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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Nov 19. 2022

[중편소설] 소설 없는 소설(4)

5) 역사상 자신의 불멸에 골몰했던 사람은 무수히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사람은 진나라의 하급 관리였던 갈홍이다. 갈홍은 영생을 위하여 도교에서 말하는 장수법을 꾸준히 실천했고 불멸의 묘약을 개발하는 일에도 관여했다. 그러나 불멸을 절실히 원하는 사람답게 그는 영생법이나 묘약 개발의 실패에도 대비했는데, 그것은 미래 세대가 자신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하급 관리에 불과한 갈홍이 역사책에 이름을 남길 만한 명성을 쌓을 수는 없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쪽을 택했다. 300년대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사람은 갈홍밖에 없었고, 그의 천재적인 기획은 성공해서 1700여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까지 그의 이름과 존재가 전달되었다. 


 나는 조깅을 했고 코어 근육을 단련했고 귀리와 케일과 블루베리를 챙겨 먹었지만 그뿐이었다. 갈홍에 비하면 영생을 위한 나의 노력은 너무 하찮았고 그저 미래의 코스미스트들만을 믿고 있을 따름이어서, 이렇게 안일해서야, 나도 갈홍처럼 해볼까, 나에 대한 기록을 남겨 볼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갈홍 이래로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겨서 영생을 꾀하는 전략은 자서전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정착이 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자서전에는 대필, 자랑, 과장, 클리셰와 같은 낯부끄러운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깟 꼬리표야 떼어 버리면 되지, 영생이 중요하지 싶기도 해서, 책장을 뒤져 꼬리가 짧은 자서전 몇 권을 찾아냈다.


 살만 루슈디는 호메이니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일종의 도망자 생활을 해야 했던 십여 년의 시간을 회고하며, 『조지프 앤턴』이라는 자서전을 썼다.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이야기꾼으로서의 감각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워낙에 대단한 사건을 겪었기 때문인지, 그의 책은 아주 소설적이다 못해 영화적이기까지 하다. 『조지프 앤턴』을 읽으면 자동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것이다. 시작은 이러하다. 어느 날 아침 살만 루슈디는 방송국 기자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깬다. 기자는 눈곱도 떼지 않은 살만 루슈디에게 이렇게 묻는다. “호메이니가 방금 선생님께 사형선고를 내렸는데 기분이 어떠세요?”1) 살만 루슈디처럼 대단한 드라마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는 에르베 기베르도 있는데, 그는 3부작을 이루는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 『연민의 기록』, 『빨간 모자를 쓴 남자』을 통해서 에이즈에 걸려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장까지 뒤집어 모조리 보여 주었다. 일종의 스캔들 같은 삶을 살고 그것을 기록한 책을 출판해 또 다른 스캔들을 일으키는 삶을 살려면, 그러니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호메이니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에이즈에 걸리고 미셸 푸코 같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것을 고스란히 기록까지 하려면,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할까, 적어도 몇 백 년은 더 살아야 하지 않을까, 고작 백 년 안에 그런 성취를 이루기는 힘들 것 같은데.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은 『조지프 앤턴』을 몇 배쯤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전체가 3,622페이지라고 하니 이 작가가 포레스트 검프 같은 인생을 살았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대단할 것 없는 자신의 일생을 유년 시절부터 시간순으로 담담한 어조로 묘사했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는 않은데 피식거릴 수 있는 일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칼 오베가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것을 공산당 지역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아버지가 민망해 했다는 일화, 해변에서 좋아하는 여자애와 놀면서 자신의 육체를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은 신이라고 느끼는 일화 같은 것들. 나는 1권만 읽고 더 읽고 싶지는 않았는데, 일상을 세밀하고 진솔하게 써 내려간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는 모양이다. 그럴 수 있지만, 그와 같은 자기 고백이 나는 좀 쑥스럽고, 아무리 문학이 중요해도 내 개인사와 가족사를 모두 까발려서 친척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고초를 겪고 싶지는 않다.  


 조 브레이너드는 ‘나는 기억한다’는 기억장치를 이용해서 서랍 구석에, 미끄럼틀 밑에, 하수구 아래에 흩어져 있던 기억 조각들을 긁어모아서 천오백 개의 기억들을 나열한 『나는 기억한다』는 책을 썼다. 이 책에 대해서 폴 오스터는 “배꼽 잡게 웃기면서도 마음 깊은 곳을 휘젓는 걸작”이라고 했다는데, 그러나 60년대에 미국에서 미술을 했던 게이 청년의 기억 조각들이 나를 웃기거나 마음 깊이 감동을 주거나 하지는 못했다. 그와 나는 너무 다른 배경에 속해 있었다. 그가 긁어모은 기억들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이 책을 쓰는 도중에 지인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일부이다. “꼭 성경을 쓰고 있는 신 같은 느낌이랄까. 내 말은,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나로 인해 글이 써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는 겁니다. 또한 이게 나에 관한 얘기일 뿐 아니라 나 이외의 모든 이들에 관한 얘기라는 느낌도 드는군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요. 내 말은 내가 모든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겁니다.”2)


 에두아르 르베는 조 브레이너드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자화상』이라는 책을 썼다. 『자화상』은 자신과 관련된 사소한 사실, 생각, 인상을 무작위로 나열한 책이다. 나의 경우에는 조 브레이드너드보다는 에두아르 르베 쪽이 배꼽 잡게 웃기면서도 마음 한편을 휘저었는데, 내가 쓴 건가 싶은 문장들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들. “나는 미국의 어떤 흑인 급진주의자와 프랑스의 여성 사회학자 사이에 난 아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이 사람은 레디메이드군.’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가 만나는 여자가 내가 짓는 표정들을 짓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그녀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반복되는 악몽을 꿨는데, 중력이 사라지고 인류가 뿔뿔이 흩어지고 내 가족은 내게서 멀어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모든 사람이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꿈이었다.”3) 그러나 나는 에두아르 르베와 달리 『자살사용법』 같은 데는 관심이 없었고, 『인생사용법』이 사는 법을 알려 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아이고 길게도 쓰셨구만,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는 일종의 찢어진 자서전 모음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없는 책으로, 나는 보르헤스와 달리 아버지로부터 마세도니오와의 우정을 물려받지 못하였으나, 보르헤스와 마세도니오에 대한 존경심을 공유할 수는 있었다.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자서전을 비롯한 전기는 가장 허황된 예술 형식이다. 모든 이야기가 그 어떤 장르의 글에서보다 많이 변조되어 있기 때문으로, 그래서 자서전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가 쓰는 자서전은 일상을 조직하는 관습적인 논리를 거부하고 자기 방식대로 그것을 재구성하여 공상을 늘어놓고 농담을 주절대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농담들 혹은 공상들. “죽음이 언제나 오늘처럼 가장 최근의 사건이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시대에는 부활이 이용되기도 했다.” “영원 속에서 생물학적으로 계속 존재하는 대신, ‘죽음’으로 인해 사라졌다가 ‘부활’을 통해 다시 나타나는 ‘존재’는 현실적으로 별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럴 바에는 ‘절약’의 원칙이 적용되는 죽음이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 살다가 간혹, 아니 자주 느끼는 바지만, 무엇이든 망가지고 찢어진 곳을 여러 번 고쳐서 결국 누더기로 만드는 것보다는 아예 새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돈도 절약되니까 말이다.”4) 나는 마세도니오의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읽으며 웃었고 그러나 오래 웃지는 못하고 그의 농담을 곱씹으며 공상에 빠졌다. 마세도니오는 자기 일생을 나열하거나 자기 고백을 늘어놓지 않고 자기 나름의 형이상학을 중얼거리는 것에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부여했고, 그러한 방식으로 픽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1) 살만 루슈디, 『조지프 앤턴』. 문학동네. 13쪽.

2) 조 브레이너드, 『나는 기억한다.』 모멘토. 252쪽.

3) 에두아르 르베, 『자화상』. 은행나무. 12쪽. 23쪽. 77쪽.

4)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계속되는 무』. 워크룸. 168쪽.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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