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실젖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

by 박정옥

허공에서 휙휙 날며 뛰는 것 같기도 한 거무스레한 작은 벌레가 보였다. 이 작은 생명체는 내가 운동하는 기구 양쪽 기둥 사이에서 이상한 춤사위를 하고 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해거름 노을빛을 빌려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살펴보니 반짝이는 탱탱한 은빛 줄이 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거미구나!’하고 알아봤다.

폭우가 쏟아져서 이틀을 쉬었다가 한강공원을 찾았다. 운동기구에 발을 올리며 ‘어찌 되었을까?’하고 미물의 안부가 걱정되던 찰나 검은 점 하나가 휙 하고 움직인다. 날개도 없으면서 허공을 어떻게 날아다니는지 목숨을 건 행위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놈인가?’

거미집은 보이지 않고 여전히 대각선과 가로 세로를 오가면서 은회색 줄을 옮기고 있다. 사람 사는 집으로 치면 기초를 다지고 있는 것 같다. 폭우에 망가진 집을 다시 짓고 있는 모양이다.

어릴 때 고향 집 장독대 옆에서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거미집을 본 생각이 난다. 실보다 가늘어 보이는 줄에 수많은 물방울이 동글동글 매달려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지켜보았다. 다리가 길고 몸통도 날씬한 무당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이 걸린 나뭇가지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배와 팔다리에 줄무늬처럼 노란색이 들어있는 모습이 여느 거미 같지 않고 예뻤다. 대부분 거미는 징그럽고 흉측해 보여서 사람에게 해로움을 줄 것 같지만 해충을 잡아먹어 이로움을 준다.

거미집을 자세히 보면 화살촉처럼 뻗어나간 날실과 규칙적인 간격의 씨실이 방사형으로 정교하게 짜여있다. 거미집에 걸려든 곤충이나 벌레들이 웬만해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 튼튼하고 완벽한 건축 기술이 놀랍다. 이처럼 꼼꼼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거미의 집 짓기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의 베 짜는 기술이 유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아테네에는 ‘아라크네’라는 베 짜고 수놓는 솜씨가 뛰어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나는 인간이지만 베 짜는 기술은 내가 최고다. 아테나 신도 이길 수 있다.”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며 신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테나가 누구인가, 제우스 머리에서 태어났다는 지혜의 신이고 기술·예술의 신으로 아테네의 수호신이 아닌가. 둘은 베 짜기를 겨루었는데 놀랍게도 실력이 비등했다. 아테나도 그녀의 실력을 인정했지만, 아라크네는 자만심으로 신들을 능멸하는 내용의 무늬를 넣어 베를 짰다. 이에 분노한 아테나는 그녀의 직물을 찢어 버리고 구타했다. 치욕감을 견디지 못한 아라크네는 죽음을 택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테나 신은 그녀의 목숨을 살려 거미로 만들고 거미줄을 짜도록 했다.

잠시 신화를 떠올리다 보니 눈앞의 거미는 아직도 날실을 고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꽤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을 생각인 것 같다.

수많은 종류의 우리나라 거미 종에서 원시적인 거미는 땅속 구멍 같은 곳에 살고 진화된 거미는 지표 밖에서 집을 짓는다고 한다. 거미도 진화하는 과정에서 지혜가 생겼나 보다. 내가 만난 이 생명체는 진화된 거미가 분명해 보인다. 폭우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용기를 내서 새로운 집을 짓고 있지 아니한가.

거미집의 재료인 거미줄은 배 끝에 있는 방적돌기(실샘)에서 나오며 ‘실젖’이라고 한다. 끈적한 점성도 있지만 가느다란 그 줄이 강철보다 단단한 힘을 가졌다니 놀랍다.

이것으로 인해 거미줄에 걸린 먹이들은 한 번 걸려들면 꼼짝할 수가 없다. 거미도 집을 짓거나 먹이를 잡을 때는 끈적임을 피할 수가 없지만, 거미줄에 달라붙지 않는 비결은 세로줄과 발에 있다. 거미줄은 가로줄만 끈적이는 점성이 있으며 세로줄은 점성이 없다고 한다. 거미 발에는 가늘고 빳빳하며 강한 털이 촘촘하게 있어 마찰을 줄여준다. 거미가 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천 번도 넘게 줄 위에서 움직인다고 하니 목숨 건 외줄 타기를 하는 것이다. 거미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집을 짓는 이유는 비록 미물이지만 그 집이 일터이자 쉼터이고 새끼를 키우는 보금자리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딸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우리 내년에 그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요. 대출 이자가 너무 올라서···.”

딸의 목소리가 전화기 속에서 우울하게 들려온다. 내년에 외국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는 딸이 같은 아파트에서 살 거라고 내심 좋아했던 나는 혼자 김칫국을 마신 셈이고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사람에게도 집은 생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안전한 곳이다. 하지만 내 집 한 채 장만하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 요즘은 더 그렇다. 몇 년 전부터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은 집을 마련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불안하고 조급하다. 집을 사기 위해서는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이란 말도 생겼다. 집이 존재에서 소유의 개념으로 바뀌면서 사람이 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집이 사람을 선택하는 상황이 된 듯하다.

수없이 바뀐 부동산 정책 때문에 대출을 쉽게 받을 수도 없고 대출 이율도 높아져서 전세 반환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딸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하지만 딸과 사위는 낙심하지 않고 부지런히 실젖을 뽑아내며 때를 기다릴 것이다.

단단한 실샘을 가진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큰 힘이 되겠지만, 나의 실샘에는 점성이 강한 실젖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 지켜보며 응원할 수밖에···.

내일은 완성된 집에서 느긋이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 모습을 보고 싶다.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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