 先生! 먼저 태어나 단지 이 길을 먼저 걸어갈 뿐인데....

교직 생활하면서 해마다 담임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반 아이들과 소통을 잘할까 고민을 하게 된 것이 모둠일기를 쓰게 된 계기이다. 시간이 흘러 모둠일기를 통해 서로 연락하고 다시 만나고 추억을 공유하기도 한다.     

2019년에는 제자와 한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나는 모둠일기 속의 어린 제자를 기억하고 있는데 다시 만난 제자는 훌쩍 커서 어른이 되어서 멋있게 내 눈앞에 나타났다. 

모둠일기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되어 

“ J선생! 중 3 때도 영어 잘했는데... 그때 원래 장래 희망은 의사가 되고 싶은데 그 당시 유행하던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읽고 기자가 되고 싶어요. 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서 내가 대학교 신문사 기자 시절을 회고하여 기자가 되기 위한 자질로 미리 준비하면 좋은 것들을 모둠일기에 써 주었다.”라고 하니 “어머! 내가 그랬었어요? 모둠일기가 없어졌어요.”라고 하여서 책꽂이를 뒤져서 내가 갖고 있던 94년 모둠일기를 주었다.          

살짝 겉장에 ‘멋진 국어 선생님이 되어 다시 만난 00에게! 94년 B여중 3학년 담임.’이라고 덧붙였다.     

담임을 하지 않은 학생인데 방학 때 편지가 오면 나는 꼭 답장을 해 주었다. 

주로 엽서에 답장을 썼는데 그 이유는 우표를 안 사도 되고, 편지보다 발송하기도 쉽고 색연필로 그림을 살짝 그리면 조금만 써도 내용이 꽉 차기 때문이다.      

L선생은 중학교 때 나에게 받은 엽서를 어른이 되어서도 간직하고 있어서 내가 감동을 받았다. 가냘프고 어린 중학생이 열심히 하여서 예뻤고, 나는 격려의 말을 무엇을 썼는지 기억도 못 하는데 L선생은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교사의 말, 행동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깨달았다. L선생은 영어교사가 되어 외고에 근무하며 우리 둘째를 가르치며 스승의 날 무렵에 편지를 써 와서 나를 감동시켜 주었다. 인연은 돌고 돌아  몇 대를 거쳐서 서로 주고받고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되었다.     

처음 모둠일기를 쓸 때 너무 강요하거나 부담을 주면 안 된다. 모둠별로 골고루 인원을 정하고 그 모둠에 한 주에 한 명이 일기를 쓰고 내가 답글을 다는 형식이다. 글을 쓴 것을 보면 예쁘게 꾸미고 정성 들여 쓴 것도 있고 살짝 자기 고민을 드러낸 것도 있다.      

성의 없이 ‘내가 할 당번이니 어쩔 수 없이 쓴다.’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이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서 읽으면 재미있다고 제자들이 말했다.

모둠일기에는 그때 그 시절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고민과 추억과 꿈과 이성에 대한 사랑, 호기심 등이 실려 있다. 중간중간 만화도 넣고 좋아하는 글귀도 넣고 재미있게 꾸민 페이지도 많다. 인쇄 기술이 지금처럼 세련되지 못한 때라 각 조 2권씩 8권의 일기장을 모두 실을 수는 없지만 한 편씩만 넣고 글씨 잘 쓰는 아이들이 글을 옮겨 써서 그것을 표지만 칼라로 제본해서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첫해 J중학교에는 학생들이 68명이었고 B여중에 갔을 때는 한 반에 50명이었는데 꼭 첫 페이지에 “각자 생김새와 말투, 목소리도 다르지만 한 해 동안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함께 가자!”라고 했다.

제일 기억나는 학생들은 94년 B여중 학생들은 마지막 장에 8명의 편집위원들이 선생님의 비망록을 넣었고 편집후기도 넣었다. 지금 읽어보아도 편집위원들이 잘 쓴 것 같았다. 

‘비록 짧은 1년이었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도 우리들이 이 작은 곳에 용기를 내어 담았고 선생님과 대화의 문을 열고 친구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어. 슬프고 기쁘고 즐겁고 힘들고 쉽고 어려웠던 16살! 중학교 3학년의 기억이 담긴 이 문집을 자랑스럽게 내면서 소중하게 간직될 보물이길 기대해. 서로의 우정과 추억을 예쁜 종이학처럼 접어 저마다의 개성과 얼굴이 담긴 앨범과 함께 잊지 말고 간직해서 나중에 꼭 다시 만날 기약을 하자.’ 

그 당시 유행하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의 글을 인용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고 끝을 맺었다.     

92년 I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는 문집을 못 만들었다. 출산도 하고 이동하며 새로운 교과서로 1,2, 3학년 가르치고 작은 학교라 업무를 많이 맡아서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일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있어서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나에게 앨범을 선물로 주었다. 앨범 속에는 한 면에 한 명씩 우리 반 학생 번호순대로 나에게 한 장씩 편지를 썼으며, 소풍이나 체육대회 등 나와 찍은 개인별 사진을 넣었다. 사진이 없는 학생은 미안하다며 편지를  대신 길게 썼다.      

2000년, 2001년 학급 문집을 보면 표지에 우리 반 학생 단체 사진을 넣어서 칼라로 인쇄하고 ‘들려주고 싶어요’라고 작은 표지 위에 우리 반 급훈 ‘우리는 하나다’를 커다랗게 넣었다. B중학교 학생 36명과 정말로 호흡이 잘 맞아 연속해서 2년 담임했고 2년 동안 한 명도 결석하지 않아서 100% 무결석반으로 주위에 칭찬도 많이 받아서 신났던 한 해였다. 우리 반 학생 두 명이 나중에 결혼도 했다.

2003년, 2004년 B중학교의 학생들과는 정말로 많은 사연이 있다. 자신이 쓴 글을 컴퓨터 잘하는 편집위원들이 각 일기마다 귀여운 그림과 이모티콘 비슷한 것을 넣었다. 

주 5일제 시범학교를 하여서 토요일마다 수업은 하지 않고 다양한 체험학습을 하였는데, 2학년 여학생들과 영자신문을 최초로 발간했고, 작은 음악회, 북후 골든벨, 체험학습, 경복궁 체험학습 등 행사와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2005년 우리 반 학생이 열 명인 ㅇㅇ분교에 일 년 근무했을 때 문집은 포토 문집으로 우리 반 단체 사진을 넣고 칼라 프린트로 인쇄하고 코팅해서 첫 페이지로 꾸미고 나머지는 칼라로 프린트해서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여학생 8명에 남학생 2명이었는데 아기자기하게 소소하게 자신의 고민과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말로는 표현 못 해도 얼굴 보지 않고 글로 마음을 표현하니 그 당시는 이해 못 했지만 나중에 글로써 친구 마음을 읽고 오해를 푼 경우도 있었다. 남학생 두 명이 글을 소소하게 잘 썼다.

가끔씩 사진과 편지를 보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고 사진 속의 그 학생이 생각난다. 

특수교사로 전과하고 나서는 모둠일기 대신에 포토 문집을 하였다.

2014년 K중학교 미소반 졸업 문집으로 각자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한 가지씩 짧게 편지를 쓰고 일 년 동안 활동하고 직업교육 한 작품들을 문집으로 만들어서 졸업할 때 선물로 주었다.          

2016년 B여중 미소반에서는 서울 여의도 국회회관에서 개최된 합창대회에 가서 입상한 사진, 지역으로 합창 공연 한 사진, 일 년 체험학습 간 사진, 교내 행사 사진과 작품 전시회 한 사진들 위주로 짧은 글과 함께 포토 문집을 만들었다.     

일 복이 많아서 특수학급이 증설되거나 신설되는 곳을 여섯 번이나 맡아서 교실을 새로 꾸미게 되었다. 신설 학급에서는 학생 수가 적어서 매일 확인할 수 있도록 감사일기를 쓰게 하였다. 신체장애와 마음의 상처도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도록 소소한 일에도 감사하고 폰으로 사진을 찍고 감사 내용을 적게 하였다.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유도하였고 때로는 울기도 하고, 많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도록 하였다. 1학년 초에는 그렇게 서운하고 울기도 잘했는데 일기를 3년 쓰면서 가족 간의 관계도 좋아지고 마음의 상처를 많이 덜어내었다.          

연말에 사진을 넣은 감사 일기장을 인쇄하여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학생은 어릴 때 사진이 별로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나중에 보면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다.      

어떻게 하면 추억도 되고 일기를 계속 쓰게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였다.

요즘은 학생들이 폰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많아서, 공책에 일기를 쓰는 것보다 앱을 활용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앱을 검색하다 보니 세 줄 일기가 내 눈에 쏙 들어왔다. 학생들이 스스로 사진을 올리고 세 줄 감사일기를 쓰도록 했다.     

나와 우리 반 학생 모두 가입하고 서로 댓글이나 ‘좋아요’ 하트를 날리게 하니 반응이 좋았다. 특히 학교 전체 행사나 체험학습 한 날은 사진이 서로 안 겹치게 올리고, 느낌도 세 줄의 끝말은 ‘~해서 감사합니다.’로 마치게 했다. 6명이 같은 날짜에 다른 느낌으로 쓰여 있어서 신선하고 12월에 일기를 마감하여 1월에 졸업하는 제자들에게 한 권씩 선물로 포토 문집처럼 인쇄하여 주었다.      


먼 훗날 자신의 학창 시절을 기록해서 남긴 모둠일기나 감사일기, 사진이 들어간 세 줄 일기 앨범을 보면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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