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Oct 08. 2022

별이 반짝이는 밤에


집 근처 도서관에서 문화프로그램으로 글쓰기 수업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이십 명의 정원이 다 찬 후였다. 급하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한두 명은 취소할 것이라 생각하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 시작일 전날, 취소한 사람이 없어 수강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1주 차 수업 날이었던 9월 2일이 지난 후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취소자가 있어 자리가 생겼는데 다음 주부터 수업에 참가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했다. 과제로 A4용지 한 장 반 분량의 글을 내야 하는데 어떤 글을 낼까 고민이 됐다. 글쓰기 강의 주제가 '나의 일'에 관련된 것이라 내가 브런치에 발행한 글들 중에서 일과 관련된 글을 한 편 골랐다. 나의 출근길에 생각난 할머니 이야기 였다.


드디어 글쓰기 수업 첫날이 됐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6시 20분 경이다. 걸어서 20분 거리인 도서관에 7시까지 가려면 서둘려야 했다. 퇴근하면서 사들고 간 김밥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다시 집을 나섰다. 선생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맨 앞에 앉았다. 나누어 주신 프린트에 글 세 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의 글이었다.

'내 글이 잘 쓴 글이라서?'

잠깐 기대에 부풀었으나 과제를 낸 사람이 단 세 명뿐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내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할 때 처음에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지만 듣다 보니 편안해졌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덮어버린 부분을 선생님께서 하나하나 들춰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수강하는 분들이 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점도 좋았다. 영상을 보는 듯 예쁘고 따뜻한 글이었다는 의견도 있었고, 상황만 나열되어 있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집에 돌아가 열심히 글을 고쳤다. 소리 내어 읽어보라는 선생님 말씀대로 인적이 드문 산책길에서 중얼중얼 읽어보기도 했다.


이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실수했던 점은 일기처럼 혼자 본다 생각하고 썼다는 것이다. 글을 고치면서 솔직한 나와 마주해 보았다.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정도면 읽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불친절한 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작은 월간지의 편집장이다. 문학적인 표현 같은 걸 배우고 싶다면 알려주기 어렵고, 전체적인 흐름이 자연스러운지를 주로 보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쓰는 게 생활글 이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표현이나 시적 표현을 쓰는 건 맞지 않다고 하셨다. 글을 다 읽은 후 독자에게 궁금증이 남는다면 좋은 글이 아니니 최대한 세심하게 쓰라고 하셨다.


두 번째 글도 이미 써놓은 글을 조금 고쳐서 제출했다. 그 글은 내가 경력단절로 고민하다 재취업하게 된 이야기를 적은 글로 꽤 자세하게 적은 글이었다. 지루한 글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꼭 필요한 내용들이라 뺄 게 없었다. 지난주에 배운 대로 문단을 정확하게 나누고, 소리 내어 읽으며 어색한 부분을 수정했다. 끝맺음이 잘 연결이 되지 않아 고민이 됐다. 내 앞에 경력단절로 고민하는 사십 대 여성들이 앉아있다고 상상을 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다 흘러가게 되어 있고 결국은 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나름 임팩트 있는 끝맺음이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선생님께 글을 보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글쓰기 수업을 기다렸다.


또다시 글쓰기 수업 날인 금요일이 됐다.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수업에 들어갔다. 귀신은 속여도 선생님은 속일 수 없다고 했던가. 내가 찜찜하다 느낀 마지막 부분을 지적당했다. 잘 쓰다가 마지막에 연설문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이 글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 하지? 그리고 지난주에 고친 글을 다시 또 고치라니... 차라리 '넌 아웃이야'라고 말을 하지... 난 재능이 없는 건가... 포기해야 하나...' 오늘은 수업이 재미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생각에 빠져 한참을 걷다 횡단보도에 선 짧은 순간 외로움을 느꼈다. 나의 이 감정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글쓰기 수업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인데 언제 와?"

"어. 내가 지금 기사님이 와서 지금 가는 중이야."

"어~ 그러니까 술을 마시고 집에 오려고 대리 기사님을 불렀는데 지금 기사님이 왔다고 연락이 와서 차가 주차된 곳으로 걸어가는 중이라는 거지? 나는 다 알아 들었거든. 그런데 글쓰기 선생님은 그걸 다 쓰라는 거야. 상상력이 좀 부족하신 것 같아. 내가 생각해 봤는데 글이라는 게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는 거잖아."

"글은 왜 쓰는 건데?"

"재밌어서... 그런데 재미없어지고 있어."

남편에게 투덜거리며 걸어가는 중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나도 저 별처럼 반짝이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내내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장을 놓친 적이 없는 문학소녀였다. 글쓰기가 재미있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집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시절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나는 늘 장려상을 받았다. 장려상의 수준은 아마도 '썼다'라기보다는 '열심히 썼다'가 아니었을까? 더 열심히 써서 잘 쓰는 아이가 되어보라는 격려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들도 초등학교 장려상 수준일 것이다. 평생 장려상만 받다가 끝낼 수는 없지 않나. 마음을 다잡고 내가 썼던 글들을 오랫동안 고쳤다.


재미있게 하기엔 고단한 글쓰기,

고민이 깊어가는 이 밤.

반짝이는 별 하나를 가슴에 품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소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