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학 수업, 봄(8)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중학교 수학 수업 - 봄 (12)

by Galaxy샘

교실 창문 밖으로 벚꽃이 환하게 핀 어느 봄날,

교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교실 안에서 수학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에게 괜히 미안함이 밀려올 때,

오늘 수학 수업 시간, “영화 본다”라고 하면,

교실엔 순식간에 행복 바이러스가 가득 찹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학 영화’라고 하면

순간 어두워지는 눈빛들...ㅋㅋ


수학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영화의 첫 장면도, 우리 교실과 똑같은 봄날의 수학 교실 입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벚꽃 흐드러진 강둑길에서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갑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열살 꼬마 아이는 나중에 수학 교사가 되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루트’입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수학 수업에서 루트(√)를 배운 직후에 봅니다.

중학교 3학년, 방금 루트를 배우고, 그 기호 √를 따라 써 본 학생들은,

영화 주인공 이름이 ‘루트’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 영화를 볼 자격을 갖췄다고나 할까요.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박사님은,

학생들 머릿속에 막연하게 있는 이상적인 수학자의 모습을 막 꺼내 놓은 것 같은 인물입니다.

수학 문제에 골몰할 때는 그 누구의 간섭도 싫어하고,

밥 먹을 때도 수학 문제에 집중해서는 뭐가 입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수학 문제가 풀렸을 때의 표정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듯,

마치 수학과 연애하는 것과 같은 박사님.


박사님에게는 또 다른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박사님은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부터 기억이 80분만 유지된다는 것이죠.

살림을 도와 줄 가정부가 아침마다 오는데,

가정부에게 전화번호를 묻고, 전화번호가 576-1455 라고 듣고는

5,761,455라는 수는, 1억까지의 자연수 중에서 소수의 총 갯수라고, 놀라면서 알려 줍니다.

그러고는 다음 날 아침 다시 출근 한 가정부에게 전화번호를 묻고,

가정부의 전화번호인, 5,761,455가, 1억까지의 자연수 중에서 소수의 총 갯수라며 또 놀랍니다.

그리고 또 다음 날...


박사님은 80분마다 새롭게 시작되는 세상에서

매번 수학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지요.

가정부의 생일이 2월 20일이고,

박사님이 스승한테 받은 귀한 시계의 넘버가 284번인 것을 보고,

가정부의 '220'과 박사님의 '284'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즉, 220의 약수들(자기자신 제외)의 총합: 1+2+4+5+10+11+20+22+44+55+110=284 이고,

284의 약수들(자기자신 제외)의 총합이 1+2+4+71+142=220 으로,

220의 약수들의 총합이 284이고, 284의 약수들의 총합이 220이 됩니다.


이렇듯 두 자연수에 대하여, 자기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서로의 수가 될 때,

두 자연수를 '우애수(友愛數)'라고 부릅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우애수를 우정의 상징으로 여겼지요.

피타고라스가 찾아낸 우애수 (220, 284) 외에

페르마가 우애수 (17296, 18416)를 발견했고,

데카르트도 (9363584, 9437056)이 우애수라는 것을 찾아냈지요.

이 밖에도 (1184, 1210), (2620, 2924), (5020, 5564), (6232, 6368)도 우애수랍니다.


영화에서 기억이 80분만 지속되는 박사님을 보면서

학생들은 처음에는 기이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가,

영화 속 박사님을 통해

논리적이고 딱딱하기만 할 것 같은 수학자에게도 따뜻한 감성이 있다는 것을 느껴갑니다.

수학자는 오로지 'T'이기만 한 줄 알았더니,

'F'로도 수학을 한다는 것을, 박사님 통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지요.


봄날 바깥에 나가지도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전혀 심심한 것 같지 않고,

옷 패션, 머리 모양, 심지어 날씨에도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숫자에는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이 괴상한 박사님에게 처음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다가

조금씩 조금씩 수학에 대한 그의 애정을 이해하는 것,

영화를 보면서, 학생들도 수학에 대한 박사님의 수학 사랑에 조금씩 물들어 가는 것이

이 수학 영화를 보는 맛입니다.


박사님은,

“소수는 1과 자기 자신 외에는 어떤 수로도 나누어 떨어지지 않아.

그건 어떤 의미에서 순수하다는 뜻이야.” 라고 말합니다.

소수가 순수하다네요~^^


“쌍둥이 소수는 가까이 있지만 절대로 닿지 않아, 마치 우리(박사님과 주인공 루트)와 같지.”

박사님은 주인공 루트를 정말 아끼지만, 그렇다고 결코 함부로 끼어들지 않습니다.

인간 관계의 거리, 가까우면서도 서로 닿지는 않는 사람들의 적당한 거리를 지킵니다.

마치 쌍둥이 소수처럼요.


가정부의 생일이 28일이었는데,

“28은 완전수야. 자기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자기 자신이 되는 수지.

그러니까 28은 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이야.”

가정부처럼 따뜻함을 지닌 온전한 사람을 만난 감사함을 완전수의 개념을 이용하여 표현합니다.


박사님이 수학을 진짜 좋아하는 이유는,

“숫자는 말이 없지만 배신하지 않아.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거기 있어.” 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수학으로 위로 받고 있으시네요.


마지막으로

“정답만 있으면 뭐하나? 증명이 없으면 의미가 없지.”

주인공 루트가 수학 문제의 정답만 외우려 할 때, 박사님이 한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박사님이 수학에서의 증명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말하는 대사가 여러번 나옵니다.

학생들은 수학 문제는 여러 번 풀어봤지만, 수학 증명을 해 본 적은 별로 없어서

이 대사가 전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중학교 모든 수학 선생님들은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대학교 수학과에서 배우는 수학은 온통 증명으로 가득차 있거든요.

그렇게 대학교 4년을 지내고 수학과를 졸업할 즈음,

'수학은 곧 증명'에 완전히 동의하게 된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학은 그걸 증명할 수 있어.”


위 대사는, 박사님에게 수학이 왜 다른 학문보다 왜 매력적인지,

박사님은 왜 그토록 수학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학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논리로 탐험하고,

탐험하면서 찾아낸 진리, 그것을 통해 세계를 다시 보게 될, 그 진리를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증명해서 보이려고 했던 인류 노력의 총화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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