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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기적 Aug 16. 2024

나의 두 번째 코로나

잃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22년 5월 코로나 확진 후 2년 만의 코로나에 재감염되었다.

일-집만 반복하던 일상에서 감염원은 나의 일터인 병원임이 틀림없었다. 최근 들어 코로나 환자들이 부쩍 늘기도 했었다. 기침하고 고열이 있어 코로나 검사를 해보면 대부분 코로나 양성이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와도 호흡기 증상이 따로 없으면 격리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코로나 양성인 환자가 다인실에서 별다른 격리 조치 없이 함께 생활할 뿐만 아니라 병원 내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도 의무사항도 아니다.


  2년 전 코로나에 벌벌 떨며 긴장감을 유지한 채 마스크를 쓰며 거리 두기를 했던 때랑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현재는 느슨해져 버린 장벽에 코로나 확산도 빨라지고 있다. 확산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면역력이다. 병동 내 20개월 아이나 고령의 어르신들은 감염에 취약에 가장 빨리 코로나에 감염이 되기도 하였다.

  나 또한 마스크를 끼지 않고 나에게 기침을 하던 코로나 의심 환자를 간호했을 때 일주일이 지나도 나에게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환자는 다음날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밤을 새우지 않고 잠을 잘 자는 것이 면역력에 중요한 요소임을 한 번 더 깨달았다. 두 번의 나이트 근무 후 자고 일어나니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이트 근무 후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첫째 날, 목감기에 걸린 것처럼 목이 아팠다.

여름에 목이 아프다 보니 자면서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니 냉방병인가 싶기도 했다. 증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불편감은 컸다. 일단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집에 있는 인후통약을 먹었다. 약 복용 후에도 목 통증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둘째 날, 기침 증상과 목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목 안이 간질간질 거려 마른기침이 계속 나왔다. 목 통증은 전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찢어질 듯이 아팠다. 이전에 코로나에 한 번 감염되어 본 적이 있는 나는 이 증상이 코로나 증상이라고 확신했다. 온몸에 근육통이 생긴 듯 전신이 무기력하고 아픈 느낌이었다. 쉽게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하지만 목이 너무 아프고 몸이 힘든 탓에 늦기 전에 병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잘 아픈 곳이 없어 병원을 안 다니는 편인데 최근 병원에 갔던 것도 2년 전 코로나에 걸렸던 때가 전부였다. 아는 병원이 없는 나는 네이버 지도에 병원을 검색해서 가장 가까운 내과의원을 찾아갔다.

평일이라 대기가 길지는 않았다. 마침내 의사 선생님을 만나 나의 증상을 말하고 나니 코로나 검사를 권유하셨다. 이제는 코로나 검사도 비급여 항목이 되어 병원에서 검사할 경우 15000원을 내야 한다. 2년 전 편의점에서 자가키트를 샀을 때만 해도 1개당 5000원이었는데 말이다. 따로 또 검사해 보기도 귀찮고 병원에서 하면 의사 선생님이 검사를 해주니까 코로나 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코를 깊숙이 찌른 후 검사 결과는 5분 뒤에 나온다고 했다.

5분 후 키트에는 두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코로나 양성이었다.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해 주셨고 기력이 너무 없어 수액을 맞고 싶다고 얘기하니 수액 처방까지 해주셨다. 비타민 주사 같은 수액을 한 시간가량 맞고 나니 몸이 좀 나아진 기분이었다.



셋째 날, 자고 일어 나니 목은 여전히 아팠으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려면 쇳소리가 났고 소리를 내려면 목에서 저항이 걸리는 느낌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몸의 상태가 안 좋음을 느꼈다. 전신 근육통과 함께 열감이 느껴졌고 어제보다 기침은 줄었지만 목이 찢어지듯이 아팠다.

이제 코로나 확진을 받아도 격리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직장에서도 병가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오늘의 몸 상태로는 도저히 일을 못할 것 같아 관리자인 수선생님한테 가장 먼저 연락을 드렸다. 사실 나오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나갈 생각이었다. 카톡을 보내놓고 몸이 아파 계속 누워있었다. 약을 먹고 나니 계속 잠만 오고 몸도 피로했다. 눈을 붙였다가 다시 일어나 핸드폰을 보니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내가 보낸 연락에 답장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일단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출근 준비를 했다. 뒤이어 답장이 왔다. 전화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했는데 처음에는 통화 중이어서 전화를 끊었다. 나에게 전화가 걸려오자 전화를 받았다. 목에 잠긴 목소리로 소리를 내어보려 했지만 잘 나오지 않았다. 수선생님은 나의 상태를 알아보고는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일찍 말해달라고 했고 코로나로 병가를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수선생님이 일단 대체자를 구해보도록 병동에 이야기를 해놓았다고 하셨다.


  삼십 분가량 지난 후 오늘 근무자가 한 명 줄어든 채로 일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결국 대체자를 못 구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병동으로 직접 연락을 했다. 대체자가 안 구해진 거면 출근을 하겠다고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 직원 근무 규정이 있어서 열이 나면 출근을 제한해야 한다며 일단 오늘은 쉬라고 하셨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호흡기 증상이 있는데 나가서 근무하는 것도 환자나 동료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는 상황이라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당장 쉬어서 좋은 마음보다는 근무를 빠지게 되어 폐를 끼치게 되니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넷째 날, 목 통증과 함께 깨어나 현실임을 직감했다. 기침은 잦아들었고 두통이 심했다.

아침에 일어나 소변을 봤는데 갈색 소변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약을 먹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에 안심했다. 어제 물을 많이 안 마셔서 탈수 증상이겠다 싶기도 해서 물을 많이 마셨다. 물을 많이 마시고 나니 다시 정상 소변색으로 돌아왔다.

약을 먹기 위해 일찍이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었다. 오후 근무가 있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선임 선생님께서 연락이 왔다.


"오늘 몸상태는 어때?"


2~3일 차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고 목 통증만 심한 상태인 것을 알렸다.

열만 안 나면 출근 가능하다고 하니 출근을 하겠다고 했다. 나도 출근하는 편이 주변에 폐를 안 끼치고 마음이 편할 터였다.

  그러나 다시 연락이 와서 오늘까지 쉬라고 했다. 아마 나를 걱정해서 하루 더 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내심 출근하려니 걱정이 되었고 두통이 심해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쉬라고 해주니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파서 힘든 상황이 되니 세상에 감사한 것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냐며 나의 상태를 물어봐 주는 친구와 동료들, 나보다도 나를 더 챙겨주고 걱정해주고 있었다. 빨리 나으라며 죽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친구도 있었다. 나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는 것이다. 건강할 때는 모른다. 내가 건강한지 조차도 말이다. 하지만 아플 때는 절실하게 느낀다. 건강할 때가 행복한 것이었구나..



  3일 연속 약을 먹고 자고 약을 먹고 자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이제는 입에서 쓴 맛도 났다. 몸이 너무 힘들었고 무기력했다. 갑작스럽게 코로나에 걸려서 일도 못 가고 약속도 취소되고 모든 일들이 꼬이고 말았다. 일상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동안 일만 하느라 망가져있던 내 삶에 코로나라는 총알이 박혀 '정신 차리고 새로운 삶을 살라'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절대적인 '쉼'이 필요하기도 했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짧게나마 휴식기를 갖게 되었으니 오래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어 좋은 점도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고 삶을 재정비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잃고 나서야 보이는 것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이 기회를 비로소 나의 일상을 지탱해 주던 작은 것들에 감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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