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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고

망설여질 땐, DO! GO! 

by 꼬꼬 용미 Ma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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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아들이 왔다. 


처음으로 받은 2주 간의 긴 휴가였다. 아들은 제법 사내 티가 났다. 근력 운동을 한다더니 다부진 어깨에 튼실한 근육들이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 아들, 어서 와.”

미처 안아 보지도 못했는데…. 듬직한 아들 둘이 연이어 따라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어서들 와요. 반가워요.”

아들은 해군 동료,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왔다. 세 아들들은 2층으로 올라가 짐을 풀고 옷 갈아입고 바로 나갔다.   

   

“엄마, 친구들 온다고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 없어요. 밖에서 먹을 거니까.”

미리부터 신신당부를 한 통에 아들 눈치만 보고 있던 참이었다. 진짜 쿨~하게 나가 버렸다. 아들은 이 동네 맛집을 소개해 주고 주변 관광지를 구경했다고 한다. 12시가 넘어 들어왔다.  

    

'아들들 밥을 준비해도 되나? 밖에서 먹는다고 했는데? 언제 봐서 캠핑 가려고? 해군에 있었으면 벌써 일어나 아침을 먹었을까배 고플 텐데? 집에서 먹어시간도 절약되고 돈도 절약될 텐데?'


다음 날 아침. 나는 혼자 안절부절못했다. 그날 저녁에 우리는 부부 동반 여행을 떠날 참이었다. 아들은 나를 배려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뒤늦게 부랴부랴 아침을 준비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아들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지. 급히 소고기뭇국을 끓이고 제육볶음과 햄 꼬지, 김치 꼬지 전으로 상을 차렸다. 엄마 마음은 또 그런 것이 아니란다. 친구들이 낯을 가린다고 아들은 좀 구시렁거릴 테지만 말이다.  

    

세 아들들이 아침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아들들은 부산 1박 2일 글램핑을 떠났다. 


캠핑에서 돌아온 해군 아들은 이틀 집에 있고 우리 집에서 잤던 친구 집에 가서 자고 밥까지 얻어먹고 왔단다. 게다가 그 친구 아버지와 둘이서 낚시 이야기를 한참 했다 한다. 

"야, 나 보고는 밥 차리지 말라며? 아들 휴가 오는데, 친구랑 오는데, 떡 벌어지게 한 상 차리고 싶었고만! 그날 아침 안 차려줬으면 어쩔 뻔했냐고!"

"여행 간다며."

베트남 여행을 하고 온 우리와 해군 아들은 닷새만에 만나 이야기했다.(싸우는 거 아님)     


휴가 내내 해군 아들은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서울로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대학 친구냐고 물으니, 군대 친구란다.

“매일 보는 해군 동료 친구들을 휴가 나와서도 만난다고?”

이해되지 않았다. 약간 섭섭하기까지 했다.  20년을 함께 산 부모보다 더 애틋한 것 같아서. 


어쩌면 힘든 군 생활을 함께 하면서 전우애가 깊고 돈독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망망대해에서 바다를 지키며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의지했을 것이다. 새파란 청춘들, 우리 아들들. 고생이 참 많다!      


순식간에 아들의 2주 휴가가 끝나 버렸다.  

“내일 엄마가 데려다주면 안 될까요?”

난 웬 떡인가 싶었다. 

“물론이지. 아들, 내가 데려다줄게!” 

나의 운전 선생님(남편) 없이 장거리 운전은 안 하지만, 아들 태워다 주고 함께 데이트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국도를 고집하는 남편의 취향에 맞추자면 나는 길을 외워야 한다. 태생부터 길치인 나는 내비게이션이 말해주는 무료 길과 남편이 안내하는 길이 매번 달라서 늘 헷갈린다.

 ‘몰라. 내비게이션 보고 고속도로로 갈 거야!’

남편이 하이패스를 내준다.  혼자 고속도로를 잘 타지 않는 편이다. 빠른 속도 때문이다. 그래도 아들이 함께여서 작은 용기를 냈다. 


아들을 태우고 달리는 마음이 뿌듯하다. 어느새 목포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보고 내리지도 말고 가란다. 해군 복귀 전, 다른 동료들과 만나서 밥 먹기로 했다고. 어정쩡한 곳에서 아들을 내려주고 한 번 안아 보지도 못하고 그냥 보내야 했다. 부모의 몫은 항상 여기까진가 보다. 


'바로 올라 가?'

   

무작정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목포 바닷가 근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되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 망설이다 검색을 했다. 당일 코스를 찾아보고 맛집도 검색했다. 근처에 갓바위와 달맞이 공원, 꽃게살 비빔밥과 유명한 빵집들이 있었다.  

    

‘나 혼자?’


‘뭐 어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거야?’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산다며?’  

   

‘그래. 해 보자.’ 

    

근처에 다 있다니, 마음이 놓였다. 달맞이 공원 주차장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차를 주차하고 걸었다.  탁 트인 바다가 보였다. 부둣가에 정박한 배들도 있다. 바람은 찬데,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하늘이 시원스럽게 파랗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좋았다. 이 하늘과 바다를 보지 않고 그냥 갔으면 어쩔 뻔했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갔더니 갓바위라고 쓰인 돌이 입구에 서 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데크를 따라 걸었다. 얼마 안 가서 갓을 쓴 것처럼 생긴 바위가 나왔다. 버섯 같기도 하고 갓을 쓴 두 사람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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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갓바위 (천연기념물 제500호)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풍화 작용과 해식작용의 결과로 형성된 풍화혈(風化穴 : tafoni)로, 특이한 형상은 마치 삿갓을 쓴 사람과 같다고 쓰여 있다. 자연이 빚어낸 조각품으로 희귀성을 가지고, 아픈 아버지와 효심 깊은 아들의 전설이 참 애틋하다. 아버지 바위, 아들 바위라고 불렀다는 것에 묘한 연민을 느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어쩐지 혼자가 어색해 갓바위에 대해 안내문을 읽고 있었던 거다. 그때 친정 단톡방이 울렸다. 엄마다.

“아그들아, 아빠 검사 결과 깨끗하단다. 관리만 잘하면 된대.” 

직장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은 아빠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잘됐네요. 아빠 축하해요. 엄마도 아빠 간호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난 목포. 아들 군대 데려다주고 혼자 여행 중.”

연이어 톡을 올렸다. 


“좋네~ 맛집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해~”

“바다를 보며 커피 마시면 좋겠다~”

서울 사는 언니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 너도 좀 보살피면서 살아~”

엄마도 한 말씀하신다.    

  

날씨도 나누고 여행도 나누고 한 마디씩 마음도 나누고.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도 SNS로 소통하니 참 좋은 세상이다. 응원을 받고 나니 어색함이 한결 사라졌다. 

     

“우리 잘 도착했어. 나는 좀 놀다 간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갓바위를 보고 그 길로 계속 걸어가니, 멀리 목포 자연사 박물관이 보였다. 아이들과 왔다면 분명 들러야 했을 텐데,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난 패스다. 다시 달맞이 공원으로 되돌아가 반대쪽 목포 평화의 광장으로 걸었다. 춤추는 바다 분수가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처럼 공연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봄과 가을, 여름에 20시부터 21시 사이에 두세 차례 음악과 함께 분수가 춤을 추는 모양이다. 사진만 보아도 낭만적이다.  

    

드넓은 광장을 바람과 함께 걸었다. 광장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음악 흘러나왔다. 잔잔한 바다와 고요함이 참 오랜만이다. 집에 있으면 유튜브나 TV를 습관처럼 틀어 둔다.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그냥 "좋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혼자도 괜찮네.

      

광장 끝까지 걸었다. 발바닥이 아프다. 굽 있는 부츠가 문제였다. 슬슬 배도 고프다. 목포의 꽃게살 비빔밥을 먹어야 한다. 주차장까지 걸어가 차를 타고 15분쯤 가야 했다. 그때 남편의 문자가 왔다. 

“여기 꽃게살 비빔밥 맛있어.” 

근처에도 분점이 있단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편이 어디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했다. 잘 됐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걸었다.   

   

작고 평범한 식당처럼 보이는 꽃게살 비빔밥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유명 연예인이 와서 꽃게탕을 먹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꽃게살 비빔밥을 시켰다. 

     

“2인분을 주문해야 합니다만.”

발 아프게 걸어왔는데, 그냥 갈 수도 없고. 잠시 고민했지만.      

“남으면 싸가도 되죠? 2인분 주세요.”  

   

목포, 꽃게살 비빔밥~목포, 꽃게살 비빔밥~

주부가 가장 좋아하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다! 소박해 보이지만, 꽃게살이 가득한 한 상이 내 앞에 있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며 먹었다. 김에도 싸 먹고 나물을 넣어 쓱쓱 비벼 먹기도 하면서 혼자 맛나게 먹었다.(많이 뻔뻔해졌다. 20대에 혼자 식당에 가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슬슬 배가 불렀다. 

    

‘가는 길에 엄마 아빠에게도 사다 드려야 하나? 아빠는 아직 생 음식은 못 드신다고 했는데? 아빠 게장 좋아하시는데? 엄마만 드릴까? 아빠가 드시고 싶을지도? 남편은?’  

    

무수한 질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난 과감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나 혼자 여행이라고! 엄마도 아빠도 남편도 생각하지 않겠다고! 


나물과 김, 밥을 싹싹 긁어 깨끗이도 먹었다. 꽃게살만 조금 남아 포장했다. 다음 날, 아침에 남편 주면 딱 좋을 양이었다.  


이제 커피만 한 잔 더 마시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바다를 보며 먹을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발은 아프고 맛있는 빵집도 못 찾고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다. 집에 있는 고등학생 두 아들 저녁해 주러 가야 했다.

'이 녀석들과 같이 왔으면 금방 찾았을 텐데...' 

방학인데도 못 놀고 베트남 여행도 안 따라가고 학원과 스카만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 먹는 재미만 남은 막내가 그제야 보고 싶었다. 


해군 아들 덕분에 혼자 여행 참 잘했다. 


혼자 여행도 꽤 좋았다.  


소박하지만 그날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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