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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by 이해솔

고양이는 귀엽다.

강아지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강아지는 하루 종일 주인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해바라기 같은 존재라면, 고양이는 다가올 때도 있고 멀어질 때도 있는 새침한 존재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면 우스갯소리로 허락을 받아야 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생명체다.


복슬복슬한 털, 알록달록한 털 색깔, 거리를 거닐 때 우아함이 느껴지는 걸음걸이, 날씨가 좋은 날이면 길거리에 앉아서 날씨를 만끽하는 여유, 날쌔게 움직이는 물체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사냥꾼의 자세까지. 하지만 물을 정말 싫어하고, 높은 곳을 좋아해서 올라가려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 나타난다면 주저 없이 주먹을 날려버리는 예민한 매력까지 지녔다.


예전에 고양이를 잠시 맡게 된 적이 있다. 이름은 치즈였고, 노란 고양이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동물을 키우는 걸 반대하셔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못했다. 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가져야 할 책임감이 굉장히 무거웠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털이 날리는 걸 싫어하셔서 그랬던 걸까. 하지만 치즈와 함께 지내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동물을 싫어하는 분들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에는 치즈를 동생의 방 안에서만 지낼 수 있도록 했다. 동생의 방 안에 화장실과 집을 설치해 주고 가끔 내가 화장실을 비워주거나 치즈를 보기 위해서 동생의 방으로 가곤 했다. 방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도 치즈는 나름 잘 지냈었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레이저포인트를 가지고 놀이를 해주거나, 전용 장난감을 가져와서 심심함을 풀어줬었다. 그러다 한 번씩 거실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했는데, 이 기회가 나중에는 치즈가 방에서 프리즌 브레이크를 찍게 될 줄은 몰랐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고 한다. 자신의 영역에 대한 독점욕이 강해서 집고양이가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발생한다면 집고양이가 길고양이로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자신이 한번 순찰을 나섰던 구역이라면 본인 구역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산책을 안 시키고 집 안에서 키운다.

치즈도 동생 방 안에서만 지내다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본 이후로는 방에서 자주 탈출하곤 했다. 방 문을 닫아놓으면 인간이 문고리를 내려서 문을 연다는 것을 알고는 점프해서 문고리를 잡고 밑으로 떨어지는 체중을 이용해서 문고리를 아래로 내려서 문을 열어버리고, 좁디좁은 방 안에서 벗어나 더 넓은 거실로 끊임없이 탈출을 감행했다.


새벽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인기척은 복도를 마치 운동장 달리듯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왔다 갔다 했다. 평소에 한 번도 가위를 눌려본 적이 없던 나는 '아 드디어 가위에 눌렸구나.' 하며 긴장했다. 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복도의 불빛 사이로 검은 물체가 왔다 갔다 하더니 문 앞에 멈춰 섰다. '아, 드디어 귀신을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나의 방 안으로 들어온 건 노랗고 작은 몸집의 털북숭이, 치즈였다. 알고 보니 한밤중에 동생의 방을 탈출하여 집 안을 구석구석 탐험하면서 온갖 장난질을 해놨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치즈는 독방신세를 면치 못했다. 물론 우리 가족들이 있을 때는 가끔 석방시켰지만, 자유의 향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영역동물인 치즈는 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처량한 울음소리를 외쳐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즈한테 미안하다. 잠깐 왔다가 가는 건데 자유롭게 밖에 나와서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줄걸 하면서. 치즈는 2주 정도 집에 있다가 다시 주인에게 돌아갔다. 난 아직도 그 똘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치즈를 잊지 못한다.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길고양이들을 가끔 보고 있자면 내가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 같다. 길을 걷다가 누우면 그곳이 곧 자기 잠자리다. 가끔 말썽을 피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난 고양이가 귀엽다. 묘한 매력을 가져서 '고양이 묘'자를 쓰는 걸까? 정말 묘하다.

언젠간 나도 나의 집을 장만하게 된다면 고양이와 강아지를 한 마리씩 키우고 싶다. 고양이 한 마리, 강아지 한 마리, 나, 와이프, 아기. 상상만 해도 평화로운 냄새가 난다. 언젠가 키울 그 녀석들을 위해 이름을 미리 지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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