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괜찮습니다. 오얏이 병상에 누워 시름시름 앓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대체 왜 계속 쓰려는 거지요? 나는 오얏의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 주면서 생각했다. 그러게, 대체 왜 쓰는 거지, 완성도 못 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글을 쓰는 이유로 자기만족과 미학적인 욕구와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열망을 꼽았는데, 오웰은 자기만족과 미학적 욕구와 역사적 충동보다 점차로 정치적 열망이 더 커졌다고 말했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자기만족밖에 없지 않나 싶은데, 내가 뭘 만족을 했나 내내 불만족을 했지 싶어서, 대체 왜 쓰는 건가 생각했다.
책상에 엎드려서 노트에 쓰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적었다. 어이, 뭐하고 있어?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들어 보니 피에르 부르디외였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오귀스트 콩트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뭐죠? 나는 물었고 피에르 부르디외는 답했다. 어서 일어나. 나가야지! 민중들이 기다리고 있어. 잊었어? 사회학의 임무는 피지배 집단에게 지배 집단에 대항할 수 있는 지적‧실천적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라네. 피에르 부르디외가 나를 잡아 일으키려고 손을 뻗었다. 나는 다급하게 답했다. 근데 저 사회학 그만뒀는데요. 뭐라고? 저 소설 써요. 아니 쓰지 말아야겠다고 쓰고 있었지만 아무튼요. 피에르 부르디외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그가 들고 있던 깃발이 펄럭였고 깃발에 그려진 오귀스트 콩트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걱정 없네. 소설이라면 사회학의 하위 분과이니까!
나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뿜었다. 소심한 오귀스트 콩트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점차로 쭈그러들어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었고, 그 작은 점 안으로 깃발도 피에르 부르디외도 모두 다 빨려 들어갔다. 오귀스트 콩트는 학문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사회학을 두었고, 피라미드의 하부에는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독립적이고 단순하고 보편적인 다른 학문들을 배치했는데, 그 학문들로부터 만들어진 자원을 동원하여 가장 실증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 사회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학의 창시자였지만 동시에 인류교라는 종교의 창시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면서 사회학은 오귀스트 콩트가 아니라 에밀 뒤르켐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철학이나 정치학이나 인류학이나 문학이나 생물학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사회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귀스트 콩트의 말과는 다르게 사회학이 만학의 제왕이어서가 아니라 근본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근본이 없기로 따지자면 소설도 비슷한 처지이지 않나.
사회학과 소설은 모두 근대에 태동한 신생 분과로 철학이나 시와 비교하면 정통성이 현저히 떨어져서, 유연함을 무기로 그러나 영토를 넓히는 것에 혈안이 되어 아무 데나 깃발을 꽂을 수밖에 없다. 다른 분과 학문이 먹고 남긴 찌꺼기에 사회학은 친절히 다가가 경제사회학, 정치사회학, 문화사회학, 과학사회학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준다. 그리고 그 이름표는 맹랑하게도 경제학과 정치학과 문화와 과학의 성과를 평가할 권한을 사회학이 가지는 것을 가능케 한다. 소설의 경우,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잡설로 뭉뚱그려질 수 있는 데다가 여러 가지 형식 실험들이 무수히 이루어진 결과로, 시로 쓴 소설, 에세이 소설, 서간체 소설, 르포르타주 소설, 논문 형식의 소설 등 아무 데나 소설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도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운문과 산문과 일상과 학문은 모두 소설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사회학과 소설이라는 힘없는 두 제국이 서로의 주변을 맴돌며 대치하는 경우에는, 소설이 사회학에 깃발을 꽂을까, 사회학이 소설에 깃발을 꽂을까. 참여 관찰로 쓰인 수디르 벤카테시의 『갱 리더 포 어 원 데이』나 『플로팅 시티』는 그가 사회학자가 아니라 소설가였더라면 소설로도 충분히 읽힐 수 있는 책이다. 논문을 쓰려고 시카고 대학 뒷골목 빈민촌에 잠입한 사회학자가 갱단과 얽히게 되면서 발생한 사건이라니, 갱 리더와 친구가 되고 그를 대신해서 하루 동안 갱단을 이끌기도 한다니, 할리우드 영화의 원작 소설처럼 읽히지 않나. 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받지만 않았더라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같은 작품들은 구술사 연구 방법이 적용된 여성 사회학이라고 우겨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물론 제국주의적 지배는 언제나 분할통치 전략과 함께하므로, 어떤 사회학자는 그 책은 사회학이 아니라고 할 것이고 어떤 소설가는 그 책은 소설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결국에는 사회학자와 사회학자, 소설가와 소설가는 각각 사회학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소설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두고 언쟁을 벌일 것이고, 언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작품이 사회학으로 규정되든 소설로 규정되든, 그것이 이 시대에 그리 대단한 영광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 시대에는 모든 경계가 흐물흐물 녹아 사라지는 것이 자연법칙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말을 늘어놓고 나니 문득, 자기만족과 미학적인 욕구와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열망이라는 분과 학문적인 이유를 넘어서는 것을 써야겠다, 그런 것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돌연한 희망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희망은 먼 곳에서 아스라이 빛나고 있을 따름이었고, 희미한 빛은 깊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 어둠 속에는 나도 소설도 사회학도 그 무엇도 없어서, 나는 다시 미래의 코스미스트들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