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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니애 Dec 06. 2023

그저 그런 계절인 거야

 단체톡 이 방 저 방에서 독감 인증샷들이 올라온다.

 막내가 아파요, 워킹맘인데 학교에서 열난다고 전화가 왔어요, 수액 맞고 있어요.

 그럼 어김없이 다음 답변은 이렇다.

 아유 어떡해요, 지금 한창 유행이래요, 겨울이라 그런가 봐요, 어서 이 계절이 끝나야 할 텐데.


 계절이 끝난 후엔, 모든 것은 다 괜찮아지는 걸까? 다년간의 삼 남매 유아기를 지나며 잘하게 된 것 중 하나가 속고 또 속는 것이다. 다음 달엔 좀 낫겠지, 지나고 나면 괜찮겠지 했지만 봄엔 수족구가 기다리고 있고 여름엔 장염이, 가을엔 복병처럼 숨어 있던 노로바이러스 기타 등등이 아이들의 들숨을 따라 비강 구강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번 걸렸는데 설마 또 하겠어? 하면 바이러스는 그 '설마'를 붙잡고 어김없이 반기지 않는 방문을 하는 것이다.


 계절을 따라 찾아오는 손님은 비단 독감, 수족구, 장염뿐만이 아니다. 외삼촌에게 계절성 신경증이 도졌다는 얘기를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다. 낮은 짧고 하늘은 흐리고. 계속되는 을씨년스러운 날들의 침범에, 우울함과 예민함을 온화하게 감싸주던 지난 계절의 힘이 다 연소되어 사라져 버렸다. 곁을 지키고 있는 가족들이 아프고 고단한 시간을 보내겠구나. 삼촌 당신도 혼자 힘으론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깊은 곳에서 괴로우시겠구나. 평생을 정사각형의 틀 안에서 규칙대로 완고하게 지키는 삶을 살며 자식들도 그 틀 안에 가두려 했지만, 견고했던 네모의 성벽도 고작 계절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이 풍화되고 있었다. 삼촌에게도 어서 이 계절이 지나가야 할 텐데. 삼촌의 가족들에겐 계절을 겪는 지금의 남편, 지금의 아버지라는 계절이 지나가기를.


 삼촌의 계절을 위로하는 마음을 정돈하다가 나에게도 계절이 와 있음을 발견한다. 지난 며칠간 밤새 고열에 시달리던 막둥이의 진단명은 B형 독감. 가을부터 헌 감기를 몰아내면 바로 새 바이러스를 잠복시켜 감기 뫼비우스의 띠를 걷고 있는 막내는 '유아기'라는 계절을 지나고 있다. 신열에 들떠 밤중에 헛소리를 해대며 가슴을 졸이게 만들지만 내년 겨울을 미리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유아기 계절을 보내고 나면 제법 자란 튼튼한 형님이 된 의젓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밤새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체온계를 재차 꽂아보며 아이의 계절을 엄마가 지킨다.


주사를 딱히 겁내지 않는 특이한 어린이


 한편 엄마가 다른 계절에 머무는 것이 못마땅한 샘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온다. 환자 보초병 노릇 하려고 엄마 곁에서 재우는 것뿐인데 사춘기 누나와 유년기 형아의 눈빛이 새초롬하다. 동생이 또 엄마를 빼앗았구나. 질시의 몸부림이 격렬하다.

 특히 사춘기 누나는 질풍노도 초입 단계라 어느 날은 어른 흉내를 내었다가 또 어느 날은 마냥 아기 같다. 수학 학원에 가니 마니 실랑이 끝에 엄마 보란 듯이  시위한다는 방법이 고작 비 오는 날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학원 가기다. '그런 모양새였더라'를 지인으로부터 듣는데 새까맣게 탄 내 속이 태연한 척 구는 녀석의 구정물로 찌든 양말 꼬라지랑 다르지 않다. 몇 시간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 사랑해를 속삭이며 살을 부벼대는 아이. 너도 참 변화무쌍한 계절을 맞이했어.


 자녀가 저마다의 계절을 맞이하면 그 날씨에 맞춰 옷을 입혀줘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밤을 새워 보살피며 애정을 쏟을 때가 있고 때론 뒤에서 믿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때도 있으며 적당히 관심을 더는 척 연기도 필요하다. 다소 분주한 역할극 같지만 그럼에도 부모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가 아이들이 모진 계절을 겪으며 쉴 만한 곳이 그리울 때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봄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라고 늘 따뜻할 수는 없어서 때론 비도 내리고, 꽃샘추위도 불어대는 그저 봄이라는 계절이 되어주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막둥이의 독감으로 4박 5일 보초병을 선 어미의 마지막 일정은 결국 몸살인가 보다, 아침부터 몸이 으슬으슬하고 누군가 온몸을 빨래 짜듯 꽉 비틀어쥐었다 놓은 듯하여 수액을 맞고 돌아왔다. 한 시간 남짓 집을 비운 사이, 삼 남매들은 게임하다가 학원시간도 꼬이고 싸우고 마지막에는 10여 분간 집에 혼자 남았던 막둥이가 엄마를 보자마자 대성통곡을 하고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었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을 키워내는 나의 계절도 곧 지나가리. 햇빛으로 바람으로 비로, 다시금 햇빛으로 반복하며 할 수 있는 표현과 줄 수 있는 사랑을 쏟다 보면, 애써서 이 계절을 어겨 지나가려 하지 않아도 계절이 나를 지나갈 것이다. 하여 그 끝에  다른 계절이 다가와 나를 속일지라도 그 또한 곧 지나가고 있는 중이니 오늘 하루의 곤비함을 깊이 묵상하고 있지 말기를 바란다. 그저 그런 계절이어서 그런 것뿐이다.


 수분을 다한 이파리들을 마지막 한 잎까지 땅으로 떨궈내는 겨울바람이지만, 그 사이에도 낙엽은 땅을 덮어 봄의 새순을 틔워낼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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