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간직하고픈 필사 시」라는 책으로, 백석, 박인환, 김영랑을 지나고 지나서 윤동주까지 이르는 시대의 몸부림이 담겨 있는 필사용 시집이다.
윤동주 시인의 말로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 중에 쉽게 쓰인 시라고 하지만, 잔인함에 비할 바 없었을 뿐 어찌 쉬웠으랴. 비통함과 고난 속에 쓰인 그 시를. 이 시대에서의 나는 고상을 떨듯 감상하며, 가장 질이 좋은 펜을 꺼내어 예쁘게 흉내 내고, 고아한 취미를 즐기는 인간인 양 구도를 맞춘 사진을 찍어 인증을 올리는 중이다. 그러는 중에 김소월의 피맺히는 부르짖음이 들릴 듯한 '초혼'을 갓 지났다.
격분의 고함과 솟구치는 혈기만이 저항이 아닌 것을 김소월이, 김영랑, 윤동주가 속삭인다. 그저 지면 위에 활자를 메워놓은 것일 뿐인데, 글이라는 재료는 어찌 이다지도 그윽하며 울림을 줄 수 있는 걸까. 노래가 될 수 있는 부드러운 언어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이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었던 것처럼.
그 햇살을 생각할 때마다 꺼내보는 어느 특별한 경험이 있다.
20년도 더 전의, 여고시절이었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보조 교사로 봉사하던 때였다. 주일학생들을 챙기던 동네가 살던 지역에서는 다소 낙후되고 중산층을 보기 힘든, 단칸방 살이가 많은 곳이었다. 공장이나 일용직으로 일하러 간 맞벌이 부모가 많아서 방치된 어린이들이 더러 있었고 그중에 유독 또래로부터 미움을 많이 받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은 살뜰히 챙겨주는 교회 선생님을 만난 것이 옳다 싶어 주말의 모든 일정과 신변을 교회에 일임한 상황이었고 교육 따위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여자아이였지만 항상 머리는 숏컷이었으며 남자인지 여자인지 언뜻 봐선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차림새와 청결치 못한 손이었다. 눈에 보이는 거짓말에 능숙했고 싸움걸기와 욕설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
당연히 그런 아이라고 나조차도 여겨왔지만, 어느 날 또 싸움이 엮인 무리를 보며 왠지 이 아이를 품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따져보지 않아도 잘못은 그 애 잘못이라고, 걔가 거짓말하고 이걸 훔쳤어요,라고 몰아세우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일단 보지 않았으면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러두었다. 그리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온몸에 세우고 들이받을 기세의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었다.
"OO야, 네가 정말 아니라고 하는 말을 선생님은 믿을게."
당시의 필자는 육아서적이라든가 아동교육서를 접해보지도 않은 그냥 여고생 나부랭이였을 뿐이다. 어째서 그런 행동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눈물을 쏟아내며 모든 가시를 누그러뜨리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날 이후, 아이의 모든 행동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의 앞에서는 유순해지고 바른 행동을 하려 노력했다.
그제야 이해했다. 아이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었구나.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구나.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실망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구나.
그날, 누가 봐도 정황상으로 그 애의 잘못인 것을 굳이 지적하고 나무랐다면, 아이야 언제든 변화할 수 있었을 것이고 언젠가 다른 사랑을 만났겠지만 나는 인생의 크나큰 깨달음을 얻는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결국 얼음을 녹이는 것은 햇살이며 봄인 것이다.
봄물보다 깊으니라
갈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_한용운, 「사랑」
나라에 엄중한 비상 명령이 내려졌다는 비보를 듣는다. 탄식을 하며 쉽게 잠들지 못하는 첫 밤을 글로 갈무리한다. 일상에서는 입으로 푸념과 비판의 거친 워딩을 쏟아낼 터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반푼 글쟁이라서 쉽게 쓰인 시를 쓴 시인 흉내를 내며, 시절을 지나는 마음을 글로 달래 보는 것이다.
봄물, 갈산, 달, 돌처럼,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나 깊고 높으며 빛나고 굳센 마음. 그 의지로 막힌 담을 헐며 길을 터내는 시대였으면 한다. 세대 간의 갈등이 깊다 못해 종횡이 멀어지는 이 사회. 가까이로는 내 곁의 배우자, 부모, 자녀. 나아가 학교, 회사, 정치와 문화가 다정히 가지를 이어 함께 꽃잎을 틔우고 봄의 가락을 노래하는 그날이 오도록 기다려 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