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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ee Aug 31. 2024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어쩔 수 없는 것들의 연속


가을의 끝자락, 겨울이 빼꼼 얼굴을 들이미는 그 순간. 한 학기의 3/4분기가 지난 시점. 나는 휴학을 했다. 더 이상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강의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고, 왠지 도중에 소리를 지를 것만 같은 불안한 기분이 들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공황의 시작이었다. 날이 갈수록 수업을 듣는 것이 버거워졌다. 아, 이대로는 안 된다. 휴학을 해야겠다. 휴학하지 않으려 이 악물고 과제들과 싸우고 있었는데, 이번엔 내가 졌다. 어쩔 수 없었다. 학교에 문의하니 공식적으로 휴학하기엔 종강이 몇 주밖에 남지 않아 불가능하고, 그냥 수업에 안 나가고 결석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석을 하면, 과제도 안 하고 시험도 안 보면, 나는 F를 받게 될 거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학점만은 지키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이 계속되던 나날이었다. 


교수님들께 양해의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000 학과의....입니다. 최근 우울증과 불면증, 불안장애를 진단받아 정상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상태인데, 혹시 집에서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볼 수 있을까요?" 메일에는 병원에서 떼온 진단서를 스캔해 첨부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비참하기도 했다. 우울증, 불면증, 자살사고... 내 병명이 적혀 있는 서류를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라... 구걸하는 느낌도 들었다. '나 이만큼 아프니 양해 좀 해주쇼.'와 같은. 모든 교수님께서 내 상태를 이해해 주신 건 아니지만, 따뜻한 위로 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아, 그 학기의 학점은 거의 F, 혹은 D+였다. 나는 학사경고를 받고야 말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만 살아야겠다


그렇게 휴학 아닌 휴학을 하고 집에 머무는 동안, 나는 차근차근 망가지고 있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왜 내가 우울증에 걸린 거지?'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하느라 머리를 싸매야 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 고생을 할 만큼 잘못한 게 있었던가?' 누군가가 말했다. 네가 너무 착해서 그렇다고. 사람 봐 가며 행동해야 되는데 모두에게 다 친절하니까 자꾸 오해를 만든다고. 네 처신이 잘못됐다고. '그럼 결국 내 잘못이라는 거네?' 내 처신이 잘못된 거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나와는 반대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구나. 내게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구나.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시간은 충분했다. 아무리 머리 아프도록 생각에 생각을 해봐도, 답은 하나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세상에 살고 싶지도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그렇다면 나는 그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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