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좀 만들어 줄래?’
동네에서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이 돌아가셨다고 마을 사람들이 술렁이던 날 종이집에서 꽃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마을에는 닥나무를 키우며 한지 만드는 사람이 살았다. 늘 한지가 켜켜이 쌓여있고 등짐 진 장사꾼들이 종이 뭉치를 사 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 집 앞을 지나다 보면 아주 가끔 색색의 커다란 종이꽃이 마루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 집을 종이집이라고 불렀다.
친구와 나는 종이집 사랑방에서 얇은 색지色紙로 꽃을 만들었다. 처음엔 예쁜 모양이 나오지 않았지만, 여러 장의 종이를 겹쳐서 중앙을 묶고 꽃잎처럼 자르고 살살 펴니 석남꽃인 듯 모란인 듯 커다랗고 예쁜 꽃송이로 변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만든 꽃은 방 안 가득했다.
장례식날 우리가 만든 꽃들은 한지로 둘러싼 행상에 색색으로 붙어서 화려한 꽃상여로 변했다. 출상出喪에 앞서 죽은 자를 슬퍼하며 위로하는 글을 적은 깃대(만장輓章)를 들고 젊은 사람들이 길을 나섰다.
같은 반 친구인 그 집 손주도 형과 함께 작은 가마처럼 생긴 영여를 들고 상여보다 먼저 타박타박 장지로 향했다. 영여에 위패와 신발을 넣어두고 죽은 사람의 혼백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 뒤를 따라 머리에 질끈 무명 수건을 묶고 상여를 어깨에 올린 상두꾼 아저씨들이 향두가(만가挽歌)를 부르며 더디게 발걸음을 떼었다. 꽃상여 뒤로 삼베 두건을 쓴 남자들과 하얀 무명이나 삼베로 지은 옷을 입은 가족들이 지팡이를 잡고 뒤따르던 모습이 기억난다.
저승으로 가는 소리라는 향두가는 어린 내가 자꾸만 입속에서 따라 부르고픈 운율을 지니고 있었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북망산천 어서 가자.
어허어 어허어 어화 넘차 어하여
보고 지고 보고 지고 우리 어메 보고 지고.
어허어 어허어 어화 넘차 어하여.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우리 어메 보고 지고.
어허어 어허어 어화 넘차 어하여.
세상천지 인물 중에 사람밖에 또 있는가
여보세요 시주님들 이내 말씀 들어보소…
향두가는 앞에서 요령을 흔들며 부르는 요령잡이의 앞소리와 상두꾼의 뒷소리로 이어졌다. 죽음에 대한 슬픔과 원망이 담겼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길에 대한 배웅의 소리다. 구슬픈 향두가는 듣는 이의 애간장이 녹아내릴 듯 가슴을 아리게 했다.
상두꾼들은 힘들 때마다 망자가 ‘저승 가기 싫다.’하고 버틴다면서 발걸음을 뒤로 빼면서 머뭇거렸다. 그러면 상주들은 노잣돈 하면서 잘 가라고 상여의 매듭 줄에 주렁주렁 지폐를 꿰어 달았다. 세상 슬픈 말은 다 들어있는 것 같은 향두가와 노잣돈은 상두꾼들의 무거운 걸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 크게 들리던 만가도 아련히 멀어지고 상여는 마을 어귀를 지나 내를 건너고 비탈진 언덕으로 오르고 오르면서 가물가물 산속으로 들어갔다.
꽃상여와 만장은 장사葬事 지낸 뒤 장지에서 신발과 같이 불태웠지만, 영여는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 마을에 슬픔이 안개처럼 스며들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축제 같은 떠들썩한 소리로 가족을 위로하면서 잘 견뎌낼 수 있게 힘을 모아주었다.
저승 가는 길! 누구도 가고 싶지 않지만, 우리 모두 꼭 가야 하는 길이다. 신은 남편에게 그곳에 가는 지름길을 예약해 주었다.
튼실한 체격의 남편 뱃살을 두드리며 아이들은 아빠 배에서 북소리가 난다고 놀리던 때가 있었다. 그 단단하던 근육과 뱃살이 바지 허리춤을 수호하지 못하고 흘러내릴 만큼 뼈대만 남기고 사라졌다. 남편 나이 예순도 되기 전이었다. 그런 남편을 보니 자꾸만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작살에 걸려 뼈만 남은 커다란 물고기가 연상되었다.
지금 퇴직해도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서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처럼 살아보자고 울면서 매달렸다. 어떤 달램이나 협박도 소용없는 외골수였다. 그는 만 2년을 수많은 수술과 시술을 하며 모든 진기를 다 빼내고 떠났다.
그의 혼魂은 영안실 국화꽃동산에서 사흘을 지내면서 이승의 인연들과 이별식을 했다. 입관식에서 본 남편의 마지막 모습은 푸른 별처럼 점점이 박혀있는 주사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는 떠나면서 그 푸른 별을 내 가슴 깊숙이 박아놓고 갔다.
어릴 땐 맑은 하늘 아래서 네 귀퉁이에 어사화 하늘하늘 꽂고 가지각색 꽃으로 장식한 꽃상여가 참 예뻐 보였다. 사람이 죽으면 모두 꽃마차 타고 하늘로 가는 줄 알고 있던 그때는 죽음이 이렇게 아픈 것인 줄 몰랐다.
피를 토한 이별의 아픔도 그를 사랑한 세월도 그 옛날 같으면 꽃상여에 태워 보내고 만가로 주저리주저리 토해냈겠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 꽃상여 대신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은색 리무진을 탔다. 육신과 혼백을 태운 차는 조심조심 바퀴를 굴리면서 북망산천을 향해 움직였다. 나는 나만의 만가를 웅얼거리며 눈물을 삼켰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합니다.
먼저 가게 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